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운드그래퍼'...왜 바다로 마이크 돌렸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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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운드그래퍼'...왜 바다로 마이크 돌렸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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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단편숏컷' 강경덕씨의 제주자연 소리와 음악
자연의 소리로 '사운드아트' 창조..."제주는 정말 '짱'이죠"

잔잔한 바람이 부는 제주의 바닷가. 마이크를 든 한 남자가 나타났다. 남자는 노래를 부르려나 싶었는데, 이윽고 마이크를 바다로 돌렸다. 말 못하는 바다에게 무슨 사연을 들으려 하는 걸까.

남자를 따라 눈을 감으면, 그제야 그가 무엇을 갈무리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음소거 됐던 바다의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다. 그 순간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그저 귓가로 흘러가버릴 소리들. 남자는 붙잡아둘 수 없을 것만 같은 자연의 소리를 모아 음악을 만든다.

바로 제주에서 자연의 소리로 ‘사운드아트’를 만드는 강경덕씨(제주시 아라동 33). 음악그룹 ‘단편숏컷’의 멤버인 강씨는 제주에서 자연의 소리를 모아 음악의 소스로 활용하거나, ‘사운드아트’로 재창조시키는 일을 하고 있다.

음악그룹 단편숏컷의 강경덕씨(왼쪽)와 김민홍(서울, 39)씨. 단편숏컷 페이스북 제공 <헤드라인제주>
단편숏컷이 카페 'Bitter Sweet Sound'에서 공연하고 있다. 단편숏컷 페이스북 제공. <헤드라인제주>
포토그래퍼가 렌즈로 세상을 담아낸다면, 강경덕씨는 소리로 세상을 담아내는 ‘사운드그래퍼’인 셈이다.

강씨에게 제주의 자연은 모두 사운드아트의 소재다. 사람들이 스치듯 한 귀로 흘려보내는 자연의 소리들이 그를 거치면 예술이 되고, 음악이 되는 것이다.

“제주도는 저 같은 놈들한테는 정말 ‘짱’인 곳이죠. 소스가 정말 많거든요. 예를 들어 밤에 한라산을 가면 풀벌레소리가 서라운드로 머리를 관통해요. 자연의 소리는 어떤 음악보다도 이펙트가 강합니다. 가끔은 몸이 휘청거릴 정도로요.”

같은 음이라도 기계음으로는 낼 수 없는 자연 소리의 따뜻함이 그를 매료시켰다. 그는 자연의 소리를 녹음한 후 변환작업을 거쳐 음악에 사용하거나, 사운드아트로 만든다. 이러한 자연의 소리들은 ‘함정’, ‘렛츠 댄스’ 등 여러 음악의 소스로 활용됐다.

그런데 왜 유독 ‘제주’의 자연을 담으려 하는 걸까. 어떻게 보면 ‘미친 듯이’ 제주의 소리를 수집하고 있는 그는, “아무래도 소유욕 때문인 거 같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점점 사라져가고 있는 제주의 자연이 안타까워 ‘소리’를 통해 갈무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음악그룹 '단편숏컷'의 멤버로 사운드아트를 창조하는 강경덕씨. <헤드라인제주>
그는 제주해군기지 건설이 추진되고 있는 강정마을에도 다녀왔다. 지금이 아니면 곧 사라질 수도 있는 강정의 소리를 사운드아트로 담아내기 위해서였다.

“강정바다는 이 시기가 아니면 놓칠 거 같았어요. 강정에서 구럼비가 폭파되는 것을 눈으로 봤기 때문에, ‘소리’를 담으러 가지 않을 수 없었죠. 제주에는 강정바다 말고도 없어진 자연이 많아요. 오히려 강정을 통해 너무 뒤늦게 이러한 문제들이 알려졌다고 생각해요.”

그는 제주의 자연을 소리로 담아내는 작업이 사회적으로 목소리를 내기 위한 활동은 아니었다고 강조하면서도, 음악을 하는 사람들은 음악을 통해 시대를 기억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존레논이 히피문화로 한 시대를 대변했던 것처럼, 음악을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를 기억하고,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음악을 하는 것이 낭만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좀더 깊게 들어가면 철저히 현실적으로 변해야 하죠. 음악인들은 우리 시대가 이렇게 흔들리고, 사람들이 불안정한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걸 음악을 통해 표현해야 합니다.”

음악그룹 '단편숏컷'의 멤버 강경덕씨. <헤드라인제주>
그가 제주에서 소리로 자연을 기억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점점 사라져가는 제주의 자연이 ‘아직 살아있노라’고 말하고 있다는 걸 음악을 통해 기억하고,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중학생 시절부터 밴드활동을 시작해, 대학생 시절에는 제주의 힙합그룹 디피크루에서 활동하고, 지금까지 음악과 관련된 길을 걸어온 강경덕씨. 그는 앞으로도 좋아하는 음악을 계속하는 것이 꿈이다.

“저는 지금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감히 꿈을 이뤘다고 말할 수 있어요. 좋아하는 음악을 계속하는 게 꿈이에요.”

아쉽게도 아직 앨범을 통해 대중에 공개된 곡은 없다. 오는 8월 말, 경복궁 동서각로 지하로의 공간의 울림을 그대로 담아낸 단편숏컷의 EP앨범이 발매될 예정이다. 우선 강씨는 페이스북과 유튜브 사이트를 통해 곡을 알리고, 공연무대에서 음악을 선보이고 있다.

음악을 통해 세상을 담아내는 ‘사운드그래퍼’ 강경덕씨. 그가 담아낼 소리들이 들려줄 이야기가 기대된다.

단편숏컷 페이스북= http://facebook.com/danpyeon. <헤드라인제주>

<고용희 기자 / 저작권자 ⓒ 헤드라인제주 무단전재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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