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시장서 채소 팔던 아줌마 "무용으로 새 인생 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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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문시장서 채소 팔던 아줌마 "무용으로 새 인생 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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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해송무용단 윤경월 단장의 도전
63세에 원광대 무용과 입학...“제주문화 세계에 알릴래요”

태왁을 가슴에 안고 '휘' 내쉬는 해녀의 가쁜 숨. 허벅을 어깨에 지고 물을 긷는 여인의 손짓. 제주인의 삶을 담아낸 절절한 몸짓과 눈빛이 춤사위로 살아난다.

선이 고운 몸짓으로 무용을 하고 있는 주인공은 다름 아닌 63세 할머니 윤경월씨(이도2동).

제주해송무용단 단장인 윤씨는 단원들과 함께 러시아, 중국 등 세계무대에 오르고, 전국 각지에서 공연하며 제주의 문화를 알리고 있다.

춤사위에 묻어나는 그녀의 삶을 듣기 위해 해용무용단 연습실을 찾았다.

# 동문시장서 채소 팔던 아줌마... “무용으로 제2의 삶 시작했어요”

윤씨는 곱게 화장한 얼굴로 몇 시간 뒤 있을 공연을 준비하고 있었다. 고운 화장 때문인지 얼굴에서 세월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무용을 하는 윤씨의 모습을 보면 인생의 굴곡을 짐작할 수 있다. 그녀의 절절한 춤사위는 질곡의 삶이 빚어낸 예술이기 때문이다.

윤씨가 무용을 시작한 나이는 43세. 무용을 시작하기 전에는 억척스럽게 일하며 자식들을 키우고 남편을 뒷바라지하던 ‘아줌마’였다.

윤경월(63. 이도2동)씨가 해송무용단 연습실에 전시된 상패들을 소개하고 있다. <헤드라인제주>
무용을 통해 제주의 문화를 알리고 있는 해송무용단 윤경월 단장. <헤드라인제주>
그녀는 스무살 꽃다운 나이에 남편에게 시집와 20년을 고스란히 가족을 위해 보냈다.

어려운 형편 탓에 온 식구가 먹고 살기 위해서는 억척스러운 아줌마로 변할 수밖에 없었다. 하루 2시간 쪽잠을 자며 밭에서 채소를 키워 동문시장에 내다 팔았다. 그렇게 눈물 젖은 20년을 보내고, 어느덧 자녀들을 대학까지 보내게 됐다.

그 무렵 윤씨의 나이는 43세. 20대 꽃다운 시절은 모두 가족을 위해 보내고, 그제야 그녀는 자신을 위한 인생을 살아갈 여유를 얻었다.

"아이들은 전부 대학에 보내고 나서야 제 꿈을 찾아갈 여유가 생겼습니다. 어느날 우연히 TV에서 제주문예회관에서 무용기초를 배워준다는 광고를 본 것이 시작이었어요. 그 후로 20여년을 쭉 무용의 길을 걷게 됐으니까요."

윤씨는 제주문예회관에서 1년간 무용기초를 배우고, 어멍무용단에 입단하며 본격적인 무용의 길을 걷게 됐다. 어멍무용단에서 11년가량 무용을 해오다, 2006년에는 직접 해송무용단을 창단하기에 이르렀다.

“무용으로 봉사도 하고, 저처럼 무용을 배우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무용을 가르쳐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살던 집을 개조해서 조그맣게 무용단을 차렸어요. 회원들이 많이 들어와서 함께 봉사도 가고, 대회도 많이 나갔죠.”

해송무용단 연습실에는 각종 대회에서 받은 상패와 사진들이 빼곡히 자리해 있다.

특히 2006년에는 토속해녀춤으로 세계예술교류협회의 ‘세계문화예술대상’을, 2007년에는 제7회 전국국악예술경연대회의 무용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또 자원봉사로 받은 상패도 눈에 띄었다. 2011년에는 한국민속예술연구원 사회봉사대상을, 2005년에는 사회봉사로 여성가족부장관의 표창장을 받기도 했다.

윤씨는 딸, 사위, 손자들로 총 25명의 가족봉사단을 구성해 한달에 한번 봉사활동도 전개하고 있다.

또 1년에 한번은 어르신 6-70명을 해송무용단 연습실에 모시고 경로잔치를 열어드리기도 한다.

“무용을 하는게 힘들때도 있지만, 무용을 통해 봉사를 할 수 있다는 점이 저에게 큰 힘이 돼요. 넉넉한 형편은 아니지만 신랑과 가족들이 물심양면 힘을 써줘서 계속 봉사를 이어갈 수 있었어요. 온 가족이 무용과 봉사를 통해 신명나게 살고 있습니다”

# 새로운 도전, 원광대 무용과 입학... “공부하는 재미에 날 새는 줄 몰라요”

무용을 통해 제2의 삶을 살게된 윤씨는 요즘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바로 원광대 무용과에 입학해 대학생이 된 것이다. 사이버대학이긴 하지만 공부하는 재미에 밤을 꼬박 지새우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어릴 적 어려운 집안형편 때문에 공부대신 돈을 벌어야 했어요. 아버지도 여자가 공부해서 뭐하냐고 하셨었죠. 그렇게 수십년을 공부를 하지 못했는데, 3년전 딸과 함께 동려야간학교를 찾아가게 됐습니다.”

다소 늦게 시작한 공부. 윤씨는 밤을 지새우며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했다. 엎드려서 공부하다가 팔꿈치가 시커멓게 짓물려도 모를 정도로 공부에 매달렸다. 열정적으로 수업을 해준 동려학교 선생님들도 큰 힘이 됐다.

노력의 결과는 빛을 발했다. 올해 4월, 원광대 후기 신입생 모집에서 무용과에 당당히 합격하게 된 것이다.

윤경월(63. 이도2동)씨가 지난 2008년 러시아에서 물허벅춤 공연을 펼치고 있다. <헤드라인제주>

해녀춤 공연 복장을 차려입은 윤경월(뒷줄 맨 왼쪽)씨와 해송무용단 단원들. <헤드라인제주>
“요즘엔 공부하는 재미에 푹 빠져서 하루하루가 즐거워요.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했었는데, 원하던 무용과에 입학했다는 게 믿기지 않죠. 정말 꿈을 이룬 것 같아요. 나이가 들어서 공부하는 게 느리지만, 열심히 공부해서 꼭 졸업하고 싶어요.”

그녀의 꿈은 지금처럼 계속 무용을 하며 제주의 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것이다.

“해녀춤과 물허벅춤에는 제주여인의 삶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요. 잊혀져가고 있는 우리 제주의 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게 제 꿈이에요. 저를 이어 무용을 할 제자들을 많이 양성해서 세계를 돌아다니고 싶어요.”

억척스러운 아줌마에서 무용인이 되기까지. 제주여인의 삶을 표현하는 그녀의 춤사위는 질곡의 삶을 통해 무르익어 몸짓 하나도 절절하게 다가온다. 나날이 깊이를 더해가는 그녀의 무대가 기대된다.<헤드라인제주>

무용을 통해 제주의 문화를 알리고 있는 해송무용단 윤경월 단장. <헤드라인제주>

<고용희 인턴기자/저작권자 ⓒ 헤드라인제주 무단전재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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