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은 버는 것 만큼 쓰기도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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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은 버는 것 만큼 쓰기도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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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인권 이야기] (18) 고광일 제주장애인인권포럼 행정지원팀장

21세기는 소비사회다. 미디어 광고뿐만 아니라 정부도 적극적으로 소비를 권장한다. 실로 이 사회는 소비를 위한 사회이지만 그 누구도 장애인 소비를 장려하지 않는다. 소비사회에서 장애인은 분리되고 소비자의 권리에서 배제되어 있다.

밥 먹듯이 익숙한 불편함이나 부당한 차별, 소비자로서의 권리 상실등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궁극적인 문제는 앞서 나열한 것들에, 장애에 대한 편견이 더해지면서 장애인이 지역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이행하고 누릴 수 있는 모든 것들에서 소외된다는 것이고 이것이 마치 정당하다는 듯이 보여지는 것이다.

이제 어느 가상의 일요일을 꾸며보자. 170cm의 키인 나는 이 사회에서 단신이다. 하긴 대한민국 평균신장이 3m이니 말이다. 여하튼 단신인 내가 일주일간의 고단한 직장생활에서 벗어나 오늘은 시청에서 여가생활을 누리고자 한다. 하지만 버스를 탈려고 해도 보도와 차도의 간격이 너무 멀어 버스 승차가 어렵고, 버스 손잡이가 너무 높아 몸을 지탱할 것이 없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인다.

은행에 들려 돈을 찾을려고 해도 높은 은행 계단은 둘째치고 현금인출기가 장신인 그들 눈높이에 맞춰져 있어 역시 만만치 않은 작업이다. 은행을 나와서는 시청 먹자골목을 지나가며 맛있는 음식점을 찾는것이 아니라 짧은 다리로 힘들이지 않고 올라갈 수 있는 경사로 있는 식당을 찾는다.

하지만 내가 갈 수 있는 식당은 몇 없다. 어쨌든 배를 채우고 영화관을 갔으나 영화를 관람할 수 있는 관람석은 항상 똑같다. 맨 앞자리다. 중간이나 뒷자리는 나에게 허용돼지도 않지만 설사 앉았다 해도 보이지 않는다.

나는 나의 삶의 질을 높이고자 일을 하고 그 댓가로 받은 급여로 소비생활을 누리고 싶다. 하지만 이동권, 접근권, 나를 바라보는 편견등 모든 것이 나로 하여금 정당한 소비자의 권리를 제한하고 사회와 단절케 한다.

얼마전 제주장애인인권포럼에서는 이러한 생활속의 장애 차별 사례를 발굴하고 이에 대한 인식 제고와 실효적 이행을 도모하고자 제주지역 접근성 모니터링을 실시했다. 우리가 살펴본 영역은 금융기관, 버스정류장, 주민자치센터, 문화예술체육 시설의 4가지 공공성이 강한 영역이었다. 그리고 총평은 다음과 같다. 장애인을 위한 편의제공이 장차법상 의무적으로 제공해야 하는 내용이 비교적 구체적으로 제시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접근성이 열악한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열악한 접근성은 장애인 당사자의 자기선택권과 결정권을 가진 독립적인 개체로 인정하지 않는다. 따라서 보호와 시혜의 대상으로 변질될 수 밖에 없고 그 이유는 장애인 개개인의 정신적, 신체적 개성때문이 아닌 사회환경적 요소에서 찾아야하고 이러한 인식에 누구나 공감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더불어 독일의 저명한 신학자 마르틴 니묄러가 썼다는 시 한편을 소개한다.

나치가 공산주의자를 잡아갔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사민주의자를 가두었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사민주의자가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노동조합원을 체포했을 때
나는 항의하지 않았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유대인을 잡아갔을 때
나는 방관했다
나는 유대인이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나를 잡아갔을 때는
항의할 수 있는
그누구도 남아 있지 않았다

<헤드라인제주>

<고광일 제주장애인인권포럼 행정지원팀장>

장애인 인권 이야기는....
   
장애인인권포럼 심벌마크
 우리 사회는 장애인을 단순한 보호 대상으로만 바라보며 장애인의 문제를 대신 해결해 주려고 하고 있다. 하지만 장애인은 치료받아야 할 환자도, 보호받아야 할 어린이도, 그렇다고 우대받아야할 벼슬도 아니다.

 장애인은 장애 그 자체보다도 사회적 편견의 희생자이며, 따라서 장애의 문제는 사회적 환경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사)제주장애인인권포럼의 <장애인인권 이야기>에서는 앞으로 장애인당사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세상에 대해 새로운 시선으로 다양하게 풀어나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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