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해군기지, 이 싸움 누가 일으키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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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해군기지, 이 싸움 누가 일으키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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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병수의 진료실 창가에서] <10> 진료실을 찾아온 강정마을
다쳐서 찾아온 강정활동가...진료실을 찾는 경찰관과 해경

작년 여름부터 가을까지 제주도 강정 마을에서 무료진료를 하였다. 오랜 싸움에 지쳐가는 해군기지 반대에 나선 마을 사람들이나 연대 투쟁을 위해 전국 각지에서 찾아온 사람들에게 힘이 될 것을 찾던 중 거기에 가서 진료를 하기로 했던 것이다. 그곳에서의 무료진료 일정을 마친 이후에도 그곳 강정은 가끔 진료실에서 나와 맞닥뜨려졌다.

다쳐서 찾아온 강정 활동가들

가끔씩 격렬한 싸움 끝에 다쳐서 제주시에 있는 내 진료실까지 온 분들은 주로 진단서 때문이었다. 최근에 만난 프랑스인 벤자민(Benjamain Monnet)도 몸싸움을 하다가 여기저기 멍이 들고 허리며 가슴팍에 통증을 호소하면서 찾아왔었다. 나는 여기저기 자세히 살피고 물어보면서 합당한 진단서를 써줬고, 벤자민은 그걸 가지고 강제출국 당할뻔 한 것을 모면했다고 한다. 내가 아닌 어느 병원에 가서도 같은 진단서가 나왔겠지만, 나를 찾아온 것은 어디까지나 신뢰를 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몇 달 뒤에 연락이 왔다. 벤자민이 또 다쳐서 치료하고 진단서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특별히 외상이 있거나 급히 치료해야 할 내용은 아닌 것 같아 근처 병원을 가서도 같은 진단서를 받을 수 있다고 하고, 서귀포에서 제주시까지 멀리 올 필요는 없다고 말해주고는 전화를 끊었다. 하지만 며칠 후 뉴스를 보니 벤자민이 이번에는 강제출국을 피하지 못하고 본국으로 돌아가게 됐다고 한다.

나는 한참 고민에 빠졌다. 그 때 진단서를 못 제출한 것인지, 아니면 제출했더라도 안 통했던 것인지..... 자책감이 들면서 며칠을 보내야 했다. 진단서 작성은 의사의 권리이자 의무로서 거짓으로 작성하거나 할 수 없다. 그 때 벤자민이 다른 병원을 갔어도 같은 진료를 받게 되고 원하는 진단서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지만, 나에게 연락 온 며칠 후 그렇게 되어 마음이 안 좋았다.

또 얼마 안지나 이번에는 경찰들과 함께 온 강정 마을 여성 활동가가 있었다. 경찰서에 연행되었는데, 진료실에 여자 경찰관 입회 속에 진료를 하게 되었다. 나는 강정에서 그 분을 자주 봤는데, 그 분은 나를 못 알아봤다. 오히려 편하고, 객관적으로 진료를 할 수 있었다.

“무릎이 아파서 걷기가 많이 힘들어요.”
“뼈는 이상이 없는데, 무릎관절이 크게 무리가 가서 당분간 아플 겁니다.”
“손목도 아프고, 여기저기 쑤시네요.”

전형적인 몸싸움 후유증에, 밟히거나 거센 힘에 밀쳐져서 나타나는 통증들이었다. 이번에도 필요한 진단서를 작성해 주고는 당분간 쉬면서 지내고, 약을 좀 드시라고 권했다. 진료실을 나갈 때는 여자 경찰관이 안 보이도록 하면서 열심히 싸워서 이기라고 손을 들어 보이며 파이팅 하는 동작을 보여줬다. 그 분은 나를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가는 힘없이 웃으면서 진료실을 나갔다.

잠시 후 동행한 경찰관이 다시 들어와서는 상태가 어떠냐고 내게 물었다. 나는 본 그대로 말해주었을 뿐이다.

“이 사람들은 멀쩡한대도 괜히 아프다고 엄살을 떨어요. 옛날 같았으면 진짜 아픈 맛을 보여줬을 텐데, 요즘은 인권이다 뭐다 해서 바쁜데 병원까지 모셔 와야 하니, 원.....”
“실제로 근육통이나 인대 통증이 심한 것 같습니다. 짜증나겠지만 잘 해 주세요.”

내가 그 자리에서 ‘뭐라고? 당신 같은 경찰관에게 밥 먹여주는 세금이 아깝다’하면서 싸웠으면 좋겠지만, 경찰관도 달래면서 화를 풀어주어야 했다. 진료실이란 곳은 참 이상한 시추에이션을 낳는 곳인 것 같다.

진료실을 찾는 경찰관, 해경

요즘에는 경찰관들이나 해경들이 부쩍 많이 찾아온다. 많은 수가 강정에 파견 갔다 오는 사람들인데, 이번 겨울에 심하게 돌았던 독감이나 감기에 걸려서 찾아온 경우들이었다. 의사로서 요즘 무리를 한 것이 있냐고 의례 묻게 되고, 그들은 한결같이 강정에서 추위에 떨다가 독감이나 감기에 걸렸노라고 대답하였다.

‘그래 니들도 고생이 많다. 그러게 왜 거기에 갔냐 말이다. 하긴 위에서 지시한 것이니까 가지만.....’

이런 경우도 있다. 어느 국가 공무원(경찰관인지, 해경인지, 해군인지 밝히지 않겠음)이 찾아와서 강정에 가서 오래 있어야 하는데, 며칠 쉬고 싶다고 진단서를 써달란다. 감기 몸살은 있었지만, 공무원이 해야 할 일을 피해서 진단서를 써달라니까 속으로는 세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가도 한 명이라도 그 쪽으로 못 가게 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기꺼이 안정가료를 위해 며칠 푹 쉬어야 한다면서 작성해 주기도 하였다.

이렇듯 한라산 너머 강정이 우리 병원과 멀리 떨어져 있어도 나는 계속 강정을 만나고 있다. 그 만남의 상대들이 강정 투쟁의 현장에 있는 사람들이건, 해경이나 경찰관이든 말이다.

평화로운 섬에 사람들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피비린내를 진동시킨 것이 20세기 중반 4‧3의 슬픔이라면, 21세기에도 제주는 우리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미군기지나 해군기지와 같은 전쟁의 광기로 고통 받고 있다. 도대체 이 싸움은 누가 일으키고 있는 것일까?<헤드라인제주>

고병수 365일의원 원장 그는...

   
고병수 원장. <헤드라인제주>
가정의학과 전문의로 현재 제주시 '탑동365일의원'에서 진료하고 있다.

'제주대안연구공동체' 이사장을 맡고 있으며, 동시에 '새로운사회를 여는 연구원'과 '구로건강복지센터'에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온국민주치의제도'가 있고, 우리나라의 일차의료제도 개선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그의 <진료실 창가에서> 칼럼은 영국 의료제도와 국내 영리병원 도입 논란과 관련한 주제에서부터 직접 진료를 하면서 느끼는 점 등을 글로 풀어내면서 함께 공유하고자 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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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사람 2012-04-25 08:26:25 | 112.***.***.52
원장님은 이시대의 진성한 의사이십니다. 강정이 아픈을 의술을 통하여 그들과 함께 아파하고 그들이 버팀목 역할까지 하고 있어서 우리제주사회 희망이 등불입니다. 의사는 의술을 통하여 병든사회를 치유해주어야 진정한 의사이 십니다. 원장님은 의술을 통하여 사회정의 실현에 앞장서 주시기 제주도민들을 원 하고 있습니다. 정의이사도로서 기대해 봅니다. 응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