씁쓸한 4.3위령제..."정부도 밉고, 행사도 화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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씁쓸한 4.3위령제..."정부도 밉고, 행사도 화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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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64주기 4.3위령제, '푸대접' 받은 유족들의 원성
성난 유족들, "대통령 왜 안 왔나?"..."정치인들만 대접하나?"

단순히 '강풍'이라는 예상치 못한 기상상황 때문이었을까.

3일 오전 11시 봉행된 제64주기 제주4.3사건희생자 위령제에 참석하기 제주4.3평화공원을 찾았던 수많은 유족들은 끝내 울분을 터뜨렸다.

"무슨 위령제를 이렇게 합니까? 유족들을 이렇게 푸대접 하는 경우가 어디 있습니까?"

"대통령은 왜 오지 않은 겁니까? 총리님, 유족들에게 한마디라도 하셔야죠."

이틀째 계속된 순간 초속 24m의 강풍에 갑작스럽게 제주4.3평화기념관 실내로 옮겨져 엄수된 4.3위령제는 유족들의 가슴맺힌 한(恨)을 풀어주지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분노만 키운 결과를 낳게 했다.

4.3평화공원을 찾은 유족들 사이에서는 위령제가 시작되기 전부터 불만이 터져나왔다. 그리고 위령제가 끝날 즈음에는 분노로 변하는 모습이었다.

유족들을 분노하게 한 이날 상황은 위령제 봉행장소로 실내로 옮기면서 이미 예고됐다.

식전행사가 시작되기 30분 전인 오전 9시30분, 행사 주최측은 4.3평화공원 야외에서 예정됐던 위령제를 4.3평화기념관 내 대강당에서 개최한다고 밝혔다.

그때서야 부랴부랴 실내 행사준비가 이뤄졌다. 위령제단도 행사시간이 다된 10시50분이 되어서야 마련됐다.

전날 강풍주의보가 발효돼 제주 전역에 강풍이 몰아치고 있는 상황이었고, 당일 아침에도 야외에서는 정상적인 행사진행이 어렵다는 것 쯤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비상대책 하나 없었다.

4.3평화기념 내 대강당은 많아야 200-300명 정도의 자리만 준비돼 있었다. 행사 관계자들은 정치인들을 중심으로 해 자리를 안내하기 시작했다.

맨 앞좌석에서부터 중반부까지는 정부인사나 정치인, 주요인사들의 차지였다. 유족들을 위해 마련된 자리는 없었다.

4.3평화기념관 1층 입구에서부터 본 행사가 열린 대강당까지는 그야말로 발 디딜틈 없는 대혼잡이 연출됐다. 빼곡히 서 있어 발걸음을 옮기기조차 어려운 상황이 이어졌다.

그러나 혼잡상황을 정리하려는 안내방송 조차 없었다.

평화기념관 1층에는 위령제 상황을 실시간으로 중계하기 위한 대형스크린이 설치됐으나, 몰려든 유족들을 만족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스크린 앞 의자에 앉은 유족들은 그나마 나은 편이었다. 의자를 찾지 못한 유족과 참배객들은 위령제가 시작되기 전부터 끝날 때까지 까치발로 선 채 있어야 했다.

바깥에서부터 찬 바람이 스며들고 있었지만, 난방시설도 돼 있지 않아 유족들은 내내 추위에 떨었다.

행사가 시작되기 직전 김황식 국무총리가 행사장에 들어갈 때에는 공무원들이 유족들을 밀어내며 지나갈 길을 만들자, 또다시 불만이 터져나왔다.

"총리가 오는 게 뭐 대단한 일이라고 우리를 밀치는 것이냐"고 항의했다.

곧이어 행사가 시작되자, 이번에는 실시간 중계 스크린에 대한 불만으로 이어졌다.

'소리'가 나오지 않고 위령제 행사장내 상황 모습만 비춰졌기 때문이다.

한 할머니는 "소리라도 들어야 할 것 아니냐. 우리는 전광판만 바라보는 바보냐"고 울분을 터뜨렸다.

