따뜻한 '지슬'과 함께 한 동행..."척하면 척" 찰떡궁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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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지슬'과 함께 한 동행..."척하면 척" 찰떡궁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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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 스케치] 장애인과 비장애인 스토리 기행, 봄날의 하루
따뜻한 '지슬'과 함께 한 동행 "오누이 같은 만남이었어요"

빈 명찰에 이름을 일일이 쓰고, 챙겨온 간식을 2대의 버스에 나누느라 분주하다. 그러는 사이 장애인 한 사람이 와서 자신의 이름표도 달라며 웃는다. 처음 보는 사이가 아니다. 알고 보니 이 사람, 반가운 마음에 은근히 장난기가 발동했나보다.

9일 오전 9시 제주시종합경기장 광장을 찾은 강은숙 회장의 모습이다. 그는 제주도청 공무원들로 구성된 ‘존샘봉사회’를 이끌고 있다.

다른 회원들도 모두 분주하다. 가족들과 함께 온 회원들은 오늘의 일정을 간단하게 설명해준다. 그런데 대부분의 회원들이 장애인들과 악수를 나누고 눈웃음을 주고받는다. 하루 이틀 사귄 사이가 아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하는 스토리 기행, '열 사람의 한 걸음'’은 이렇게 시작됐다.

   
9일 열린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하는 스토리기행 '열 사람의 한 걸음'. <헤드라인제주>
   
9일 열린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하는 스토리기행 '열 사람의 한 걸음' . <헤드라인제주>

인터넷신문 헤드라인제주와 제주도청 존샘봉사회(회장 강은숙)가 주최하고 제주특별자치도지체장애인협회(회장 부형종)가 공동주관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하는 스토리 기행, '열 사람의 한 걸음’’이 9일 열렸다.

존샘봉사회원들과 이들 장애인들은 만나온 내공(?)이 만만치 않은 듯 거리감이라곤 애초에 없다. 가족들이 만나 나들이를 가는 모습, 딱 그 장면이다.

출발 준비를 하는 데 봉사회원들에게 낮 익은 얼굴이 인사를 건넨다. 우근민 도지사의 부인인 박승련씨다.

그는 “존샘봉사회 회원들은 도청에서 궂은일을 가장 많이 하는 직원들이다. 그렇다고 자리가 높은 사람들도 아니다”라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봉사회원들이 정말 대단한 일을 하고 있다. 하루가 즐거우면 일주일이 즐겁고, 일주일이 즐거우면 한 달이 즐거워진다”며 봉사회원들과 함께 하는 이날의 첫 발걸음을 가볍게 했다.

강은숙 회장도 화답을 한다. “봄을 기다렸다. 오늘이 있어서 그랬다”며 “이 좋은 날씨에 장애와 비장애라는 형식을 벗고 가족 나들이를 할 수 있어 행복하다”고 담백하게 인사했다.

#차롱에 담긴 따끈한 ‘지슬’과 함께 한 봄날의 ‘가족나들이’

그렇게 상큼하게 다가온 봄날의 나들이는 두 대의 버스에 나눠 탄 80여 명의 가족들에게 행복한 동행으로 이미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첫 행선지인 세계자연유산센터로 가는 도중 간식으로 삶은 감자와 김밥이 나왔다. 노란 찜통과 대나무로 짠 ‘차롱’에 오롯이 담겨 김이 모락모락 나는 상태 그대로다. 요즘 제주사회의 대세가 ‘지슬’이니, 모두 의미있게 받아들었다.

그런데 어른 주먹만한 크기의 삶은 감자의 출처를 알고 보니, 역시 강은숙 회장이다. 강 회장의 어머니가 새벽부터 딸에게 챙겨주려고 정성껏 삶았다고 한다.

감자를 먹는 장애인과 봉사자들 모두 행복한 표정이다. 감자가 정말 잘 삶아졌다고 한마디씩 거든다.
버스에 오를 때부터 장애인들과 봉사회원들은 ‘찰떡 궁합’이다. 누가 짝을 지어주지 않았는데, 회원과 장애인들이 손을 잡고 오른다. 누구는 휠체어를 밀어 들이라는 말이 필요없다.

   
9일 열린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하는 스토리기행 '열 사람의 한 걸음' . 양영순씨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헤드라인제주>
   
9일 열린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하는 스토리기행 '열 사람의 한 걸음'. <헤드라인제주>
   
9일 열린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하는 스토리기행 '열 사람의 한 걸음'. 이도운씨와 고윤옥씨는 짝을 지어 담소를 나눴다. <헤드라인제주>

#정겨운 오누이 같은 만남…“오늘같은 '동행‘이 가장 뿌듯해요”

도로사업소에 근무하는 이도운씨(32)는 옆자리에 앉은 고윤옥씨(건입동)와 소곤소곤 정담을 나눈다. 작년 10월 ‘동행’때 얼굴을 떴다. 그래서 오누이처럼 정겨운 얘기가 끝이 없다.

고씨는 “‘존샘’은 참 정이 많다, 그래서 좋다. 회원들 모두 ‘존샘 있게’ 대해줘서 행복하다. 기분좋은 여행이 될 것으로 예감한다”고 말했다.

자연유산센터에 도착하자 이도운 회원은 휠체어를 탄 양영순씨(60)와 짝을 맞췄다. 이씨는 전시관에 들어서자 와흘본향당 사진을 보면서 양씨에게 설명을 곁들인다. 이씨는 “오늘같은 ‘동행’이 가장 뿌듯하다. 장애인들이 모두 반갑게 맞아줘서 고맙다”고 웃는다. 양씨도 “이 청년은 오늘 처음 봤는데, 정말 싹싹하다”고 칭찬일색이다.

