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런 '인사권 부여', 왜 태종 '양위 파동' 연상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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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런 '인사권 부여', 왜 태종 '양위 파동' 연상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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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논단] '도의회 인사권' 카드, 진정성을 의심받는 이유
두 수장의 '장군 멍군' 감정적 대치...얼떨결에 '인사권 독립'?

조선 태종은 제위기간 중 모두 네번에 걸쳐 양위(讓位) 파동을 일으켰다. 그 중 세번은 부화뇌동한 왕권 위협세력을 제거하기 위한 일종의 '노림수'였다.

이와 딱 맞아 떨어지지는 않지만, 지방정가의 최대 이슈로 부각된 우근민 제주지사의 제주특별자치도의회 인사권 독립이란 카드도 이 양위파동과 묘하게 오버랩되는 부분이 있다.

태종의 목적과는 분명하게 다른 차원이지만, 뭔가 '노림수'가 있는 것 같다는 점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또 인사권 독립이란 태풍의 중심에 놓이게 된 도의회 일반직 공무원들로 하여금 분명한 처신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에 있어서도 그렇다.

3개를 달라는 요구를 줄곧 거부해 왔었기에, 돌연 입장을 바꿔 3개가 아니라 아예 통째로 주겠다고 하니,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힘든 상황이다.

마치 '해볼테면 해봐라.', '권한을 주면 제대로 행사는 할 수 있겠니?'라는 식의 일종의 압박용 카드로 밖에 해석될 수 없는 부분이다.

심지어 우 지사의 제안을 전격 수용하겠다고 밝힌 도의회 내부에서도 어수선한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다.

1991년 지방의회 부활 이후 제주에서 첫 '지방의회 인사권 독립'을 쟁취해 냈다면, 크게 함성도 지르고, 대형 현수막이라도 내걸만도 한데, 자축하는 분위기는 찾아볼 수 없다.

권한을 주겠다는 우 지사나, "매우 전향적이고 획기적인 판단"이라며 수용하겠다는 박희수 의장이나 모두 뭔가 복잡한 계산 속에 액션이 진행되는 모습이다.

박 의장의 '서기관급 전문위원 3명을 별정직으로 채용할 수 있게 해달라'는 요청에, 우 지사는 '3명이 아니라 이왕이면 모두 가져가라'는 식의 피드백을 했다.

그랬더니 박 의장은 "좋다. 수용하겠다"며 다시 응수했다.

이러한 두 기관 수장의 장군 멍군식 응수는 분명 도민의 일반적 정서와는 별개로 한 감정적 대치로 밖에 볼 수 없다.

우 지사는 도민의 입장에서 볼 때 도의회에 인사권을 부여하는 쪽으로 가야 한다는 방향이 맞다고 생각해서, 진정성을 갖고 결정한 것이라고 말했지만, '진정성'이란 말은 요원하게만 다가온다.

우근민 제주지사와 박희수 제주도의회 의장. <헤드라인제주>

◇ 우 지사 '인사권 부여' 카드, 진정성을 의심받는 이유는?

우 지사가 내민 카드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하나는 중차대한 결정이 매우 즉흥적으로 이뤄졌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부여한 권한을 제대로 행사할 수 있는 제도적 뒷받침이나 환경적 조성을 위한 준비과정 없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첫번째, 왜 인사권 독립이란 카드가 갑작스럽게 나왔을까.

이번 제9대 도의회 후반기 의장단이 인사권 문제를 거론한 것은 불과 한달전이다. 당시 도의회에서 제주도로 보낸 공문의 내용을 보면 '도의회 인사권 독립'을 요청한 것은 아니었다.

인사권 독립은 장기적으로 가야 할 문제로 도의회 역시 인식하고 있었고, 그 맥락 속에서 서기관(4급)급 전문위원과 정책자문위원을 개방형 직위 또는 별정직 공무원으로 임용할 수 있도록 조치해달라는 요청이었다.

