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체제 개편 '유보' 카드, 왜 끼워넣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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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체제 개편 '유보' 카드, 왜 끼워넣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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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논단] 좌초위기 민선 5기 '기초자치단체 도입' 공약
별개 성격 억지 끼워넣기...'빠져나갈' 명분만들기?

민선 5기 제주도정 출범 후 3년째 이어져 온 제주특별자치도 행정체제개편 논의는 결국 원점으로 되돌아왔다.

제주특별자치도 행정체제개편위원회가 6일 전체회의를 열고 현재 압축 대안으로 제시된 2개 모형에서, '행정시 권한강화 후 행정체제 개편안'이라는 추가적 대안으로 설정키로 한 것은 그동안의 논의를 원점으로 되돌리는 결과로 이어지게 할 전망이다.

이는 2010년 7월 '제주형 기초자치단체 도입'을 핵심공약으로 내걸고 출범했던 민선 5기 도정이 '꽁무니'를 내리고, 사실상 빠져나갈 명분찾기에 나선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그동안 일련의 과정을 보면 이렇다.

행정체제 개편위는 당초 2011년부터 2012년 초까지 연구용역과 여론조사, 전문가 논의 등을 통해 최초 5개 안을 압축해 △시장직선.의회 미구성안(행정시장 직선제) △시장직선.의회 구성안(기초자치단체 부활) 등 2개 대안을 제시했다.

당초 계획대로라면 지난해 이미 행정체제개편위 차원의 대안 선택과정은 끝났어야 했다. 그러나 계속해서 지지부진하게 이뤄져왔고, 이 로드맵은 상당부분 차질을 빚었었다.

민선 5기 전반기 행정시 방문 때마다 "2014년 6월 지방선거 때부터는 주민들이 시장을 직접 선출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던 우근민 제주지사의 발언도 수그러들었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제주특별자치도형 기초자치단체 도입'은 우 지사의 공약 중 핵심이었다.

하지만 정작 이 개편논의를 진행하는 과정 속에서는 우 지사는 "도민들의 의견에 따르겠다"는 말로 슬그머니 뒤로 빠졌다. 행정체제개편위 주도하에 진행되는 도민의견 추이를 지켜보겠다는 말이다.

그러다가 이번에는 기존 대안에서 '행정시장 권한강화 후 행정체제 개편안'이라는 것을 압축대안에 끼워넣었다.

행정체제개편위는 도의회가 행정체제개편위원회의 운영기간 연장안을 의결하면서 이 내용을 '부대의견'으로 제시했기에 불가피하게 3개 대안으로 확대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는 개편위의 원칙과 기준에서 크게 벗어난 것이다. 이미 시간적으로 상당기간 지체돼 버린 현실 속에서 제주도가 '빠져나갈 명분'에 지나지 않는다.

도의회의 부대의견 의미를 반드시 '압축대안으로의 끼워넣기'로 해석해 '설계변경'을 했어야 했는가 하는 점이 가장 큰 의문이다.

부대의견을 보면, "현재의 제주형 행정체제 개편 2개 대안 중 특정안에 대하여 결정짓지 말고 '행정시 권한강화 후 행정체제 개편'까지 포함하여 도민의견을 충분히 수렴할 것"이라고 명시돼 있다.

개편위의 주장처럼 이 문구를 2개 대안에서 '플러스 1'을 해서 3개 대안으로 하라는 말로도 해석될 수 있다. 하지만 이번에 추가된 것은 대안적 성격의 내용이 아니다.

'행정시장 권한강화 후 행정체제 개편'이란 말은 결정의 시점을 갖고 언급한 것이지 '대안'과는 거리가 멀다.

즉, 설령 도의회의 부대의견을 전적으로 수용한다고 한다면, 압축된 2개 모형은 그대로 유지한 채, 전체적으로 유보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놓고 논의하는 환경을 만들었어야 했다.

물론 여론조사 등을 할 때에는 이 내용도 하나의 선택사항에 포함될 수 있다. 그러나 모형의 대안과는 분명히 다른 것이다. 이는 '왜곡된 결론'으로 이어지게 할 소지가 크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억지로 만들어진 이 세가지 대안을 갖고 의견조사를 한 결과 3대안이 높게 나왔다면, 1, 2대안은 3대안 보다도 못하다는 해석으로 이어질 수 있다. 분면 1, 2대안과 3안은 성격 자체가 다른 것임에도 불구하고 행정시장 직선제나 기초자치단체 부활 대안이 마치 지지를 받지 못했던 것인 만냥 왜곡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마치 '유보하자'는 내용도 하나의 행정체제 개편 모형의 대안인 것처럼 제시한 것은 도민들을 우롱하는 처사에 다름없다.

더욱이 '학계인사'의 연구용역 결과를 토대로 해 일을 진행시킨다는 개편위가 이러한 점을 간과했다는 것이 더욱 의아스러울 따름이다.

현실적으로 2014년 6월 지방선거에서는 기대하기 어려운 만큼 논의를 일시 중단하자고 제안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차라리 솔직하게 논의를 잠시 중단하고 '유보할 것인지, 지금 결정을 내릴 것인지'에 대해 묻겠다고 선언하는 것이 나았을 법 했다.

선거가 이제 1년여 앞으로 임박해 있고, 올 한해 이 행정체제 개편 문제도 시급히 해결해야 할 현안이 더 많이 있으므로 도민 역량 집중 차원에서 '논의 중단'을 선언했더라면 어쩌면 지금의 상황 보다는 나았을런지 모른다.

이러한 점 등등 때문에 일각에서는 이번 행정체제개편위 결정에 대해 '꽁무니' 내지 '꼼수'라는 말까지 나오는 것이다.

개편위는 앞으로 3월부터 5월말까지 전문가 및 도민 토론회, 공청회 등을 개최해 도민공감대를 형성한 후, 3개 안에 대한 객관적인 여론조사를 실시해 이 결과를 바탕으로 해 6월말까지 최종결론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사실상 압축대안 논의는 원점으로 돌아간 것이다.

문제는 제주도정이 올해부터 행정시에 인사권과 예산편성권 등을 부여하는 등의 권한 이양이 이뤄진 현재의 상황을 놓고 볼 때, 1안과 2안도 아닌 3안이 대안으로 선택될 가능성은 매우 크다는 것이다.

만약 3안이 결정될 경우 민선 5기 출범 후 2년 여동안 지속돼 논란 등  사회적 비용은 누가 책임져야 할 것인가의 문제도 남는다.

"제주형 기초자치단체 도입 꼭 하겠다", "도민의견 물어보고 하겠다", "2개 대안 중 하나를 결정하겠다" 등에서 결국 "유보하는 안도 묻겠다"로 말을 바꾼면서 결국 도민들만 '헛 논의'를 해 온 셈이 돼 버렸다.

실컷 논의하도록 불을 지핀 후, 슬그머니 빠져버린다면, 그 허탈감은 무엇으로 보상할 것인가. <헤드라인제주>

<윤철수 기자 / 저작권자 ⓒ 헤드라인제주 무단전재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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