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맏딸'의 책임감..."열심히 산 덕을 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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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맏딸'의 책임감..."열심히 산 덕을 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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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흑돼지전문 정육점 이숙향씨..."나를 사랑해야죠"
부양에 쏟아 부은 세월 '밑거름'..."자부심 갖고 살아갑니다"

장녀로서 살아 온 그녀는 실질적인 집안의 가장이었다. 밑으로 맡겨진 4명의 동생들은 앞만 보며 달려야 할 가장 큰 이유였다.

힘들고 고된 집안 사정이었지만 동생이 공부를 하는 것에는 불편함이 없도록 온갖 뒷바라지를 마다하지 않았고, 결국 법조인이 꿈이었던 남동생이 사법고시에 합격하는데 일등공신이 됐다.

그러나, 순간의 기쁨은 오래가지는 않았다. 삶의 목표가 사라지자 허탈한 마음이 엄습했고, 이를 달래는데는 꽤나 긴 시간이 걸렸다.

"거의 10년도 전의 일이네요. 많은 어려움도 있었지만 여러 일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제가 있지 않나 싶어요."

뒤늦게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발견하게됐다는 이숙향씨(42). 제주시 봉개동에 위치한 옵서흑돼지전문직판장을 운영하는 그녀는 이제 감사와 행복으로 하루를 살아간다.

이숙향씨. <헤드라인제주>
# 맏딸의 애환..."돈을 벌지 않으면 안됐어요"

"당시 어린나이에 결혼하신 친정 부모님은 자주 싸우셨어요. 경제적 사정도 어려운데 돈을 벌지도 않으셨고...어렸을때부터 그런 부모님의 모습을 보면서 내가 돈을 벌지 않으면 큰일나겠다 싶었죠."

돈을 많이 벌면 부모님이 싸우는 일도 없을 것 같았다. 그렇게 부단히도 열심히 살아왔고, 4남매를 거의 도맡다시피 살아왔다.

"주변에서는 정말 열심히 산다고 칭찬도 많이듣고 그랬죠. 아침 8시부터 다음날 새벽 1시까지 일하는 경우가 허다했으니까요. 일요일이고 휴일이고 없었어요."

그렇게 모은 돈은 고스란히 집안살림을 위해 쓰였다. 돈을 벌어도 풍족하지는 못했다.

특히 동생들이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데 온갖 노력을 기울인 그녀였다. "동생이 법조인이 되는 것을 위해 여러 희생이 있었어요. 공부하는데 부족함 없는 환경을 만들어주다보니 사는게 쉽지 않았죠."

기어코 동생이 사법고시를 합격한 날 그녀 또한 뛸 듯이 기뻤다. 그런데 기쁨도 잠시, 이틀쯤 지나자 삶의 목표가 없어진 듯한 허탈감이 몰려왔다.

"목표가 없어졌다고 해야할까요. 이제 내가 무엇을 위해 살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참을 방황하던 중 오래전부터 삶은 자신을 위해 살아가야 한다고 조언해주던 지인들의 말이 뒤늦게 와닿았다. "결국은 나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나를 먼저 사랑해야 남을 사랑할 수 있다는 진리가 새삼 떠오른 대목이었다.

# 세번째 만남에서 '결혼 결심'..."정육점이 어때서요?"

다소 고됐던 삶은 현재 남편과의 만남을 통해 새롭게 변했다.

당시 하루를 쪼개며 열심히 살아가는 그녀의 모습에 동네에도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 인근에서 장사를 하던 한 이웃은 그녀를 눈여겨 보다가 자신의 막내 동생을 소개시켜줬고, 지금은 시아주버님이 됐다.

"그때는 어떻게든 집을 벗어나고 싶었는데, 그냥 뛰쳐나갈 수는 없는 노릇이고 합법적으로 나갈 수 있는 일은 결혼이었어요. 결혼후에는 멀리 떨어져서 살고싶은 생각이 컸죠."

지금의 남편은 딱 세번째 만남에서 '이 사람이라면 되겠구나'하는 믿음을 심어줬다.

"남편에게 제 가족사를 설명하니까 자신이 맏사위 역할을 잘 할수 있겠다고 약속하더라고요. 검소한 부분이 눈에 띄기도 했고요. 세번째 만났을때는 자신이 모아놓은 통장을 가져다 주더라니까요."

한 가지 걸렸던 부분은 남편이 정육점을 운영하기로 계획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가뜩이나 고생하며 살아오던 그녀에게 정육점 주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썩 달갑지 않은 일이었다.

"여자들은 결혼을 통해 신분상승의 꿈을 꾸기도 하잖아요? 지금 생각하면 그냥 편견이었지만, 고생을 많이 하다보니 정육점 주인처럼 억척스럽게 살기는 싫었던 것 같아요. 결국 시댁 식구에게 호되게 혼나고 마음을 돌이켰어요."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먼저 나온다는 그녀. 처음 시작할때는 직업에 대한 열등의식이 있었지만, 이제 직업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살아간다.

"세상에는 1등도 있고 60등도 있는게 질서에요. 하지만 60등이 없으면 세상은 돌아갈 수 없는 법이거든요."

정육점을 하다보니 경제적인 여유를 가질 수 있는 부분도 만족을 얻을 수 있는 나름의 이유였다. 내가 할 일이 무엇인지 깨달았다는 그녀는 이제 품질 좋은 고기를 정직하게 팔아야겠다는 일념을 지니고 있다.

이숙향씨. <헤드라인제주>
# 사랑스런 가족..."똑같은 사랑을 받아야 해요"

과거의 기억은 그녀의 삶에 있어 고스란히 밑거름이 됐다.

현재 그녀는 누구보다 행복하게 살아간다고 자부한다. 직업에 대한 자부심을 되찾았고,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된 덕이다.

또 무엇보다 가족의 힘이 컸다. 믿음직스러운 남편 백형복씨와 사랑이 넘치는 딸 윤나, 아들 윤성이는 하루하루를 웃음짓게 만든다.

"큰 딸 윤나는 외교관이 꿈이에요. 우리나라가 뺏긴 간도땅을 다시 되찾아오고 싶다나봐요. 요즘에는 독도를 지키자는 민간단체 반크(VANK)에 가입해 열심히 활동을 하더라고요."

이제 고입을 준비하는 큰 딸은 얼마전 민족사관학교의 1차시험까지 통과했다. 아쉽게 최종 시험을 통과하지는 못했지만, 자신의 목표를 잃지 않고 살아가고 있다.

딸과는 큰 약속을 했다. "윤나가 나중에는 아프리카에 가서 아직 남아있는 원주민들의 악습들을 끊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그때까지 경제적 여유를 만들어놓고 제가 옆에서 직접 돕기로 했어요."

야구선수인 아들 윤성이는 메이저리거를 꿈으로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나이 답지않게 자신이 열심히 해야하는 이유를 알고 성실하게 운동을 해 나가고 있다.

아이들에게 바라는 점은 주위의 사람들을 돌아보며 살아가라는 것이다.

"가족을 부양한다는 이유였지만, 저는 결국 제 욕심으로 살아온 것 같아요. 동생의 성공을 나의 성공과 일치시킨 것이잖아요. 우리 아이들은 소외된 주변을 돌아보며 살아갔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스스로의 삶에서 깨우친 것을 자녀들에 대한 사랑으로 변모했다. "어느 부모밑에 있는 자식이든 누구나 똑같이 사랑해야 해요. 정말 자신이 귀한 사람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도록이요." <헤드라인제주>

<박성우 기자 / 저작권자 ⓒ 헤드라인제주 무단전재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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