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빨간냄비..."아직 살만한 세상입니다"
상태바
따뜻한 빨간냄비..."아직 살만한 세상입니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는 이야기] 구세군 유정훈 사관의 훈훈한 겨울나기
"어려움 함께하는 손길 많아져...봉사자 도움도 든든해"

입김이 서리는 겨울이 다가오면 시내 곳곳에는 정겨운 종소리와 함께 빨간 냄비가 자리를 잡는다.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온 구세군 자선냄비. 성탄절을 맞이하는 거리를 따뜻하게 녹였다.

애써 지나치려다가 차마 발걸음을 옮기지 못한 한 시민은 주머니 깊숙히 쑤셔뒀던 지폐 몇장을 냄비에 담고, 몇 천원과 비길 수 없는 풍족한 마음을 얻어갔다.

철 없이 인파속을 뛰어다니던 어린 아이는 엄마가 쥐어 준 동전 몇 닢을 들고 잠시 쭈뼛쭈뼛거리다가 성큼 다가와 빨간 냄비에 동전을 집어넣고는 "헤~"하고 웃었다.

"어렵다, 어렵다고들 하는데 어려운 와중에서 그 어려움을 함께 나누려고 하시더라고요. 이정도면 아직은 살만한 세상 아닙니까?"

제주지역 구세군의 유정훈 사관은 활짝 웃으며 동참해 준 시민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했다.

유정훈 사관. <헤드라인제주>
# "어렵다고들 하시던데, 그 어려움도 함께 나눠주셨어요"

세계 123개국에서 활발한 사회사업을 전개하고 있는 구세군. 한국의 경우 1908년부터 활동을 시작해 어려운 이웃을 돌보는 자선사업의 대명사로 첫 손에 꼽혀왔다.

모금을 통해 모인 성금은 긴급구호나 의료지원, 저소득 가정의 어린이와 노인들을 위해 쓰인다. 세계적인 네트워크를 통해 제3세계의 극빈층 어린이나 굶고 있는 북한 주민들을 위한 지원도 펼쳐진다.

특히 구세군의 아이콘인 '빨간 자선냄비'는 친숙함을 넘어 생활의 일상이 됐다. 무심코 거닐다가 자선냄비 종소리가 들리면 절로 미소가 지어지고는 한다.

"지난 9일부터 24일까지 제주시청과 중앙로 인근에서 자선냄비를 뒀어요. 기부하시는 분들 중 한 분도 아까워하는 표정을 짓거나하지 않으셨습니다. 정말 감사할뿐이죠."

유 사관은 들뜬 목소리로 이야기를 풀어갔다. "제주의 경우는 지난해 20%가량 모금액이 늘었거든요. 이번에는 지난해보다 더 많은 분들이 참여해주신 것 같아요. 어렵다고들 하시는데 그 어려움을 공유하려는 마음이 더 많았어요."

모금액 보다는 시민들의 참여가 늘었다는 점에서 크게 고무된 그였다.

"예전보다 5만원권이나 1만원권 지폐를 내는 분들은 줄었어요. 금액으로 따지면 적을지도 몰라요. 그래도 어려운 가운데 사랑의 나눔에 동참하는 마음을 갖고 계시는 것 같아요."

눈보라가 몰아쳐도 묵묵히 자선냄비를 지키는 자원봉사자들의 덕도 컸다.

"비와 눈보라를 맞아가면서 거리에서 모금운동을 하는게 효율적이지 못한 면도 있어요. 왜 하필 겨울에 하냐고 묻는 분들도 계시더라고요. 그래도 이런 분들의 동참과 관심의 표현이 따뜻한 마음을 나눌 수 있게하지 않는가 생각합니다."

# 카드단말기 모금운동 "다들 재미있어 하셨어요"

올해 처음으로 도입된 카드단말기 모금도 시민들의 호응을 이끌어냈다.

"한번 카드를 긁으면 2000원이 빠져나가는 방식이에요. 기계 설정을 달리하면 더 큰 금액을 기부할 수도 있는데, 큰 부담을 드리지 않기 위해 2000원을 기본으로 하고 있어요."

