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뭐 큰 일 했다고, 남들 들으면 흉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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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뭐 큰 일 했다고, 남들 들으면 흉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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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어버이날 효행상 수상자 황상순씨의 억척일기
노모와 1급 시각장애 남편 든든한 버팀목...틈만나면 봉사활동

5월의 푸르른 햇살이 따스하게 비추는 날.

취재진은 제주대학교병원을 찾았다. 이번 제40회 어버이날 기념식에서 효행자 분야 효행상(국무총리상)을 수상하게 된 그녀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핑크색 앞치마를 두른 채 "여기에요" 라고 취재진을 부른 황상순 씨(60, 제주시 이도2동)는 서글서글 웃고 있었다.

"아, 이래서구나!"

사람들은 흔히들 '딱' 하고 느낌으로 오는 때가 있다고들 했다.

"부끄럽죠. 내 부모 모시는 건데, 남들 들으면 욕해요."

그녀는 취재진이 수상 소감에 대해 묻자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그녀는 "상 받는 것도 아무한테도 말 안하려 했는데, 남편이 어제 아들한테는 해줬다"며 부끄러워했다.

국무총리 '효행상' 수상자, 황상순 씨<헤드라인제주>
제주대학교병원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그녀가 안내한 곳에 도착해보니 다른 봉사자 세분이 환자 치료에 사용할 거즈를 적당한 크기로 자르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취재진이 본격적으로 황상순 씨에게 국무총리 효행상 수상과 관련해 묻자 같이 봉사하던 분들도 그제서야 알고 놀라워하며 "죄 지은 것도 아닌데 무사 숨겨시냐게"하며 수상을 축하해줬다. 여전히 그녀는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이라며 쑥스러워해 했다.

이어진 인터뷰에서 황상순 씨는 "제주대학교병원에서 1주일에 한번 봉사를 한다"며 "책 빌려주는 봉사와 여러 자질구레한 봉사를 하며 소소한 재미를 얻는다"고 말했다.

얼핏 한가롭게 산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녀는 싱글싱글 마음이 가벼워보였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누구보다도 힘든 나날들이 있었다.

황상순 씨에게는 100세가 된 시어머니와 1급 시각장애인 남편이 있다.
시어머니는 노환으로 잘 걷지도 못하고 앞도 잘 보지 못한다. 거기다 치매도 있어 누군가의 손길이 없으면 안된다.

'시어머니와 남편분 챙기느라 힘들지 않나'라고 물으니 그녀는 "힘들다고 생각하면 못하지. 내 업보다, 전생의 죄다 생각하고 산다"며 별거 아니라는 듯 말했다.

국무총리 '효행상' 수상자, 황상순 씨<헤드라인제주>
그녀가 시어머니를 모신건 20년전쯤.

시어머니는 10년정도쯤부터 노환이 심해져 눈이 안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는 숨도 헐떡이시고 대소변도 못가리는 정도가 돼서 기저귀를 자주 갈아주고 계신다고.

"시어머니가 그렇게 빵을 좋아하세요. 빵을 2, 3개 가져다 주면 내가 뺏어먹을까봐 후다닥 먹어버리세요"라며 치매가 있지만 정도가 심하지 않은 편이라 괜찮다고 말했다.

그녀는 "우유나 요플레를 놔두면 어머니께서 몰래 베개나 장롱속에 숨겨놔요. 나중에 놔뒀다가 먹으려고. 그런데 감춰놓으시고 잊어버리는 거죠. 그래서 가끔 수색해서 찾아내야돼요"하며 지난 일을 떠올리며 웃었다.

황상순 씨는1982년 3월경에 결혼을 했다. 그런데 그해 5월부터 남편의 눈이 잘 보이지 않기 시작했고, 그로부터 5년후에는 직장을 그만둘 수 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됐다. 이름있는 병원 등 여기저기를 전전하다 1989년에 결국 치료를 포기하고 말았다. 설상가상이라고 해야 할까? 결혼하고 나서 1년 후에는 시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그녀는 당시 주위에서 '여자가 잘못들어오면 집안이 망한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고 한다.

'눈이 불편한 남편분도 살피느라 힘드시겠다'고 물으니 "본인이 더 힘들죠. 7, 8년전까진 한쪽 눈이라도 보였는데, 지금은 아예 불이 켜졌는지 꺼졌는지도 몰라요"라고 말하며 잠시 말을 놓으셨다.

잠시 뒤 그녀는 "아이들이 자랄 때 다른 애들보다 자신감이 떨어졌어요. 아버지가 그러니까. 어릴 때 학교도 가고 그래야 하는데 못가고 그래서, 애들한테 미안해요. 부모로서 너무 미안해요"라며 어쩔 수 없었던 그날들을 회상했다.

결국 남편이 눈이 보이지 않아 직장을 다니지 못했고, 대신 황상순 씨가 직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들어간 곳은 시내에 있는 특급 호텔 구내식당. 그곳에서 그녀는 조리사로 23년동안 일하며 집도 사고 아들, 딸 공부를 다 시켰다고 한다.

국무총리 '효행상' 수상자, 황상순 씨<헤드라인제주>
국무총리 '효행상' 수상자, 황상순 씨<헤드라인제주>
하지만 지난해 11월 허리디스크에 걸려 그녀도 직장을 그만둬야 했다.

그녀는 다쳤던 허리를 만지면서 "정말 쉬지 않고 일했어요. 하루 이틀 푹 쉬고 싶은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는데, 지금은 원없이 푹 쉬면서 요양하고 봉사도 하고 너무 좋다"고 말했다.

황상순 씨에게는 어엿하게 다 자란 아들과 딸이 있다. 오는 6월에는 아들이 결혼을 한다며 그녀는 함박웃음을 머금었다.

그녀는 "며느리도 너무 좋아요, 너무 착해"하며 모든 게 만족스럽다며 좋아했다.

황상순 씨는 "인터뷰가 끝나면 친정 아버지 모시고 치과 진료도 다녀와야 되고, 저녁에는 다니는 성당에서 '성모의 달'을 맞아 꽃 봉헌을 해야 한다. '오늘은 참 바쁜 날'이라며 흐믓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녀는 병원 봉사말고도 요양원에도 한달에 2번 가서 영화 관람 봉사와 점심나들이 봉사도 한다.

지금은 일을 하지 않아 많은 봉사활동을 할 수 있다는 그녀는 "이 모든 것이 소소하고 즐거운 일"이라며 씩씩하게 웃어보였다.

자신에게 닥친 일들이 모두 자신의 탓이라며 겸허하고 담담하게 살아 온 황상순 씨.

무엇을 하던 하는 일에 감사하고 주위사람들을 도우려는 그녀는, 아름답게 산다는 건 이런게 아닐까 라는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다.<헤드라인제주>

<박기덕 기자/저작권자 ⓒ 헤드라인제주 무단전재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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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락! 2012-05-08 12:30:00 | 211.***.***.161
고마운 사람입니다. 그 마음 올곧게 간직하며 사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