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째 철창속 단식투쟁 양윤모 평론가 '옥중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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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째 철창속 단식투쟁 양윤모 평론가 '옥중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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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해군기지가 아니라 비무장 평화의 섬으로"

제주해군기지 공사를 저지한 혐의로 4번째 구속수감된 양윤모 영화평론가(55)가 한달째 목숨을 건 옥중 단식투쟁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그가 지난 2월27일 평화운동가 송강호 박사에게 옥중 편지를 보냈다.

3월1일로 29일째 옥중단식투쟁을 전개하고 있는 양윤모 영화평론가. <헤드라인제주>

다음은 편지 전문.


송강호 박사에게

공식적으로 단식 25일째, 사순절 14일째를 보내는 하루였습니다. 다가오는 3월 1일 행사를 앞두고 바쁜 중에도 시간을 내어 면회 와주신 점에 감사 드립니다. 함께 와주신 용성군, 파코, 실버에게도…

함께 준비하다가 혼자만 빠져 나와 어려운 상황을 송박사에게만 짐 지워준 것 같아 미안한 마음입니다. 한라산 북쪽 기슭에 자리잡은 이곳에서 편지를 쓴다는 것이 제 개인적인 육체적 현실에서는 꽤 쉽지가 않습니다. 장기 단식에 돌입하면서 뇌의 활동이 원활하지 못해 집중력에 어려움이 따르다 보니 난독증에 가까운 현상이 계속됩니다. 그래서 하루 종일 온 신경과 마음을 ‘육체’의 균형에만 쏠리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해외에서 보내오는 편지가 수두룩하고 전국에서 쇄도하는 응원편지, 강정의 평화활동가들의 개인 서신과 인터넷 서신도 속속 도착하지만 일절 답장한 적이 없습니다.

하루 중 오후에 있는 병동 운동이 그나마 제일 기쁨입니다. 병동은 기결동에 있어 운동장이 축구장만큼이나 커서 오랫동안 걷기 운동에 최곱니다. 하늘도 크게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한라산이 날씨에 따라 제각기 다른 겉모습을 뽐냅니다.

면회 오셨던 날, 시퍼렇게 드러난 한라산의 계곡에 채워진 곳곳의 눈을 보면서 한 때 조용필의 노래 제목처럼 ‘킬리만자로의 표범’을 가슴속에 차갑게 담고 키운 적이 있어요. 영원히 시들지 않는 영혼을 간작한 채 현실의 문제를 부딪혀 이겨내자고 말입니다. 그때의 이미지에 잠깐 빠져든 사이에 접견 호출을 받았어요. 송박사와 여럿의…

지금 제주도 전체의 운명을 미래에다 대고 보면 매우 암울한 전망이 예견됩니다. 해군기지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는 강정마을 문제는 예고편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의 고민은 “강정문제” 따로, “제주도 전체문제” 따로 애기할 상황이 아닙니다.

큰 틀에서는 함께 해야 할 하나의 문제로써 심각하게 자각하고 행동하는 운동체가 등장해야 할 때입니다. 시야를 높게 넓게 보는 방향으로 전환해야만 합니다. 그래서 3월 1일에 있을 ‘비무장 평화의 섬 운동 선언”은 시의 적절한 등장이라고 봅니다.

엄밀히 말하면 제주에서의 평화운동은 제 2의 전환기를 맞이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강정에서의 경험이 더욱 발전, 확대되고 그 이론과 실천도 더욱 창조적이고 비전형성을 띄면서 가야 한다고 봅니다.

현실적으로 강정문제에만 집중하는데도 벅차다고 생각하는 그룹이 있습니다. 5년여의 집중 투쟁이 반드시 성과가 없었던 것도 아닌데도 불구하고 정권교체의 실패와 제주도 우근민 지사가 주권을 국방부와 해군에게 내줘버린 시뮬레이션 검증의 통과의 경우를 보면서, 힘 빠진 상황을 달리 못 본 척은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우리가 눈을 잠깐 돌려 제주도 전체의 문제로 가져가는 것만이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일 수도 있다고 봅니다. 동력은 새로운 곳에서 다시 움트고 있습니다. 희망이 싹트고 있습니다. 우리가 함께 꿈꾸는 콘텐츠에 관심을 갖고 함께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곳곳에서 등장하고 있음을 저는 이곳에서 목격하고 있습니다.

아직 시작이라서 대안이 될만한 구체적인 행동규범이나 사업내용은 없지만 점차 마련해나가면 되리라 봅니다. 그것은 반드시 자발적 시민들의 모임 속에서 하나씩 시간을 갖고 천천히 끄집어 내고 공론화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조직단위나 권위적인 과거의 활동이 보여준 동원능력의 한계를 극복하는 방법의 하나라고 봅니다.

평화, 비무장 평화 문화의 다양성을 발현하고 전개하면서 생활 속에서도 이뤄지는 것이라야지, 행사, 집회, 일회성, 규모성에 집착하는 것은 ‘제주비무장 평화의 섬 선언 운동’에서는 절대 금물입니다. 지속적으로 시공간을 넘어 연대해 나가야 합니다. 계층간의 벽을 넘어 대중의 다양한 욕구와 현실에도 조응해야만 합니다. 비록 시작은 미약하지만 반드시 창대 하리라고 봅니다.

