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호 크레인' 김진숙, "이젠 '희망비행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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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호 크레인' 김진숙, "이젠 '희망비행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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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309일 고공농성 김진숙, 그가 전하는 '강정의 희망'
"2011년이 '희망버스'였다면, 2012년은 당연히 '희망비행기'죠"

한진중공업이 경영악화를 이유로 해 생산직근로자 400여명을 정리해고키로 결정한지 며칠 지나지 않은 2011년 1월6일, 홀연히 85호 크레인에 오른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51).

언제 끝날지 모르는 기약없는 고공농성에 들어간 그는 100일, 200일, 그리고 꼭 309일째 되는 지난해 11월10일 노사합의에 따라 크레인에서 내려와 땅을 밟을 수 있었다.

그의 309일간의 고공투쟁은 2011년 노동계의 '전설'로 남아있다.

그가 새해를 맞아 제주를 찾았다. 24일 도착하자 마자 제일먼저 달려간 곳은 제주해군기지 문제로 수년째 싸움이 전개되고 있는 서귀포시 강정마을.

그곳에서 그는 강정마을 주민들과 만나 '희망'을 전했다. 자신이 처절하게 싸워서 마침내 한진중공업 투쟁을 승리로 일궜던 것처럼, 4년넘게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는 강정 주민들에게 "힘내시고 잘 버티시라"고 응원했다.

제주 이틀째인 25일 저녁 7시, 제주시 제주도농어업인회관에서는 제주민권연대 주최의 '85호 크레인, 희망버스 상징 김진숙 지도위원 강연회'가 열렸다.

강정마을회 강동균 회장을 비롯해 많은 강정 주민들, 시민사회단체 및 노동계 인사들, 가족과 함께 나선 시민들이 자리를 함께 했다.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 <헤드라인제주>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 <헤드라인제주>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 <헤드라인제주>

#동안의 51살 노동투사..."강정이 너무나 자랑스럽니다"

강동균 회장의 짧은 인사말에 이어 김진숙, 그가 강연을 위해 무대에 오를 때만 하더라도 51살의 김진숙 그의 얼굴을 알아본 이는 그다지 많지 않은 듯 했다.

객석 두번째 줄에 자리잡아 앉아있다가 사회자의 소개로 무대에 오른 그의 모습은 너무나 뜻밖이었다. 왜소한 체격의 얼굴은 언론보도 등을 통해 이미 익힌 잘 알고 있었지만, 짧은 머리에 뿔테안경, 빨간 손수건을 목에 걸고 등장한 모습은 의외였다.

51살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동안의 모습.

깜짝 놀라워하는 관객들의 반응을 의식한 듯, 무대에 오르자마자 그는 '힘있는'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작년까지만 하더라도 저를 알아보는 사람이 많았는데, 요즘 머리를 염색을 하니 알아보는 사람이 없더라"며 밝게 웃는 그는 고공투쟁의 이야기를 하기 전에 간략하게 강정주민들을 위로하는 말을 했다.

"문정현 신부님은 이젠 연행되어가는 전담반이 돼 버린 것 같아요"라며 씁쓸함을 피력한 그는 "3년전 제가 강정마을에 가서 구럼비 해안을 한번 보고는 그곳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던데, 한번 가본 저의 마음도 그런데, 그곳에서 평생 사시는 분들은 어떠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처음 갔을 때의 구럼비 해안, 그리고 지금은 높은 펜스와 철조망으로 차단돼 갈 수 없는 상황이 돼 버린 현실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강정이 너무 자랑스럽니다."

4년 넘게 외로운 투쟁을 하고 있는 강정주민들에게 그는 "자랑스럽다"는 말로 위로했다.

#"크레인은 완전 고립됐죠...그해 부산 겨울 정말 추웠어요"

이어 '희망버스 이야기와 노동자의 눈으로 보는 세상'을 주제로 한 본 이야기를 풀어냈다.

입담은 구수했다. 힘이 넘쳤고, 그의 마음이 그대로 전달됐다. 크레인에 오르기까지의 고심했던 과정을 먼저 설명했다.

"기자들이 가장 많이 질문했던 것이 '(고공투쟁이) 이렇게 길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느냐'는 말이었는데, 정말 이 질문 많이 받았다. 기약없이 올라가서 잘 버텼다고 생각한다. 만약 기약이 있었다면 올라갔을까 라고 생각해본다."

크레인에 오르기 전해 여름에 캄보디아에 가려고 카메라와 등산화까지 준비했다고 한다. 그러나 한진중공업 문제가 터지고, 아픈 상처는 많았지만 답이 없었다고 했다.