관련 조례에 기능직이나 별정직, 계약직 등에 대한 채용권한은 의장에게 있는 점을 명분으로 삼았다.

이에대한 제주도의 첫번째 대답은 '노(NO)'였다.

'인사권'의 문제라기 보다는 '조직권'의 문제로, 조직권은 아직 도의회에 위임되지 않은 사안이고, 또 이 문제는 정원관리 차원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 이유다.

서기관 3자리를 별정직으로 채용할 경우 그만큼 일반직 서기관 자리는 줄어들게 되는 점도 지적했다.

그러자 도의회는 두번째 공문을 보냈다. 자체 채용할 전문위원 수를 3명으로 구체적으로 적시하고, 채용유형도 종전의 '개방형 직위 또는 별정직'에서 '별정직'으로 압축해 제시했다.

첫 요구가 수용되지 않자 도의회에서 바로 한단계 강도를 높여 '별정직 채용'으로 나간 것이다.

이 두번째 공문에 대한 제주도의 입장 역시 '수용 불가'였다. 곧이어 이 문제가 대외에 알려지기 시작했고, 급기야 공직사회의 거센 반발이 일어나면서 제주도와 도의회가 정면 대치되는 양상으로 치달았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지난 23일부터 하반기 정기인사에 따른 도의회 인사협의가 시작됐다. 도의회는 △전문위원 2명을 전출시키되 전입은 받지 않는다 △도의회 사무처장은 총무담당관(서기관)을 자체승진시킬 것 등 2가지를 줄곧 요구했다.

이를 통해 서기관급 전문위원 3명을 자체 채용하고, 정책자문위원 4명을 증원시킨다는 전략이다. 이에대한 제주도의 답변 역시 '거부'였다.

이 때까지만 하더라도 철저히 "절대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던 제주도가 25일 오후 늦게 이뤄진 협의에서는 우 지사의 '인사권 부여'란 카드가 전격적으로 던져졌다.

우 지사는 많은 고심 끝에 제안한 의견이라고 말했지만, 다분히 '전략적인 차원'의 즉흥적 카드였다. 도민의 입장에서 생각했다면 광범위하게 의견수렴 절차라도 밟았어야 했으나 그렇지도 않았다.

◇ 우 지사의 '인사권 독립' 소망, 진심일까?

두번째, 진정 도의회 인사권 독립을 바라며 내민 의견이었을까 하는 내용적 측면의 문제다.

우 지사가 제시한 '인사권 독립'에 관한 의견은 '앞으로 제주도와 도의회의 인사는 분리해 운영한다'는 것을 기조로 해, 올해 9월 현재 정원.현원 내에서 채용, 전보, 일반직, 승진요구 등 인사권 독립을 부여한다는 것이다.

이사관(2급)급인 사무처장의 경우에도 도의회에서 자체 승진 임용하고, 공석 직위는 의회에서 충원하도록 했다. 대신 제주도와 도의회간 정례적 인사교류는 없다는 점이 전제됐다.

4급 이상은 지금부터 인사교류가 없음도 분명히 했다.

다만, 5급 이하 일반직 공무원의 경우 집행부와 의회간 전출입 인사교류 희망자에 한해 2013년 1월 정기인사시 1대 1 교류원칙에 따라 협의 반영 후 인사교류를 종결하자고 제안했다.

내년 1월 정기인사에서 4급을 그대로 의회 내에 묶어두고, 5급 이하 공무원 중에서 희망자에 한해 인사교류를 하면 도의회와는 철저히 단절하겠다는 것이다.

인사권을 부여하겠다는 부분은 매우 긍정적이나 하나하나 내용을 따져보면 '고사 작전'에 다름없다.

진정 인사권을 주고자 했다면, 도의회가 안정적으로 인사운영을 할 수 있도록 장기적 로드맵 속에 연차적 시행계획을 마련해 주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우 지사는 불과 '3개월'이란 짧은 시간을 주면서 여러가지 전제를 달았다.