한참을 스크린을 바라보던 한 시민은 "김 총리라도 왔으면 뭐라고 말하는지 들려야 하는데 하나도 듣지 못했다"며 "날씨 때문에 급하게 변경했다고 하지만 준비가 너무 미흡한 것 아닌지 답답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유족은 "4.3희생자 위령제인데 유족들은 들어가지 못하고, '높은 사람들'만 들어가 있다"며 "유족을 배제하고 진행되는 이게 무슨 위령제냐"고 고성을 지르기도 했다.

유족인 오모씨(68. 제주시)는 "정부는 편하게 안에서 행사를 하고, 제주도 유족들은 추운 곳에서 천장만 쳐다봤다"면서 "이렇게 밖에 준비를 하지 못하는가"라고 말했다.

실내에서 진행된 행사에는 김 총리를 비롯해 새누리당 김형오 전 국회의원을 비롯한 비대위 위원,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 그리고  도의원 등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

실내 위령제 행사도 장소가 비좁은 관계로 헌화와 분향도 일부 주요인사에 한해 진행됐다.

김 총리는 추도사에서 "정부는 수많은 영령과 유가족들의 한이 조금이라도 풀릴 수 있도록 애써왔다"며 "여러분이 느끼기에 여전히 미흡한 점이 있을 것이지만, 정부는 앞으로도 희생되신 분들을 기리고 유가족을 위로하는 일에 정성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또 "4.3 사건은 정부가 진상을 확인하고 공식적으로 사과한 사건이며 이 사건이 더 이상 소모적인 이념대립의 희생대 위에 올라서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는 제주4.3의 숙원인 국가추념일 지정이나 4.3희생자 추가 결정 문제 등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자 이번에는 이명박 대통령 대통령이 임기 중 단 한번 4.3위령제에 참석하지 않은 '섭섭한 마음'이 표출되기 시작했다.

위령제 말미에 홍성수 제주4.3유족회장은 유족을 대표한 인사말에서 "대통령이 참석하지 못해 매우 안타깝다. 깊은 유감의 뜻을 표한다"고 말했다.

위령제가 끝나자 마자 김 총리가 바로 이도하기 위해 황급히 행사장을 빠져나갈 즈음에는 유족들의 성난 목소리가 곳곳에서 터져나왔다.

4.3기념관을 빠져나가는 김 총리를 향해 유족들은 "유족들에게 한마디라도 해달라", "뭐 하러 왔느냐"며 면박을 줬다. "이명박 정부는 각성하라"는 소리도 터져나왔다.

한 유족은 "올해에도 역시 대통령이 참석하지 않았다. 대통령의 진솔한 사과를 요구했지만, 결국 임기 중 한번도 오지 않았다"며 현 정부에 대한 섭섭함을 토로했다.

위로를 받기는 커녕 화만 잔뜩 얻은채 유족들은 돌아가야 했다. <헤드라인제주>

실내에서 진행된 4.3위령제. 대부분 정부와 중앙정치권, 주요인사들이 자리하고 있다. <헤드라인제주>
4.3희생자 위령제가 실내로 옮겨진 가운데 원활히 진행되지 못하자 한 유족이 4.3평화재단 측에 거세게 항의하고 있다. <헤드라인제주>
4.3위령제가 실내로 옮겨 진행된 가운데, 유족들이 원활하지 못했던 진행에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헤드라인제주>
4.3희생자 위령제가 실내로 장소가 옮겨진 가운데, 대강당에 들어가지 못한 유족들이 평화기념관 현관에서 대형스크린을 통해 위령제 진행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헤드라인제주>
4.3희생자 위령제가 실내로 장소가 옮겨진 가운데, 대강당에 들어가지 못한 유족들이 평화기념관 현관에서 대형스크린을 통해 위령제 진행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헤드라인제주>
4.3희생자 위령제가 실내로 옮겨 진행되자 자리에 앉지 못한 유족들이 입구에 까치발을 들고 서 있다. <헤드라인제주>
4.3위령제가 실내로 옮겨 엄수된 가운데, 대강당에 들어가지 못한 유족들이 평화기념관 2층에까지 자리하고 있다. <헤드라인제주>

<조승원 기자 / 저작권자 ⓒ 헤드라인제주 무단전재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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