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라미드식' 금품갈취, 왜 교육당국만 몰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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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라미드식' 금품갈취, 왜 교육당국만 몰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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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충격적 학교내 금품갈취, 또 '재탕 대책' 내놓으려나

잔뜩 가라앉은 분위기 속에 이따금 고성이 오고가고, 교육청 관계자들은 쏟아지는 질책에 고개를 숙인 채 말이 없었다.

지난 13일 저녁 제주특별자치도교육청이 제주시내 모 중학교 인근 도서관에서 가졌던 간담회장의 분위기다.

'안전한 학교 만들기를 위한 지역주민.유관기관 간담회'에는 교육청 관계자를 비롯해 마을 청년회장, 중학교 어머니회장, 학부모, 운영위원, 지역파출소장 등 지역인사들이 대거 참석했다.

일과가 끝난 저녁시간대 이들이 한 자리에 모인 이유는 최근 불거진 모 중학교에서의 '피라미드식 금품 상납 사건'과 관련, 학교폭력 근절 방안을 찾기 위해서였다.

사건 발생 중학교와 관련된 인사들이 참석해서인지 분위기는 매우 무거웠다. 한 인사는 "모두 아는 사람들인데, 좋은 취지로 만났으면 더 좋았을 걸"하며 불편한 속내를 드러냈다.

이 중학교에서는 대체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중학생들 간 어떤 일이 있었기에 마을 어른들을 한 자리에 모이게 만들었을까.

지난 2010년 3월부터 지난해 12월까지 약 2년에 걸쳐 발생한 학생들 간 금품 갈취 사건, 이것이 간담회를 갖게 한 이유였다.

경찰 조사 결과, 이 학교 출신 가해학생 6명이 현재 학교에 재학 중인 피해학생 43명으로부터 2년 간 2500만원 상당의 금품을 빼앗아 온 사실이 밝혀졌다.

돈을 빼앗은 중학교 3학년 학생들은 이 학교 출신 고등학교 선배들에게 상납했다. 고등학생들에게 간 돈의 일부는 고교 졸업생 선배에게까지 상납되는 등 피라미드식 구조로 금품갈취가 자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육지부에서나 있을 법한 일로만 여겨지던 '피라미드식 상납'이 제주에서도 만연해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러한 충격적인 사실이 알려진 것은 지난해 12월 초.

한 학생의 금품갈취 사례를 적발한 학교 측은 가해학생에게 '사회봉사 5일'을 처분했다.

이 과정에서 학교 측은 피해학생 학부모로부터 피해가 알려진 것보다 훨씬 크다는 사실을 제보받았다. 가해학생의 사회봉사가 끝나자마자 그를 불러 그동안 있었던 일에 대해 캐묻기 시작했다.

경찰도 수사에 들어갔다. 그 결과 놀라운 사실이 확인됐다. 피해액수가 훨씬 많고, 갈취한 돈을 졸업 선배들에게 계좌입금까지 했다는 통장 내역 증빙자료가 나온 것이다.

학교가 왈칵 뒤집혔다. 학교장은 긴급하게 교사들에게 실태조사에 나설 것을 지시했고, 곧바로 설문조사가 실시됐다.

사건이 터지기 전 실시됐던 설문조사에서도 그랬듯이, 대부분의 학생들은 입을 닫았다. 극소수의 학생만이 피해가 있었다고 진술했다.

경찰 수사가 시작된 가운데서도 금품 상납은 계속됐다. 통장 내역 확인결과, 형사가 학교를 찾아 수사한 날에도 돈이 통장거래를 통해 상납됐다.

이같은 사실이 언론을 통해 대대적으로 보도됐고, 전국으로 퍼져 나갔다. 교육청과 경찰은 부랴부랴 학교폭력 근절 대책을 내놓았다.

교육청은 의무교육과정으로 강제 퇴학시킬 수 없는 중학생들에 대해서도 학교폭력에 연루된 사실이 확인되면 퇴학 또는 강제 전학하는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학부모와 지역주민들의 시각은 싸늘했다. 가해학생을 처벌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 뭔가 근본적인 문제해결책을 갈구하고 있었다.

가해학생 몇명을 처벌했다고 해서 풀릴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지역 차원에서 학생들을 보듬고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한다는 의견이 주를 이뤘다.

이같은 의견에 대해 교육청 관계자들은 "죄송스러울 따름이다. 일리 있는 말이다. 적극 공감한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하고는, 2시간의 간담회를 마무리했다.

하지만 간담회장을 나서는 지역주민들의 표정은 더욱 무거워 보였다.

이날 교육청 관계자들이 이례적으로 현장까지 달려와 간담회를 한다고 해서 뭔가 '답'을 주고 갈 것이란 기대가 있었지만, 결론은 틀에 박힌 종전의 학교폭력 근절대책 그 이상의 것은 없었던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이날 간담회는 '형식'에 얽매인 점이 있었다. 요즘 인기를 얻고 있는 모 개그프로그램의 '비상대책위원회'라는 코너가 오버랩됐다.

피라미드식 상납구조의 금품갈취는 이미 학생들 사이에서는 다 아는 얘기였지만, 학교측과 교육당국만 모르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던 것이다.

교육당국은 "전혀 몰랐다"는 변명 속에 학교폭력 근절대책을 또다시 재탕 우려먹을 분위기다.

정작 문제는 학생들의 생활실태를 한발 가까이 다가서지 못하고 '형식'만 고집하는 교육당국의 대응시스템에 있는 것은 아닐까. <헤드라인제주>

<조승원 기자 / 저작권자 ⓒ 헤드라인제주 무단전재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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