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과근무수당 소송 '값진 결실'..."3년전 약속 지켰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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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과근무수당 소송 '값진 결실'..."3년전 약속 지켰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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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소방공무원 34명, 어렵게 얻은 수당 기부하게 된 이유
장기간 법정공방 '마음고생'..."우리보다 어려운 이웃 위해 의미있게 써야죠"

속 사정을 모르는 주변 사람들은 그들에게 따가운 눈초리를 보낼 뿐이었다. 익히 예상했던 바였지만, 공무원이 어떻게 금전적인 이익만을 챙기려 들 수가 있느냐는 따가운 눈총도 적지 않았다.

미지급 초과근무수당 지급을 요구하며 소송을 제기했던 제주지역 소방공무원 소송인단은 그렇게 약 3년여간 '벙어리 냉가슴' 앓듯 지낼 수 밖에 없었다.

지리한 싸움 끝에 값진 승리를 얻어낸 그들은 기쁨을 누릴새도 없이 지급받은 수당의 일부를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쾌척했다.

"처음 목적과는 달리 왜곡된 부분이 많아서 힘들었던 것은 사실이에요. 이제라도 오해가 풀리게 됐으니 참 감사하네요."

소송인단의 대표를 맡아오던 서귀포소방서 동홍119센터의 고우철 소방장은 마음의 짐을 털어내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초과근무수당을 돌려받은 소방공무원 34명이 17일 비영리공익단체인 아름다운가게에 4000만원의 기부금을 전달했다. <헤드라인제주>
# '밥그릇 챙기기' 눈총..."오해 안타까웠어요"

초과근무수당 지급 소송이 시작된 것은 지난 2009년이었다. 당시 소방공무원 36명은 몇년간 밀린 근무수당 10억2000만원을 지급해달라고 제주도에 대한 소송을 제기했다.

매달 40여시간에서 160여시간까지 초과근무를 하고서도 예산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수당을 받지 못했던 소방공무원들이 부당함을 들고 일어난 사례다. 제주도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현재까지 소송이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를 주장했음에도 일부 사람들은 그들에게 호의적이지 못했다.

"지금도 검색해보면 아시겠지만 많은 분들은 이번 소송을 보고 '밥그릇 챙기기'로 보셨어요. 공무원이 금전적 이익만을 추구한다고 생각하니 좋지 않게 보였겠죠."

아버지에게 아들이 반기를 들었다는 소리까지 들려왔다. "공무원들이 나라를 대상으로 소송을 제기한 것은 마치 아버지에게 자식이 소송을 건 격이라고도 하시더라고요."

이 같은 눈총에 맞서면서도 그들은 부당한 근무여건을 개선하기 위한 싸움을 계속해야만 했다. 소송의 궁극적인 목적도 수당을 받기보다는 소방관들의 열악한 근무여건을 알리고 싶어서였다.

"외형상 소송이라는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안 좋게 비쳐지지 않았나 생각해요. 그렇지만 누군가 지적하셨던 것 처럼, 아버지에게 우리의 동생과 형이 힘들어하고 죽어간다는 말씀을 드려야만 했어요."

지리한 싸움 끝에 그들은 소기의 성과를 이뤄냈다. 지난해 제주지방법원은 소방관들의 손을 들어줬다. 우근민 제주지사도 행정의 잘못을 인정하며 초과근무수당을 지급할 것을 약속했다.

그들만의 승리는 아니었다. 법원 결정에 따라 소송에 참여하지 않은 제주도내 소방공무원 509명에 대해서도 초과근무수당 130여억원이 순차적으로 지급될 예정이다.

# 지급받은 수당 절반 기부..."3년전 약속 지켜졌어요"

소송을 치르는 과정에서 한창 고달팠던 3년전, 회의를 하던 도중 한 동료 소방관으로부터 수당을 지급받게 되면 일부를 떼어다가 어려운 이웃을 위해 기부하면 좋겠다는 의견이 나왔다.

우리도 어렵지만 더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사용하면 더 갚지지 않겠나 라는 제안이었고, 34명의 소방공무원은 그 제안에 흔쾌히 응했다.

소방관들은 당시의 약속을 3년이 지난 오늘날 지켜냈다. 17일 그들은 선지급 받은 초과수당 8100만원의 절반인 4000만원을 떼어다가 비영리공익단체인 아름다운가게에 기탁했다.

"어려울때 나왔던 이야기었는데 그 마음을 지키는게 쉽지는 않죠. 그런데 모두들 그 마음을 유지하고 계시더라고요. 감사하기도 하고 존경스럽고 그렇네요." 고 소방장은 공을 동료들에게 돌렸다.

이들이 기탁한 기부금은 제주도내 소외계층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교육비 및 의료비, 취약계층의 정서치료를 위한 상담 및 교육프로그램에 사용될 예정이다.

미지급 초관근무수당 지급 소송을 제기했던 제주지역 소방공무원 소송인단 34명의 대표를 맡고 있는 고우철 소방장. <헤드라인제주>
# 열악한 소방공무원 처우..."어려움 말로 다 못합니다"

당초 목적은 이뤄냈지만 아직 이들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여전히 열악한 소방공무원들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첫걸음을 뗐을 뿐이다.

"소방관으로서의 어려움은 말로 다 못합니다. 법원에서도 제출했던 자료지만 소방관의 평균수명이 58.8세에 불과하다는 조사결과가 말해주고 있어요."

최근 통계자료에 따르면 해를 거듭할수록 오르고 있는 한국인의 평균수명은 약 80세다. 소방관들의 수명은 이보다 20년이상이나 미치지 못한다.

항상 사고위험에 노출됐다는 점도 있지만 잦은 야간근무 등 일정치 않은 근무일정 등으로 인해 몸이 쉽게 망가지는 탓도 크다.

"밤에도 사고가 발생할 수 있으니 야간근무는 물론 필요하죠. 하지만 소방관들의 입장에서 생각을 한다면 조금 더 나은 근무여건을 만드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문제일까요."

더 괴로운 점은 이 같은 상황을 하소연할 수 없다는데 있다. "저희도 공무원으로서 국민을 대상으로 한 봉사활동이다보니 여건이 어려워도 토를 못달지 않겠어요."

"소방공무원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가 1위라고 나왔던데, 내부적으로는 별로 기뻐하지 않아요. 일선 하위직 공무원들은 자괴적으로 바라봅니다. 이게 아닌데 어떻게 말씀을 드려야 할까 하고요."

최근 개봉된 영화들은 그들에게 힘을 실었다. <반창고>, <타워> 등 소방관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영화들로 인해 소방관에 대한 국민들의 시선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셔서 버틸 수 있었네요. 앞으로도 봉사한다는 심정으로 더 열심히 일해야죠." <헤드라인제주>

<박성우 기자 / 저작권자 ⓒ 헤드라인제주 무단전재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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