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심은하가 따라주는 술 먹어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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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심은하가 따라주는 술 먹어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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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훈 시인이 시(詩)로 전하는 세상살이 이야기] (40)제주의 예술인 정공철

예수나 믿었으면 천당에나 갈 걸
부처나 믿었으면 극락에나 갈 걸
사범대학에 다니다 돈에 밀려 그만두고
고향 내려와 제재소에 일 다니다
전기톱에 감겨 손가락 두 개 잘리운 날
푸르딩딩한 손가락 하얀 무명으로 둘둘 말아
저만 아는 양지녘에 묻어 시왕전 보내고
대포잔 가득 쓴 소주 부어 아픔을 삼켰다.

아들네 형제 뒤치닥꺼리로
먹지도 입지도 못한 어머니
팔자궂은 전생 무슨 악연인지
시름시름 앓다가 끝내 사별하고,
편찮은 아버지 시중들던 셋째 아우가
물에 빠져 죽었다는 험악한 전갈을 받고,
먼저 가신 어머님 곁으로
후여 후여 먼길 떠나신 아버지.

모든 것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눈물겹도록 모지게 살기로 했다.
이제는 철저하게 아주 철저하게
팔자 그르친 신의 성방이 되어
이승에 없는 부모 형제 가슴으로 부르듯
이승에 남아 눈물로 살아가는 이웃과 함께
넉넉하게 끈질기게 분노의 바다 일구어 내는
우리 시대의 광대로 살기로 했다.
넓고 크게 살아가기로 했다.

해마다 사월이 오면
무자기축년 사삼시절이 되돌아오면
저승도 못가고 이승도 못오는
팔만 영혼을 부르는 심방이 되어
흩어진 봉두난발 송락에 감추고
갈적삼 도포에 오색요령 감상기 들고
신칼 잡아 초혼 이혼 삼혼을 부른다.
- 김수열의 시인의 시. 「정심방」 전문

요즘 서귀포시 표선면 성읍민속마을내 옛 마방집에서는 두이레 열나흘 동안 계속되는 ‘큰굿’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본주 심방인 정공철은 이번 큰굿을 계기로 정식 심방의 길을 걷게 됩니다. 오늘은 이 제주의 예술인 정공철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아시는 분은 알겠지만, 정공철은 제주민중문화운동사에 있어서 독보적인 인물로 통합니다.

마당극 배우와 연출가, 영화배우, 심방 등 그의 경력은 모두 문화예술운동에 굵직하게 새겨져 있습니다. 이 글을 쓰기 위해 관련자료를 훑다보니 정공철이라는 이름이 아주 유명해진 것을 알게 됩니다. 인터넷 네이버 검색창에서 ‘정공철’을 치니까 관련 문서들이 줄줄이 달려나옵니다. 제주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아주 맹활약한 인물로 나오고 있습니다.

“마당판을 꾸며 얘기하고 춤추고 소리하는 일이 비록 생산노동은 아닐지라도, 없는 사람의 없는 살림에도 밝은 웃음이 깃들고, 억울한 사람 억울함 풀고 더불어 사는 맛을 되찾아 보자는 것이 문화운동이요, 바로 그것이 광대정신입니다.”

언젠가 정공철은 ‘사람인人 제주’라는 텔레비전 방송에 나와서 위의 인용문 비슷하게 말을 했습니다. 부스스한 모습에 초점없는 눈으로 말을 이어가는 게 아무래도 전날 ‘초감제를 꽤 길게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초감제를 꽤 길게 했다’는 말은, 행사 전날 술을 퍼마셨다는 우리 마당판 배우들의 은어입니다.

이 은어를 아는 이유는 저도 그와 함께 20여 년 이상 같은 마당판에서 같이 굴러먹었기 때문입니다. 그와는 그 무슨 고래심줄이나 코끼리가죽 같은 질기고도 오랜 악연인지 이것도 하나의 전상이라면 전상이겠는데요. 그와 관련된 일화 하나입니다. 박광수 감독의 ‘이재수의 난’이라는 영화에서 그는 제법 비중이 큰 조연을 맡았었는데요. 나중에 술자리에서 그는 저에게 이런 자랑을 늘어놓았습니다.

“야, 김경훈! 너 이정재 심은하와 술 먹어봤냐?”
“심은하가 나한테 ‘정공철 선생님, 술 받으세요!’ 하면서 따라주는 술 먹어봤냐?”

