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부재' 탓하기 전에, 기본상식 회복이 급선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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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부재' 탓하기 전에, 기본상식 회복이 급선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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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칼럼] 윤용택 제주대학교 철학과 교수

윤용택 제주대학교 철학과 교수.<헤드라인제주>
요즘 국회청문회를 통해 나라를 이끌 고위 공직자들의 면면을 보고 있다. '청문회를 하든 안 하든, 결과가 어떻든 박근혜 대통령은 김병관 후보자를 국방장관에 임명할 것이다.' 어느 중앙일간지 논설위원의 말이다.

참으로 가관이다. 장관후보나 그의 자제들은 군대를 안 가거나 부동산 투기하는 것쯤은 기본처럼 되었다. 그러다 보니 고위 공직을 맡으려면 적당히 불법을 저지르거나 위장전입하는 것쯤은 미리 해둬야 될 지경에 이르렀다.

어디 그 뿐인가. 정치와 경제가 유착되어 비리가 만연하고, 정치권에서도 당선을 위해 보스 중심으로 뭉치고 흩어지며, 뻔히 잘못된 줄 알면서도 기업을 탈법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우리의 윗물사회에서 도덕, 양심, 정의는 사전에만 있는 말일 뿐 현실에서는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어쩌다 이렇게까지 되었을까.
'우리에게 철학이 없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철학이 없다 보니 우리 사회가 제대로 안 돌아간다는 것이다. 과연 우리 사회에 철학이 없어서 이처럼 불합리와 부조리의 수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일까?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고매한 철학이 아니라 상식이다.

우리 정치인, 경영인, 공무원, 교육자들이 상식적 수준에서 정치를 하고, 기업을 경영하고, 공무를 수행하고, 교육을 했더라면 우리 사회가 이렇게까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경제성장 과정에서 '안 되면 되게 하라'는 무조건 밀어부치기식 억지 논리가 정당화 되었다.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권력을 잡기 위해서 군대를 동원해도 괜찮고, 대통령과 국회의원이 되기 위해 공약(空約)을 남발해도 괜찮으며, 국책사업을 하는 데 절차를 무시해도 괜찮고, 돈을 벌기 위해서 사기를 쳐도 괜찮으며, 시험점수를 잘 따기 위해서 부정행위를 해도 괜찮고, ……

이러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어떤 일을 해도 괜찮다는 것이 공공연하게 인정되는 사회가 된 것이다. 그러다보니 지금은 그것에 발목이 잡혀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자기모순을 범하지 말고 거짓말을 하지 말라는 것은 교육의 핵심이다. 진리란 '~인 것은 ~인 것이고, ~아닌 것은 ~아닌 것이다.' 반면에 '~이라 해놓고 ~아니라 하거나, ~아니라 해놓고 ~이다.'라고 하는 것은 거짓이다. 우리가 정치를 불신하는 이유는 많은 정치인들이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 사회에서 교육이 설 자리를 잃게 된 것은 학교에서 배운 것과 사회에서 행해지는 것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요즘 학생들에게 공부는 단지 시험을 위한 것일 뿐 삶과는 무관한 것이 되고 말았다.

고위공직자, 정치인, 경영인 들이 국민에게 경멸당하지 않으려면, 법과 도덕을 지켜야 한다. 아니 법과 도덕을 크게 어긴 이들은 절대로 고위공직자가 될 수 없도록 해야 한다. 그게 상식이다. 기성세대가 젊은이의 인륜도덕이 땅에 떨어졌다 탓하기 이전에 배운 대로 행하고 절차를 잘 지키면서 정의롭게 살면 성공하는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전쟁과 군부독재시기를 거치며 분단국가 백성으로 살다보니, 우리는 알게 모르게 흑백논리에 젖게 되었다. 지난 50년간 고도성장을 거듭한 덕분에 우리의 경제규모는 세계적 수준에 이르렀다. 하지만 그 반대급부로 양극화가 극심해지고, 국토는 황폐화되고, 국민의 삶의 만족도는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

그런데도 성장중독에 벗어나지 못하고 계속 성장만 하려 한다면 우리나라는 말단비대증에 걸린 기형국가가 되고 만다.

그동안 분배, 복지, 생태, 평화를 주장하면 용공, 친북, 좌파로 매도되었다. 이것은 우리 시대의 비극이다.

이제 우리는 성장이 아니라 성숙해야 할 때이다. 만백성이 사람답게 사는 성숙한 나라가 되려면 우선 상식이 통하는 사회부터 되어야 한다. 철학의 부재를 탓하기 이전에 우리 사회에서 기본 상식을 회복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윤용택 / 제주대학교 철학과 교수>

*이 글은 헤드라인제주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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