백 명, 이백 명, 천 명, 만 명… 저는 말했습니다. 반드시 제주도민 50만 명을 만난다고. 사람들은 믿지 못할지 모르나 저는 믿음이 있습니다. 반드시 제주도민 50만 명을 만나고 전국이 함께 하는 백만 대행진을 이뤄 제주도가 100년의 고통으로 떨어지는 것을 반드시 막아내고 제주도에서 국방 군사시설이 철거되는 군대 없는 섬, 아름다운 제주도를 만들고야 말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만나는 소수의 1인 일지라도 정성을 다해 기도하는 마음으로 다가가고 대화하면서 생활의 지속성 가운데 신뢰를 얻어가는 착실한 과정이 매우 요구됩니다. 이러한 자세가 백만 대행진 기적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설문대할망이 우리를 도울 것이며, 제주의 1만 8천 신이 우리와 함께 할 뿐 아니라 4.3의 영령들이 우리의 됨됨이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왜냐고요? 지금 4.3은 현재 이곳 제주에서 고스란히 “현재 진행형”으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주도 우근민 지사는 드디어 본색을 드러내고 말았습니다. 지난 2년여 동안 시뮬레이션 검증과정에서 그는 제주도민과 전국의 평화시민들을 기만해 왔습니다. 결국 그는 이번에 제주도의 주권을 자본독재그룹과 군사마피아그룹에 넘겨주고야 말았습니다. 이는 아주 심각한 시작입니다. 이제 제주도는 오키나와와 하와이에서 그 예를 봐온 것처럼 군의 부속행정도시가 되고 말았습니다.

앞으로 제주도민의 근면 성실한 삶의 태도로는 자신들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없는 속박의 굴레에 갇히게 됩니다. 이것이 곧 100년의 고통의 질곡속으로 들어가는 제주도입니다. 이것에 강력하게 항거하는 정신이 ‘제주 비무장 평화의 섬 선언 운동’입니다.

이러한 운동의 전개가 본격적으로 이뤄질 때 강정문제도 함께 해결의 길을 찾게 될 것입니다.

아름다운 구럼비와의 만남에서 제 인생에 커다란 변화가 왔습니다. 다시 한 번 제 운명이 새로운 전환기를 맞고 있습니다. 이것은 저로 하여금 이러한 거듭된 발전의 계기를 마련해 주신 하느님뿐만 아니라, 제 고향의 조상들의 부름이 느껴지기도 한 측면이 있습니다.

이제 저와 송강호박사 및 함께하는 외로운 의인들의 노력은 시대의 소명을 받은 것입니다. 즉 우리들의 차례, 순서가 왔다고 봅니다. 피할 수 없는 운명입니다. 그것은 곧 미래 세대를 위한 저희들의 의무인 것입니다. 이 땅에 태어날, 그리고 어린이들의 미래세계를 위해 하느님의 창조환경을 그대로 보존하여 넘겨주어야만 합니다.

지금의 세기에서 한반도는 세계의 중심입니다. 그런데도 아직도 미국 중심의 세기에 머물고 있는 이 땅의 위정자와 제주도의 낡은 세대 지도자들은 제주도민을 군비확산 경쟁자들의 먹잇감으로 배치하려 하고 있습니다. 한반도, 즉 동북아가 현 세기의 중심이라는 사실에서 저희들의 역할이 매우 중차대합니다.

평화와 통일을 위한 ‘비무장 평화 선언’운동이 민족은 물론 동북아, 세계의 평화에 진전을 가져오리라 확신합니다. 그런 면에서 ‘제주도’가 중요하고 제주도의 역할론이 중요한 것입니다.
 
송박사,
개인적으로 언젠가 말씀 드린 적이 있지요?
제 자신이 먼저 ‘평화인’이 되어야 하겠다는 말씀, 기억나시죠?
본의 아니게 제주해군기지 건설반대 하던 중에 타인에 대한 증오심을 키웠던 것을 크게 반성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게 어느 날 뚝딱 되는 게 아니더군요. 지난 날 제 인생을 반추하면서 제 개인의 역사 속에서 키워 온 폭력성을 불러내어 대화를 나누고 있습니다.

특히 이번 사순절은 여러모로 의미가 깊습니다. 회개와 속죄의 뜻을 담아 제주해군기지 건설반대를 위한 옥중단식은 계속됩니다. 늘 곁에서 함께 해주시고 격려해주신 문정현, 문규현신부님, 김성환신부님 그리고 송박사와 소스텔라 수녀님, 박상희목사님이 기억에 떠오릅니다.

언젠가 저도 ‘평화 활동가’와 함께 영화평론가로 불리길 희망하며 노력하겠습니다. 그래야 다른 사람들에게 ‘평화’를 말할 자격이 제 스스로에게 주어지겠지요? 먼저 제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겠습니다. 지난 1월 27일에 있었던 제 1차 ‘제주비무장 평화의 섬 선언대회’ 전후로 많이 고민하며 저의 무지와 완고한 마음에 변화를 꾀하기 시작했습니다.

“제주를 구하자!
백 년의 고통 속으로 들어가는 제주를 구하자!
지금 제주는 위험한 기로에 처해 있습니다.
더 이상 제주도는 자본과 안보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이제야말로 ‘노(NO!)!라고 외쳐야 할 때입니다.
제주도민의 아름다운 자연유산과 환경, 전쟁 없는 도민의 공동체를 후손에게 온전히 물려 줄 수 있도록제주 ‘비무장’ 평화의 섬 선언대회의 행진에 함께 해주시길 간곡히 호소합니다.”

제주교도소에서
제주 비무장 평화의 섬 선언의 한 사람
양윤모 드림
2013년 2월 27일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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