"정리해고 결정이 내려진 후 그는 많은 고민 끝에 '크레인에 오르자'고 결심하고 주변 신변을 정리하고, 85호에 오르게 됐다"고 말한 그는 "이 85호에서는 한 노동자가 목을 매 숨지고, 시신이 놓여있었던 자리인데, 저는 그것을 다 확인하며 올랐다"고 말했다.

#무관심..."고구마, 사과 올라오고 한참 후에야 사람이 오더라구요"

처음 크레인에 올랐을 때, 언론의 무관심, 국민의 무관심이 그를 어렵게 했다.

"부산은 작년 겨울 정말 추웠다"며 "처음 오르고 조금 시간이 지났을 때 차라리 공권력이 투입됐더라면 못이기는 척 하고라도 내려왔을 걸..."이라는 반어법으로 당시 혹독한 추위 속에 고공투쟁을 벌여야 했던 어려운 상황을 설명했다.

사실 '희망버스'가 오기 전까지 크레인은 완전 고립된 상황이었다. 많은 국민들은 크레인에 오른 사람이 '김진숙'이라는 이름 조차 제대로 알지 못했다.

"크레인에서 고공농성을 하던 중 처음 올라온 것은 사람이 아니었다. 고구마였다. 제가 고구마를 좋아한다고 하니까 올려보내줬다. 그 다음 사과가 올라왔다. 그 다음 4월27일쯤 사람이 오더라."

그를 지지방문하는 사람이 오기 시작한 것은 고공농성을 시작한지 3개월이 훨씬 지나서였다고 설명했다.

"그때부터 사람들이 지지방문을 오기 시작했는데, 크레인 밑에서 저를 올려다보면서 함께 할 수 없다는 마음에 모두들 울고 돌아갔다. 저 기분도 정말 그랬다. 찾아오는 사람들 울고 가버리고 나면, 그 때의 마음이란..."

#"희망버스 정말 대단했죠."...전기끊고 '트윗' 차단에 절망

그러다가 6월들어 1차 '희망버스'가 왔다고 한다.

"저도 희망버스가 뭔지도 몰랐죠. 희망버스 기획자가 누구인지, 그것이 무엇인지도 잘 몰랐죠. 나중에 경찰도 저와 통화한 내역들 다 조사하면서 기획자가 누구인지 밝히려다가 결국 못밝힌 것 아닙니까?"

어쨌든 이 희망버스는 그에게 큰 희망으로 다가왔다고 했다.

"희망버스가 정말 대단하긴 대단했다. 노사모를 비롯해 민주노동당, 민주노총, 민주당 등등 모든 사람들이 다 왔으니. 김여진, 문정현, 백기완 분들이 모두 희망버스를 타고 왔으니."

이 과정에서 최악의 절망적 상황도 있었다고 했다.

"6월27일 행정대집행을 통해 조합원들이 모두 밖으로 끌려나가고, 조합원들이 모이기만 하면 연행해가는 상황, 그리고 8호 크레인은 '용역깡패'가 접수해버린 상황이었는데, 바로 전기가 끊어졌어요. 크레인 안이 캄캄한 것은 물론이고, 그 일대에 전기가 모두 끊어져 온통 캄캄했어요. 아무것도 안보였죠."

전기공급 차단으로 캄캄한 밤을 지새야 하는 고통 보다 그를 더욱 힘들게 했던 것은 '트위터'를 하지 못하는데 있었다.

그는 고공투쟁을 하면서 하루 24시간 중 22시간을 트위터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트위터를 통해 자신의 심경을 전하고, 투쟁상황을 주고 받으며 국내외 많은 이들과 친분을 맺고 있었다.

그런데 전기가 끊기면서 트위터를 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사측에서도 바로 이런 점을 노린 것으로 보인다. 철저히 고립시키려는 의도.

"매일 트윗만 했는데, 책도 안올라오고 트윗까지 못하게 되니 어떻겠어요?"라고 반문한 그는 "그런데 '외부세력'들은 보통 사람들이 아니더라"며 크게 웃었다.

그가 말한 '외부세력'이란 사측과 일부 보수언론에서 주장한 것처럼 자신을 비롯해 한진중공업 문제에 끼어든 노조 외의 사람을 가리킨 것이다. 사측에서 자신을 보고 '외부세력'이라고 표현하니, 자신도 그 말을 흔쾌히 받아들이며 사용한 것이다.

"아 글쎄, 외부세력들이 '태양열 배터리'라는 것을 생각하고는 식빵 속에 배터리를 숨긴 후 겉은 빵 모양을 그대로 만들어 올려보낸 거에요. 그동안 음식물이 반입될 때에도 사측은 금속탐지기를 써가며 일일이 검색했는데, 그 식빵이 올라올 때는 안하더라구요. 그래서 배터리가 무사히 크레인 위로 올라왔죠.'

배터리가 크레인으로 올라오면서 그는 다시 트윗을 하기 시작했다. 사측에서는 발칵 뒤집혔다고 한다. 전기공급이 끊겼는데, 어떻게 트윗을 시작했느냐며.