4급 공무원의 경우 지금부터 아예 교류가 없을 것이란 얘기나, 5급 이하 공무원에서도 딱 한번의 교류기회, 그것도 1대1 교류원칙 속에 마지막 기회를 주겠다고 한 점도 그렇다.

도의회에서 전출하고자 하는 사람은 많고, 전입하는 사람이 적을 경우, 불가피하게 도의회에 잔류해야 하는 공무원이 발생할 수도 있는 부분이다.

두 기관 수장들의 갈등 속에 도의회 사무처 직원들만 '미운 오리새끼' 취급을 받는 처지에 몰렸다.

이러한 전제 속의 인사권 부여는 도의회의 전문성을 강화시키기 보다는 오히려 도의회를 고립시키고, 나아가서는 도의회 소속 공무원들의 자기계발 등을 저하시키는 역작용이 나타날 것이란 점은 공무원들도 인식하는 내용이다.

소위 '인사의 달인'이란 우 지사가 이런 전제 속에 인사권을 부여한다면 앞으로 도의회 인사운영에 있어 어떤 문제가 있을지 예상하지 못했을리 없다.

이 카드에는 분명 어떤 전략적 차원의 계산이 깔려있을 것이란 의구심을 사는 이유, 또 태종의 '양위파동'이 연상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 도의회 대응의 문제, '감정적 대응'...'소통 부족'

우 지사의 '계산'과 함께, 도의회의 일련의 대응과정에서도 문제는 많았다.

첫번째는 '감정적 대응'의 문제다.

인사권 독립의 문제를 현실적이고 실제적 측면보다는, '구호성'으로 해 작위적 여론몰이를 했던 부분이 적지않게 노출됐다.

그 일례가 '개방형 직위 또는 별정직' 채용을 정중하게 요청했다가 제주도가 수용하지 않자 '별정직'으로 압축해 무조건 달라는 식의 요구를 했던 점이다.

또 공직사회의 반발이 거세지자 노조의 피켓시위에 대한 비하발언, 심지어 보수우익세력에서 즐겨썼던 '배후조종설'까지 제기하며 노조 자체를 부정하는 발언까지 나왔다. 매우 경솔한 처신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두번째는 '도의회 인사권 독립'에 대한 소통이 과연 어느정도 이뤄졌고, 공감대 형성의 뒷받침은 됐는가 하는 문제다.

인사권 독립이란 키워드는 장기적으로 지방의회의 발전선상에서 고민하며 해결해야 할 과제인 것은 분명하나, 당장 도민의 삶과 직결되는 문제도 아니고, 매우 시급을 요하는 현안도 아니다.

그렇다면, 이 문제는 바로 당장 결판을 보겠다는 것이 아니라, '로드맵' 속에서 진행돼야 옳았다.

인사권 독립을 쟁취하기 위한 장기적 로드맵 속에 도의회 내부에서부터 충분한 논의를 통해 공감대를 형성하고, 그리고 도민사회와 공직사회를 설득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했다.

실질적 인사권 행사를 위해서는 제도개선이나 법률정비 등도 뒤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최소 도의회 내부 전체의원들과 사무처 직원들과의 광범위한 논의의 장을 마련하고, '작전'은 짜여졌어야 했다.

◇ 도의회는 왜 설득력 있는 논리 펴지 못하나?

세번째는 '논리의 설득력' 부분이다.

도의회는 줄곧 전문위원 3명, 정책자문위원 4명의 충원을 요구하면서 '전문성 강화'라는 이유를 전면에 내걸었다. 그러나 전문성 강화를 위해서는 외부 전문가 등에서 별정직으로 채용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지, 아니면 일반직 공무원으로 하는 것이 나은 것인지에 대한 충분한 설명을 하지 못했다.

