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키나와의 교훈, "제주해군기지 대신 평화기지"
상태바
오키나와의 교훈, "제주해군기지 대신 평화기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칼럼] 오키나와를 통해서 본 제주해군기지 /윤용택 교수

제주와 오키나와는 자연풍광이 아름다우면서도 뼈아픈 과거를 안고 있다. 지난 해 7월 오키나와를 방문한 적이 있다. 오키나와 평화기념관 언덕에 서서 눈이 시리도록 파란 바다를 보노라면 국가, 전쟁, 평화 등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된다.

지정학적으로 많이 닮은 제주와 오키나와는 예전에는 모두 독립국이었다. 고대왕국 '탐라'는 1105년 고려에 편입되어 제주(濟州)가 되었고, 근세왕조 '류큐[琉球]'는 1879년 일본에 편입되어 오키나와현이 되었다.

두 지역은 독립국으로서의 지위를 잃은 후 주변 강대국의 주도권 싸움에 말려들어 비극적 사건을 겪었고, 지금도 많은 희생을 치르고 있다. 몽골이 고려를 침입한 이후 제주는 100여 년간 몽골 지배를 받았다.

일제강점기 이후 미국과 소련이 힘겨루기 하면서 한반도가 남북 분단되는 과정에 제주는 당시 도민 9분의 1에 해당하는 3만 여명이 희생되는 4.3을 겪었다. 그리고 지금은 자칫하면 해군기지 문제로 인해 미국과 중국의 주도권 싸움에 휩쓸릴 상황에 처해 있다.

오키나와는 일본 본토와는 다른 언어, 풍속, 역사 등을 갖고 있었다. 그러기에 일본은 오키나와인들에게 많은 차별을 가했고, 오키나와 고유문화를 없애려고 철저하게 동화정책을 썼다. 오키나와인들은 차별을 벗어나기 위해 '표준어'를 빨리 배워야 했고, 자신들의 풍속을 버려야 했으며, 일본에 동화되었다는 것을 입증하려고 오키나와 전투에서 일본 천황을 위해 수많은 이들이 목숨을 바치기도 했다.

일본은 태평양전쟁에서 본토방어를 위해 오키나와에서 미국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고, 그 과정에서 오키나와 주민 4분의 1에 해당하는 십수만 명이 희생되었다. 1945년 종전 이후 미국은 1972년까지 오키나와를 직접 지배하였고, 지금도 오키나와에는 주일미군기지의 75퍼센트가 있으며, 오키나와 지역 20퍼센트가 미군기지로 사용되고 있다.

전쟁 기록은 승자의 기록이기에 왜곡되는 경우가 많다. 지금까지 우리가 접한 태평양전쟁 기록은 주로 미국과 일본에 의한 것이었다. 오키나와인들은 오키나와 전투에서 본토인들이 체험하지 못한 한 쓰라린 아픔을 겪었다.

그런데도 본토인이 아닌 순수 오키나와인의 입장에서 오키나와 전투를 조명한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 따라서 오키나와의 양심적 지식인 메도루마 슌이 종전 60주년을 맞아 쓴 '오키나와 전후(戰後) 제로년'은 우리의 주목을 끈다.

그는 오키나와인의 입장에서 오키나와 전투의 실상을 이야기하면서 지난 60년간의 오키나와 현실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오키나와는 미군의 후방지원기지이자 출격거점기지 역할을 한다.

그러다 보니 잊을 만하면 헬기나 제트기가 학교에 추락하고, 미사일과 불발탄 폭발 사고가 나고, 주민들이 미군 트레일러에 깔려 죽고, 미군병사에 의해 성폭행 당하는 등 미군에 의한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오키나와는 전쟁이 끝난 이후라는 의미에서의 '전후(前後)'는 없으며, 계속해서 미국이 일으킨 전쟁의 소용돌이에 있다고 고발한다.

저자인 메도루 슌은 1960년생이고, 그의 아버지는 1930년생이다. 열네 살 패잔병 소년이었던 아버지는 오키나와 전투를 체험한 마지막 세대이고, 저자는 그 체험을 직접 들을 수 있는 마지막 세대이다. 그는 오키나와인들은 일본군이 자신들을 지켜줄 것이라고 믿고 있었지만, 오히려 자신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고, 그동안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친 것으로 알려진 순국(殉國) 미담들이 거짓이었다는 사실을 생생하게 드러내고 있다.

오키나와 전투에서 일본군은 주민들이 군사기밀을 누설을 두려워한 나머지 미군포로가 되느니 차라리 스스로 목숨을 끊도록 지시하고, 주민들을 방공호에서 쫓아내어 함포 사격현장으로 내몰고, 먹을 것을 강탈하고 스파이 혐의를 씌워 주민들을 살해하였다.

윤용택 제주대 철학과 교수. <헤드라인제주>
저자는 그러한 오키나와 전투의 실상을 본다면, 막상 전쟁이 벌어졌을 때 군사기지가 평화를 보장해주고, 군대가 국민을 지켜준다는 믿음이 얼마나 허망한지 알 수 있다고 폭로한다. 그러기에 그는 지금도 미군기지 반대운동과 평화운동을 펴고 있다.

'오키나와 전후(戰後) 제로년'을 읽다 보면 오키나와와 제주의 과거와 현재가 오버랩되고, 강정해군기지가 가져올 제주의 미래가 연상된다. 제주에 해군기지가 들어선다면 오키나와 미군기지가 그랬듯이 전쟁의 소용돌이를 몰고 올 가능성이 높다.

오키나와에서 오키나와 전투 같은 참상이 다시 일어나선 안 되듯이 제주에서도 4.3과 같은 처참한 비극이 되풀이 되어선 안 된다. 제주에 군사기지 대신 평화기지가 들어서야 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헤드라인제주>

<윤용택 제주대 철학과 교수>

*이 글은 헤드라인제주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딥페이크등(영상‧음향‧이미지)을 이용한 선거운동 및 후보자 등에 대한 허위사실공표‧비방은 공직선거법에 위반되므로 유의하시기 바랍니다.(삭제 또는 고발될 수 있음)
댓글수정
댓글 1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봉돌이 2012-11-15 00:47:59 | 121.***.***.166
오키나와, 제주도 참 많이 닮았군요....
슬프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