"트위터로 만난 사람, 희망버스는 정말 엄청난 일을 만들어냈다. 분노를 넘어, 이 정리해고 현실이 부당한 것이라고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만들고, 결국 희망버스로 이어졌죠."

그는 "신자유주의 10년만에 정직과 비정규직 사이에도 철벽이 생겨버린 현실, 이 아픈 역사는 되풀이 되지 말아야 한다"며 "이 정권이 다시 한번 집권하면 정말 문제가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 <헤드라인제주>
강연회에 참석한 이들이 김 지도위원의 강연을 듣고 있다. <헤드라인제주>
강연회에 참석한 이들이 김 지도위원의 강연을 듣고 있다. <헤드라인제주>
강연회에 참석한 이들이 김 지도위원의 강연을 듣고 있다. <헤드라인제주>
강연회에 참석한 이들이 김 지도위원의 강연을 듣고 있다. <헤드라인제주>
강연회에 참석한 이들이 김 지도위원의 강연을 듣고 있다. <헤드라인제주>
#"외부세력, 외부세력 하는데, 그럼 부당한 일도 눈감아야 하나?"

보수언론과 사측에서 누누히 주장해온 '외부세력'이란 표현을 다시 언급할 때도 목소리가 한층 커졌다.

현재 강정마을에서 해군기지 반대투쟁을 하는 과정에서 정부와 해군측이 강정주민 이외의 사람들을 일컬어 '외부세력'이라며 마을에서 떠나기를 강요하는 것을 의식한 듯 했다.

그는 "개입하면 안된다는 이런 논리가 당연한 것처럼 되는 세상이 돼 버렸다"면서 "그럼, 우리가 외부세력이라면 부당한 일도 눈감아야 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2011년은 희망버스였다면, 2012년은 강정 희망비행기가 있을 것"

크레인 고공투쟁 이야기를 마무리하며, 그는 단호한 어조로 "저는 이 크레인이 첫 싸움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마지막 싸움도 아니다"며 "앞으로 강정마을 문제도 있고, 이러한 싸움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강정마을 투쟁에도 연대해 나갈 것임을 시사한 대목이다.

그는 "저는 우리 조합원들을 믿고, 민중들을 믿는다"며 "제주해군기지 문제와 관련해서는 앞으로 총선 과정에서 더 큰 결정이 있어야 할 것인데, 2011년에 희망버스가 있었다면, 이제 2012년에는 희망비행기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정 해군기지 문제와 관련해 '희망비행기'를 통해 전 국민적 관심이 요구됨을 강조한 것이다.

김진숙씨의 309일 고공투쟁에 함께 했던 민주노총 부산본부의 황이라씨도 잠깐 무대에 올라 강정주민들에게 연대의 이야기를 건넸다.

그는 "오랫동안 강정마을이 싸우고 있는데, 외람된 얘기지만 '버티세요'라는 말을 드리고 싶다"면서 "또한 제주도민들도 좀더 강정에 관심을 가져주고, 국민들의 적극적인 관심이 있다면 강정은 한진중공업 싸움처럼 꼭 승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1시간 여동안 진행된 강연에서 김진숙씨가 강정에 건넨 메시지는 전 국민적 관심을 촉구하는 '희망비행기'라는 말로 마무리됐다.  <헤드라인제주>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 <헤드라인제주>
김 지도위원의 크레인 투쟁을 지원했던 황이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선전부장. <헤드라인제주>
25일 오후 제주도 농어업인회관 대강당에서 김진숙 지도위원의 초청강연회가 진행되고 있다. <헤드라인제주>
25일 오후 제주도 농어업인회관 대강당에서 김진숙 지도위원의 초청강연회가 진행되고 있다. <헤드라인제주>
강연회에 참가한 강정마을 주민들과 김진숙 지도위원이 함께 사진을 찍고 있다. <헤드라인제주>
강연회에 참가한 강정마을 주민들과 김진숙 지도위원이 함께 사진을 찍고 있다. <헤드라인제주>
강연을 마친 김진숙 지도위원이 강연회 참가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헤드라인제주>
강연을 마친 김진숙 지도위원이 강연회 참가자들에게 사인을 해주고 있다. <헤드라인제주>

<김두영 기자 / 저작권자 ⓒ 헤드라인제주 무단전재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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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셨구ㅡ나 2012-01-26 15:08:39 | 59.***.***.23
어제 헤드라인제주에서는 취재기자와 대표님까지 오셔서 마지막까지 함께하다가 가는 모습 봤어요. 꼭 동지같은 느낌^^

2012-01-26 15:07:08 | 203.***.***.49
자세한 기사를 읽으니 마치 현장에 있는 것 같네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