그 영화가 망하기를 잘했지, 그러지 않고 롱런을 했다면 아마 정공철의 ‘제 잘난 타령’은 영화보다도 더 롱런하며 내내 나를 괴롭혔을 것입니다. 이런 그에 대해 썼던 글 하나를 소개할까 합니다. 1992년경 저는 ‘월간제주’라는 잡지사의 기자로 일하면서 ‘이승에 남아 눈물로 살아가는 이웃과 함께’라는 제목으로 그에 관해 쓴 글입니다. 기사의 말미에는 이렇게 정리되어 있습니다.

민중심방, 민중배우로 통하는 그는 우리시대의 기인奇人으로 보인다. 고은高銀 시 인은 그의 덥수룩한 머리와 독특하게 생긴 코 등 이국적인 외모를 가리켜 ‘안덕계 곡’같이 생겼다고 평하고, 또 그의 행보를 듣고는 ‘평생 광대짓이나 해먹을 놈’이라 고 예단하기도 했다.
86년 제주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하며 교단의 길을 포기하고 문화운동판을 택한 것 이나 나이 서른을 넘기고서도 의연히 마당극판을 지켜내고 있는 것을 보면 타고난 광대임에는 틀림없다. 그의 앞길이 어떻게 개척될지, 또 그가 추구하는 마당극이나 심방으로의 전도가 어떻게 전개될지는 그의 연기와 굿을 아끼는 관객대중들과 더불 어 지켜볼 일이다.
- 「월간 제주」 1992년 7월호

20년이 지난 지금, 그는 현재 확실한 심방이 되어 있습니다. 이제 ‘하신충’이라는 심방의 ‘학사’ 학위를 받는 절차를 마무리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앞으로 ‘중신충’, ‘상신충’의 절차를 밟으면 그야말로 심방의 석・박사 과정을 거쳐나가면서 제주의 큰심방이 되어갈 것입니다. 아주 오래 전에 누군가 이런 말을 했었습니다.

“정공철은 그렇게 술을 마셔대니까 절대 마흔을 넘기지 못한다. 마흔을 넘기고도 생존하면 그건 덤이다.”

그러나, 나이 쉰을 넘기고도 아주 말끔하게 잘 살고 있으니 덤치고는 복 받은 덤입니다. 이제 그는 그 덤을 자신만이 아니라 이웃들에게 되돌려줘야 합니다, 그것은 저가 중언부언 더 말하지 않아도 그가 더 잘 알 것이고 아는 만큼 몸으로 보여줘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승에 남아 눈물로 살아가는 이웃들’이 눈 부릅떠서 그를 지켜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그를 좀 추켜세우는 ‘주례사 부탁’으로 글마무리를 하려 합니다. 큰굿을 통해 이제 새로운 자격의 심방으로 재탄생한 그를 축복하면서 말입니다. 돌하르방 닮은 제주인으로 ‘안덕계곡’ 같은 ‘큰바위 얼굴’이 되어 ‘평생 광대’로서 ‘없는 사람의 없는 살림에도 밝은 웃음이 깃들’게 하고, ‘억울한 사람 억울함 풀고 더불어 사는 맛을 되찾’게 해주기를 기대합니다.

굿의 스승 한 분 한 분 모두 잘 모시고 후배들도 잘 거념하면서 새로운 인생을 새롭게 살아나가길 바랍니다. 저 또한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며’ 그를 지켜볼 것입니다. <헤드라인제주>

김경훈 시인이 시(詩)로 전하는 세상살이 이야기는...

   
김경훈 객원필진. <헤드라인제주>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4.3이야기, 현시대의 시사문제, 책을 읽은 후의 느낌, 삶의 의미과 가치에 대한 생각 등을 시(詩)를 통해 세상을 들여다봅니다.

 프로필.

1962년 제주에서 태어났고 제주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시집으로 「우아한 막창」,「운동부족」, 「한라산의 겨울」, 「고운 아이 다 죽고」,「삼돌이네집」, 「눈물 밥 한숨 잉걸」이 있고 마당극대본집으로 「살짜기옵서예」가 있다. 

제주 4.3 일본어 시집 「불복종의 한라산」도 최근 출간했다. 제주MBC 라디오 제주4.3 드라마 10부작「한라산」을 집필했다.

제주4.3 연구서인 「잃어버린 마을을 찾아서」와 「그늘 속의 4.3」, 「무덤에서 살아나온 4.3수형인들」을 공동집필했다. 현재 제주4.3사업소에서 일하고 있다.  <헤드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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