가령 1만원을 기부하려하는 시민은 카드 5번을 긁는 방법으로 모금운동을 벌였다.

"걱정하는 마음도 있었는데 다들 흔쾌히 받아들여주셨어요. 재미있어 하시고요. 격세지감이라고 말하며 웃으시던데요."

# 자발적인 봉사자 도움에 열악한 환경 너끈히 극복

제주의 경우 구세군 자선냄비는 1993년이 되어서야 첫 종을 울렸다. 최근에는 제주시와 서귀포시에 각각 한 명씩의 사관이 배치돼 해당 지역의 전반적인 사업을 총괄하는 시스템으로 운영된다.

변변한 사무실과 구세군 사업을 전담하는 직원은 없다. 구세군 성금으로 만들어진 지역아동센터가 본거지고, 센터의 선생님들이 일을 거드는 방식으로 사업을 꾸려왔다.

"열악하다고 볼 수 있지만 전임 사관님이 너무 터를 잘 잡아두셨어요. 제가 할 일은 이 사업을 잘 지켜나가는 일입니다." 지난해 제주에 첫 발을 디딘 유 사관은 모든 공을 전임자에게 돌렸다.

전담 직원이 없는 것 정도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어려운 이웃들과 함께하고자 하는 봉사자의 자발적인 참여가 해마다 이어지면서다.

"어린이 복지사업도 굉장히 중요하고요. 끼니를 떼우지 못하는 저소득층 가정에 음식을 나눠주는 사업도 벌이고 있습니다."

구세군은 제주지역에서는 아동복지에 힘을 쏟고 있다. 또 슈퍼와 마트 등에서 판매하는 제품 중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아 팔기 애매한 제품들을 받아다가 저소득 가정에 나눠주는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 "전임 사관님 따라 더 열심히 해야죠"

지난해 10월 제주에 정착한 유 사관은 아직은 제주생활에 서툰점이 많다며 자세를 낮췄다.

"네비게이션을 찍어도 골목길은 잘 모르니 지명을 찾는 것이 쉽지 않더라고요. 또 제주어를 알아듣는데도 어려움이 많고요. 그나마 억양은 조금 익숙해졌지만 정신없이 적응해가고 있는 중입니다."

특히 유 사관이 오기 전 약 12년간 제주에서 구세군 활동을 벌이며, 다양한 사업을 정착시킨 제현우 사관에게 공을 돌렸다. "제 사관님이 너무 사업을 잘 정착시켜놓으셨어요. 저는 그 일을 차질없이 진행하는 업무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전임 제현우 사관은 급작스런 간경화 증세로 오랜 투병을 이어오고 있어 제주사회에 안타까움을 전한 바 있다.

"다행히 간 이식수술을 무사히 마치고 지금은 제주에서 몸조리를 하고 계세요. 제 사관님의 소식을 들은 많은 분들이 도움을 주시고 기도해주셔서 많이 좋아지셨습니다."

전임 사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유 사관도 제주에 뼈를 묻을 각오를 다졌다.

"이곳의 토속적인 전통을 알고 문화를 배우는 것이 2~3년 정도로는 안되지 않겠어요? 이제 지금 만들어진 일을 어떻게 활성화시킬까 고민해야죠."

앞으로의 제주생활이 더욱 바빠질 것이라고 너털웃음을 짓는 유 사관. "어떻게 하면 어려운 분들의 입가에 웃음을 되찾을 수 있을지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헤드라인제주>

구세군 자선냄비에 관해 설명하고 있는 유정훈 사관. <헤드라인제주>
<박성우 기자 / 저작권자 ⓒ 헤드라인제주 무단전재및 재배포 금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딥페이크등(영상‧음향‧이미지)을 이용한 선거운동 및 후보자 등에 대한 허위사실공표‧비방은 공직선거법에 위반되므로 유의하시기 바랍니다.(삭제 또는 고발될 수 있음)
댓글수정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