그는 “봉사회원 숫자는 훨씬 많지만 여러 가지 사정으로 동참하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고 말한다.
이도운 회원과 양영순씨의 동행은 셰프라인월드와 포니밸리로 이어지면서 따뜻한 봄날의 풍경으로 남았다.

#공무원 노조 전.현 위원장도 동참…“휠체어 더 갖추세요” 당부

이날 ‘동행’에는 제주특별자치도 공무원노조도 함께 했다. 얼마 전 취임한 고재완 위원장과 오재호 전위원장이 나란히 동참한 것이다. 여기에 공무원사회에서 두루두루 사람 좋기로 이름난 강문용 사무총장도 한 몫 거들었다.

이들 공무원노조 회장단들도 매년 지체장애인들과 ‘동행’을 하고 있어서 낯설지가 않다. 장애인들에게 농도 건네며 귓속말을 주고받을 정도다.

셰프라인월드에서 고 위원장은 셰프라인 관계자의 설명이 끝나자마자 번쩍 손을 들었다. 할 얘기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휠체어를 많이 비치해 달라. 두 대밖에 없다고 하더라”고 지적, “잘 알았다. 장애인들을 위해 휠체어를 더 갖춰놓겠다”는 셰프라인월드 관계자의 답변을 이끌어냈다.

휠체어를 탄 송호진씨는 점심을 먹는 표선면 성읍리 식당에서 “작년에 왔던 봉사회원이 안 보인다”며 강은숙 회장에게 그 회원의 안부를 묻는다. 이들에게 1년은 엊그제처럼 기억에 남아있는 듯 했다.

이날 ‘동행’을 안전하고 편안하게 이끈 주역들 가운데 자신의 대형 관광버스를 직접 몰고 나선 ㈜비너스고속관광의 강정필씨(54)와 강성협씨(39)를 빼놓을 수 없다.

강정필씨는 이날 ‘동행’ 일정 내내 구수한 입담으로 참가자들을 즐겁게 했다. 그는 벌써 여러차례 ‘동행’에 동참하면서 봉사의 대열에 나서 웬만한 장애인들과는 자연스레 인사를 나눌 정도다.

이날 ‘동행’에 나서 ‘1호차’를 타는 이호선씨(여.제주시 용담동)가 자신이 운전하는 ‘2호차’에 타려하자 “밖에 나와서도 남편과 떨어지지 않으려고 한다”며 짓궂게 농을 던진다. 이씨의 남편인 고석홍씨도 이날 함께 나들이에 나서 ‘2호차’를 타고 있어서 한 말이다. 그만큼 장애인들의 면면을 휜히 알고 있다는 얘기다.

그는 "돈 생각을 하면 어떻게 ‘동행’을 함께 할 수 있느냐“며 ”나도 장애인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늘 하기 때문에 오늘 하루가 보람있다“고 말했다.

그는 “사실, 처음엔 오해도 많이 받았다. 무슨 다른 생각이 있어서 봉사활동에 나선다고 색안경을 끼고 보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면서 “그러나 지금은 대부분 이해하고 있다. 그래서 함께 하려는 사람들도 있다”고 소개했다.

강성협씨(39)는 “이들과의 동행은 처음이지만 기분 좋은 나들이에 함께 할 수 있어 행복하다”고 말했다. 앞으로도 기회가 되면 보다 적극적으로 봉사활동에 참여할 생각이라고 했다.

이날 ‘동행’을 마치고 오후 4시께 다시 출발지에 도착한 장애인들과 가족, 존샘봉사회원들은 다시 만나자고 말로는 인사를 나누지만 돌아서지 않는 발길 때문에 머뭇머뭇했다.

행복한 봄 나들이는 분명한데, 뭔가 남은 것 같은 진한 아쉬움이 그들을 놔두지 않았다. 그래서 다음 ‘동행’이 벌써 기다려지나보다.

   
9일 열린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하는 스토리기행 '열 사람의 한 걸음'. <헤드라인제주>
   
9일 열린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하는 스토리기행 '열 사람의 한 걸음'. <헤드라인제주>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하는 스토리기행 '열 사람의 한 걸음' 의 수송을 맡은 강정필씨와 강성협씨. <헤드라인제주>

#계단이 항상 문제…관람석도, 오름 전망시설도 배려 아쉬워

이날 장애인들이 찾은 명소들은 깔끔한 시설과 프로그램으로 관람객들에게 인기가 높은 곳들이다.

그러나 지체장애인들이 이용하기에는 여전히 불편한 동선(動線)이 적지 않았다.

세계자연유산센터의 3D 영상을 상영하는 극장은 모두 계단으로만 이뤄졌다. 지체장애인들이 관람석으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하게 만들어졌다.

관람석으로 들어가는 여러 줄의 계단 가운데 한 줄 정도는 계단 턱을 크게 낮추거나 없앨 수는 없었을까하는 아쉬움이 비장애인에게도 든다. 이곳이 공공 시설물이니 더 그렇다.

셰프라인월드의 ‘작은 한라산’은 주변의 오름 군락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도록 아담하게 꾸며진 동산이다. 그러나 지체장애인들에게는 그냥 산의 느낌일 수 있다. ‘작은 한라산’으로 오르는 길은 모두 계단이다.

그러고 보니 모두 계단이 문제다. <헤드라인제주>

<신정익 기자 / 저작권자 ⓒ 헤드라인제주 무단전재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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