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등병의 편지', 조카가 징집영장 받고 입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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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등병의 편지', 조카가 징집영장 받고 입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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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윤미의 사는 이야기] (42) 조카의 징집영장

오랜만에 컴퓨터를 통해 흘러나오는 노래를 듣는다. 딱히 즐기는 노래도 없고 딱히 좋아하는 가수나 장르도 없지만 인터넷을 하다 개인홈페이지에 걸린 음악들에 빠져 하루 종일 머물러 앉아 떠날 줄 모를 때가 종종 있다. 그런 날이 바로 오늘인 듯하다.

모처럼 내리던 비가 그치고 맑은 초여름의 무더움이 작열하는 아스팔트의 이글거리는 열기와는 다르게 김광석의 노래가 내 귀를 잡아 앉히는 것을 보면 나도 이젠 나이가 들어버린 모양이다. 마니아가 아니면 이젠 알지도 못하는 그는 언제나 시작 전부터 가슴을 적시고 눈가를 붉게 물들이곤 하는 무언가가 있다.

그의 노래 중엔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가 있다. 이 노래를 듣고 있노라면 마치 공상SF영화를 보는 듯 한 착각에 빠져들 정도로 무척이나 재밌다. 하지만 가사도 뜯어보면 이 사회의 모순된 현상이나 세태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 담긴 듯해서 가슴이 뜨끔거리기도 한다.

하지만 그의 노래 중 가장 백미는 '이등병의 편지'라는 노래가 아닐까.
그는 이 노래를 통해 이 사회의 어른들이 모른 체하며 무시하며 어루만져 주지 못하는 급작스러운 외로움과 두려움에 떠는 젊은 영혼들을 따뜻하게 안는다.

갓 스물 혹은 그 사이를 오르내리는 솜털 보송한 젊은 청년들의 애환과 두려움, 그리고 절박한 외로움이 묻어나 그저 듣기만 해도 안타까움에 눈물이 뚝뚝 떨어져 내리기도 한다.

한동안 우리는 '뽀빠이 이상용'씨가 사회를 보던 '우정의 무대'를 보기 위해 시간을 비우고 텔레비전 앞을 지키던 시절이 있었다. 그리고 이 '이등병의 편지'는 흐트러지지 않게 줄을 맞추고 꼿꼿이 앉아 머리위로 손을 뻗어 박자를 맞추며 박수치던 박박 머리에 어린 티 가득 묻은 시커먼 군복 차림의 청년들이 그곳에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부모와 가족, 나라를 위해 젊음을 희생하는 것에 한없는 미안함과 감사함으로 대다수의 국민들은 눈시울을 적시며 시대적 아픔과 그들의 외로움과 이산의 고통을 함께 했었다. 지금도 나는 주변의 솜털 보송한 청년들이 자신의 젊음을 기꺼이 헌신하는 그것에 어떤 부채감을 느낀다.

평화와 무장이 대립하며 공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우리는 이 두 점을 마주 놓고 언제까지 평행선을 달려야만 하는 것인 지 의문이기도 하고 말이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정신적으로 가장 고통 받는 이들은 징집영장을 받고 가족과 연인, 친구와 학문, 직장마저 포기하고 가지 않으면 이 땅에서 범죄자가 될 수밖에 없는 어린 청년들.
내 아들이나 조카, 혹은 옆집 남동생, 어느 삼촌네 아들.

이 느낌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알게 모르게 느끼는 감정일 게다. 나 역시 언제 자라서 어른이 될까싶던 조카가 어느새 청년이 되어 징집영장을 받아 군인이 되었다. 저 아이가 어찌 그 혹독한 계절과 규율을 버티어 낼까하는 걱정이 이마 끝까지 처마처럼 늘어졌었지만 그런 걱정과는 다르게 아이는 또 열심히 버티고 잘 지내고 있는 듯하다.

매년 기록을 경신하는 더위와 추위에도 엄살 한번 부리지 못하고, 아파도 아프다고 쉽게 드러누울 수 없이 싫어도 싫다고 하지 못하고 제 자리를 지켜야만 하는 이 청년들에게 우리는 과연 무엇을 줄 수 있을까? 또 우리는 그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징집영장과 우리의 군인아저씨는 내게 딜레마가 되어가고 있다. <헤드라인제주>

강윤미씨 그는...

   
강윤미 객원필진. <헤드라인제주>
강윤미 님은 지난해 여름 제주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습니다. 전동휠체어를 타고 힘겹게 강의실을 오가는, 하지만 항상 밝은 얼굴을 하고 있는 강윤미 님의 모습은 아랏벌을 훈훈하게 해 준 나름의 유명인사(?)였습니다.

그 의 나이, 벌써 마흔여섯. 늦깎이로 대학에 입문해 국문학에 남다른 애정을 보였던 그는 365일 하루하루를 매우 의미있고 소중하게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휠체어에 의존해야 하는 어려움이 항상 직면해 있지만, 글쓰기를 좋아하는 그는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를 독자들과 함께 공유하기 위해 글을 연재하고 있습니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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