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수 공수화의 둑이 무너지기 시작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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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수 공수화의 둑이 무너지기 시작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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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칼럼] 한국공항 지하수 취수량 증량...'공수화' 기조 균열
사기업 뛰어드는 지하수 시장, 신규허가 불허 어려워진다

신용인 제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헤드라인제주>
어릴 적 한스 브링커라는 네덜란드 소년이 둑에 작은 구멍이 생기는 것을 보고 한 손으로 밤새 막아 마을을 구했다는 이야기를 읽고 깊은 감명을 받은 적이 있었다. 만일 한스 브링커가 작은 구멍을 보고도 그냥 지나쳤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구멍은 점점 커져 결국 둑이 무너졌을 것이고 마을은 통째로 사라졌을 것이다.

제주특별자치도법은 도민의 공공자원인 지하수를 사기업이 먹는 샘물로 개발하지 못하도록 규정하여 지하수 공수화 원칙을 천명하고 있다(동법 제312조 제1항, 제3항 등 참조). 그런데 지금 ‘지하수 공수화’라는 커다란 둑에 작은 구멍이 생기려고 하고 있다. 한진그룹 계열인 한국공항(주)의 지하수 취수 증량에 대한 허가가 바로 그 구멍이다.

한국공항(주)은 지하수 공수화가 법제화되기 이전인 1984년 8월 30일 제주도로부터 제1호로 먹는 샘물 개발 허가를 받았고 그 후 기득권 보호의 차원에서 그 권리를 계속 인정받아 현재 1일 100톤 씩 취수를 하고 있다. 지하수 공수화의 유일한 예외를 인정받는 특혜를 누리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한국공항(주)은 증가하는 항공여객 수요의 충족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지하수 취수 허가량을 1일 100톤에서 200톤으로 증량해줄 것을 요청하는 지하수 개발ㆍ이용시설 변경허가를 신청했다. 반대여론이 비등했음에도 제주도 지하수관리위원회는 이를 허용하기로 결정했고 이에 우근민 지사는 지난 5월경 한국공항(주) 지하수 취수 증량 허가 동의안을 제주도의회에 제출했다. 제주경실련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상당수의 도의원들이 허용 입장으로 돌아섰기 때문에 동의안 통과는 시간문제라고 한다.

지하수 공수화 원칙에도 불구하고 제주도 지하수관리위원회가 위와 같이 허용결정을 한 법률적 근거는 동법 제312조 제2항이다. 동 조항은 이미 먹는 샘물 개발허가를 받은 자는 허가 받은 사항에 대하여 변경허가를 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 놓고 있다. 제주도 지하수관리위원회는 한국공항(주)에 대한 지하수 취수 허가량 증량이 동 조항의 허가 받은 사항의 변경에 해당한다고 보고 허용결정을 한 것이다.

그러나 지하수 공수화 원칙에 비춰 볼 때, 특히 동법 제312조 제3항과의 조화로운 해석상 한국공항(주)의 지하수 취수 허가량 증량은 허가 받은 사항의 변경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 증량 부분에 대해서는 신규허가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번에 변경허가가 이루어질 경우 다른 사기업이 먹는 샘물 개발사업에 뛰어들면서 지하수 공수화를 천명한 동법 제312조 제3항 등에 대해 헌법상의 평등원칙 위반을 이유로 헌법소송을 제기하게 된다면 헌법재판소는 이를 위헌으로 판단할 가능성이 크다. 한국공항(주)에게는 신규허가나 다름없는 지하수 취수 증량을 허용하면서 그 외의 사기업에게는 일체의 신규허가를 불허하는 것은 합리적인 차별이라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가 위와 같이 위헌 판단을 하게 되면 지하수 공수화의 둑은 와르르 무너질 것이고 사기업들은 먹는 샘물 개발사업에 마음껏 뛰어들 수 있게 된다. 그때 가서 우리가 땅을 치고 통곡을 하더라도 이미 엎질러진 물이 될 것이다.

도의원들이 한스 브링커의 이야기를 숙고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지하수 공수화라는 둑에 생기려는 구멍을 막아주기를 바란다. 도민의 대표자인 도의원들이 훗날 ‘도민의 생명수를 팔아먹은 매향노’라고 욕을 먹는 일은 없어야 할 것 아닌가. <헤드라인제주>

<신용인 제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외부원고인 이 글은 헤드라인제주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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