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들이 감히!" 진노한 할아버지...무슨 사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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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들이 감히!" 진노한 할아버지...무슨 사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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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청사 인근 유명인사(?) 고모씨 "내 이야기 들어주질 않아"
건물 떠나가라 '고성'..."우리나라 지키려면 내가 나서야 돼요"

시민들의 민원 업무를 맡는 제주시청에서는 간혹 한바탕 소란이 벌어지고는 한다. 민원인과 행정의 입장 차이로 복도가 떠나가라 고성이 오가는 경우도 종종 눈에 띈다.

이럴때면 시청 직원들이 안절부절 못하고 쩔쩔 맨다. 민원인을 함부로 대할수도 없는데 온갖 사람들의 이목이 쏠리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잊을만 하면 자전거를 끌고 제주시청을 배회하는 고씨 할아버지는 그야말로 공포의 대상이다. 한창 업무 처리가 바쁜 오전 10시 즈음에 시청을 찾아오는 할아버지는 방문할 때마다 건물이 떠나가라 고성을 내지른다.

그냥 소리를 지르는 정도가 아니다. 목소리를 쥐어 짜 안간힘을 쓴다는게 느껴질 정도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흡사 한(恨)이 서려있는 듯한 모습이다.

"니들이 감히 역사를 자기 멋대로 바꿔? 천벌이 두렵지도 않아?"

12일 오전 어김없이 제주시청 인근에서 소리를 지르며 고철을 모으고 있던 고모씨(73). 주변을 화들짝 놀라게 한 그에게는 무슨 사연이 있었던 것일까.

제주시청 인근을 지나는 고모씨. <헤드라인제주>

# '소리 지르는 할아버지'..."여긴 탐라국이 아니라 대한민국이야!"

제주시청에서 고씨를 모르면 간첩이다. 직원들은 물론 인근 상가 주인들도 '소리 지르는 할아버지'라 하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그러나, 그가 무슨 이유에서 소리를 지르는지 아는 이들은 별로 없다.

고씨가 제주시청을 오간지 올해로 7년째지만 그와 이야기를 나눠 본 이들이 드물기 때문이다. 연차가 어느정도 쌓인 공무원들은 알아서 고씨를 피할뿐더러 처음 온 직원들도 그에게 쉽게 다가가지 못한다.

한참 소리를 지르던 중 마주한 고씨는 쉽게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이야기를 이어갔다.

"대한민국 국토를 지켜야 하는 우리가 무슨일을 하고 있는지 알아요? 옆에 일본이나 중국에 땅을 그냥 내주게 생겼어!"

그의 주장은 이렇다. 제주시 삼성혈에는 이 곳이 '탐라국 발상지'라고 설명하는 비석이 세워져 있다. 고.양.부가 처음 탄생해 탐라국을 만든 곳이라는 설명이다.

그런데, '발상지'를 기재하는데 한자로 '터 지(址)'자가 아닌 '땅 지(地)'를 사용한 것은 크나큰 잘못이라는게 그의 생각이다. 엄연한 대한민국 땅이 비석으로 인해 탐라국 땅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것.

"신라도, 고려도, 백제도 다 우리 조상들이지만 그 경상도 땅을 '신라땅', '백제땅'이라고 하지 않아. 그런데 어떻게 여기가 탐라국 땅이라고 할 수 있어! 지금 한참 독도로 시끄러운게 확실한 증거가 없다는건데 우리가 불리한 증거를 일부러 만드나?"

또 삼성혈에 비석을 세운 시도부터가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옆에 놓여있던 식용유통을 찌그러트리면서 설명을 이어갔다. "이게 고려청자라고 생각하면 이렇게 함부로 할 수 있겠어요? 그런데 삼성혈에, 우리 문화재에 뿔을 왜 달아 놓는거야." 인위적으로 세운 비석은 문화재 훼손이라는게 그의 주장이다.

제주시청 인근을 지나는 고모씨. <헤드라인제주>

# "나 혼자 소리 질러서라도 우리나라 지켜야"

냉정히 따지면 그의 주장이 논리적이지는 못하다. 설명하는 도중에도 다소 앞뒤가 틀어지기도 했다. 제주의 시조인 고.양.부와 관련된 이야기도 한참 들려줬지만, 쉽게 이해하기는 힘든 내용들이었다.

그런데 고씨 스스로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게 내 주장이라 이해하기 어렵기는 해요. 학자들이 해석하는 것은 다르지. 그래도 이렇게 판단할수도 있는거 아닌가? 다른 사람들이 다 아니라고 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해."

다소 차분해진 그는 이야기를 이어갔다. "내가 옛날에 고등학교까지도 나왔어요.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해도 내 말이 먹히지를 않아. 우리나라 일이고 우리 선조들 일 아닌가. 나 아니면 나설 사람이 없지 않겠어요?"

소리를 지르기 시작한 것은 그에게 있어 최후의 선택이었다. 이러한 주장을 토로해도 들어주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엄청 화가난 것 같아 보이기는 해도 누구에게 악감정을 갖고 소리를 지르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나도 하다보면 스트레스도 받고 그러지. 놀라는 사람들 보면 미안할때도 있고 그래. 그래도 민주주의 국가인데 소리도 지를 수 있고 그렇다고 생각해요. 그래도 소리를 지르다보니 이렇게 이야기를 듣는 사람도 생기잖아."

하지만 고씨는 이 부분에 대해 주장하는 것은 자신 하나만으로도 족하다고 말했다. "이런 부분을 사람들이 알아야 하는 것은 맞는데 다 같이 떠들면 '내란'이 돼요. 그냥 들어주면 되는거야."

간혹 그를 정신이상자 정도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점도 스스로 인지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소리를 질러서라도 자신의 생각을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뭐 크게 바라는건 없어요. 나 죽기전에 대한민국만 잘 보전되면 감사한 일이에요. 만약 내가 나서지 않아서 우리나라가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한이 생기지 않겠어요."

오래간만에 자신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이를 만났는지 한참동안 자신의 생각을 전한 고씨. 헤어진 이후 그는 소리지르기를 멈추고 목청껏 '껄껄' 웃음을 터뜨렸다. <헤드라인제주>

<박성우 기자 / 저작권자 ⓒ 헤드라인제주 무단전재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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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절부절 2012-10-12 18:27:01 | 220.***.***.5
"'안절부절'할 수 밖에 없다" 가 아니라 "안절부절못한다"가 맞을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