마치 '외부전문가 별정직 채용=전문성 강화'라는 등식이 정답인 것처럼 하며 맞불작전에 집착했다. 또 공직사회에서 제기하는 정원 티오의 문제에 대해서도 이해하며 협의해 보려는 노력이 부족했던 것도 사실이다.

오히려 공직사회의 반발을 '밥그릇 싸움'으로 치부하며, '인사권 독립'이란 구호성 발언만 난무했다. 지금 우 지사가 제안한 내용대로만 할 경우 인사권 독립의 궁극적 목적인 '전문성 강화' 실현이 진정 가능한지 설득력있는 설명이 필요하다.

인사권 독립이 이뤄진 후 일반직 공무원들에게 승진기회가 많을 것이란 주장도 확실한 근거가 나오지 않고 있다.

당장 물갈이하고 정원조정하면서는 승진티오가 몇 있을 수 있으나, 일단 정원을 채우고 난 후부터는 상당한 정체가 빚어질 것이란 점은 쉽게 예상할 수 있는 부분이다.

◇ 앞으로 어떻게?...'로드맵' 짜고, 소통의 절차부터 다시해야

어쨌든 결론적으로 도의회도 우 지사가 내민 카드를 덥썩 받아안으면서 문제는 매우 복잡해지게 됐다. 거의 돌발적으로 제안되고, 얼떨결에 수용된 카드였기에 논의의 진전은 더욱 어려울 전망이다.

이미 우 지사는 줄 것은 다줬으므로 더 이상 양보할 것이 없다는 입장이고, 박 의장은 앞으로 좀더 요구해 얻을 것은 얻어내며 보완해 나가겠다는 입장이 서로 엇갈려 있기 때문이다.

갑작스럽게 뚝 떨어진 성과물과, 함께 공유하는 과정에서 얻어지는 성과물은 크기와 양은 같다 하더라도 의미와 가치는 같을 수가 없는 법이다. 인사권 독립이란 소식을 듣고도 도민사회가 냉담하게 지켜만 보는 이유도 이와 맥을 같이한다.

문제는 두 기관의 수장에 있다. 진정 인사권 독립을 해주고자 한다면, 또 인사권 독립을 희망한다면, '감정'을 버리고 큰 틀의 로드맵 작성에 나서야 한다. 처음부터 다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당장 내년 1월이 아니라 몇년을 걸려서라도 완성시킬 수 있도록 하나하나 계획을 마련하고 점차적인 방법으로 행해져야 한다. 지금과 같은 두 기관 수장의 장군멍군식 대응은 도민을 우롱하는 처사에 다름 아니다. <헤드라인제주>

<윤철수 기자 / 저작권자 ⓒ 헤드라인제주 무단전재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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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다 2012-09-30 22:23:20 | 220.***.***.35
이번 인사에 도내 공직자 7,000여명이 직간접적으로 연관이 있었을 거예요..

동네 아저씨 2012-09-29 11:33:22 | 211.***.***.28
윤철수기자님, 역시 , 현실을 정확히 짚었군요
요근래 보기드문 독심술이라해도 과언이 아니네요
철수 파이팅

역시 2012-09-29 09:54:15 | 59.***.***.109
명품 논단
두번 읽어도 후련

동감 2012-09-28 16:35:44 | 175.***.***.116
제주 언론에서 이런 논평 나오기 힘들죠. 헤드라인제주 분석에ㅜ동감
우지사의 노림수가 확. ㅡ 의회도 어설펐네요 세련되게 대응하지못하고
의회가 좀 어른스러워졌으면 ㅡ 전반기에는 젊어도 이러지는 않았는데

이긍 2012-09-28 16:27:52 | 211.***.***.28
거창한 이유가 아닌,, 사실은 엽관제를 하고 싶다는 거 아닌가요?

역시, 적절한 비유 2012-09-28 09:45:02 | 211.***.***.22
전하. 영을 거두어 주십시오 통촉하여. ㅡㅡ. 이럴줄 알았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