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없는 공무원'...왜 그들은 천막에 집착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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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없는 공무원'...왜 그들은 천막에 집착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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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논단] 농민들의 FTA반대 농성과, 제주시의 '본질 외면'

1.

단순히 '불법적 요소'를 방어하려는 차원이 아니었다. 지난 25일 제주도청 정문 앞 인도에서 발생한 제주시청 공무원들과 농민들의 충돌사태는 다분히 과잉적 측면이 있었다.

이날 상황은 농민들이 도청 앞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국회 비준안 처리를 저지하기 위한 농성에 들어가겠다고 밝히면서 비롯됐다.

천막을 치고 농성을 할 것이란 정보를 사전에 입수한 제주시청 공무원들은 농민단체의 기자회견 때부터 이미 대기하고 있었다. 그리고 천막설치가 진행되려는 순간부터 그들은 크게 '흥분'해 있었다.

천막설치가 불법이라면, 이를 차분하게 잘 설명하며 원만하게 해결하려는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고, 마치 '철거 용역반'과 같은 매몰찬 대응으로 일관했다.

철거되는 천막이 산산조각 나서 못쓸 정도로 파손됐다는 것만 보더라도 얼마나 심한 충돌이 있었는가를 실감케 한다. 농민 2명과 공무원 1명은 부상을 입었다.

공무원들의 강제철거는 단순히 노상적치물에 관한 행정적 처분사항 뿐만 아니라 '경찰권'을 행사하는 수준이었다.

항의하는 농민들을 향해 현장에 있던 공무원들은 "집회 허가가 나지 않았기 때문에 불법행위"라는 말까지 내뱉었다.

이는 경찰권에 해당하는 말이다. 현장에 도착하기 전 공무원들은 이들 농민들과 어떠한 대화를 나눌 생각조차 없었고, 농성을 막기 위해 천막을 철거시켜야 한다는 생각 밖에 없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말 표현에도 문제가 있었다. 헌법상 집회는 허가사항이 아니다. 집회결사의 자유가 보장되기 때문에, 신고제로 운영되고 있다.

이것이 '과잉'적 측면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첫번째 상황이었다.

2.

그날 저녁에는 그 정도가 한층 심해졌다.

천막을 빼앗기고, 길거리에 주저앉아 밤샘 노숙투쟁을 하기로 한 농민들은 그날 따라 매서운 찬공기가 엄습해오자 바람이라도 막을 요량으로 가림막 3장을 설치했다.

저녁 7시30분께 공무원 100여명이 현장에 투입돼 두번째 충돌상황을 빚은 것은 바로 이 '가림막 3장' 때문이었다.

이번에도 강제철거의 이유는 똑같았다. "인도에 불법 시설물을 설치하는 것은 허용할 수 없다"는게 이유다.

격한 몸싸움이 빚어졌다. 이 과정에서 농민 3명이 경찰에 연행됐다.

경찰력의 지원을 받으며 가림막 3장은 쉽게 철거됐다. 그러나 상황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집기류까지 빼앗기 시작했다.

"제주시에서 요구한대로 적치물 등을 모두 철거했는데 농민들이 깔고 앉아있는 방석들 마저 가져가려 하는 것은 너무 심하다"는 안동우 제주도의회 의원의 항변도 묵살됐다.

모든 것을 빼앗더라도 농민들은 길거리에서 밤샘농성을 할 것으로 충분히 예견되는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막무가내였다.

끝내 '방석'마저 압수해갔다.

방석까지 다 빼앗았으니, 밤샘 농성 해볼테면 해보라는 '꼼수'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방석'을 빼앗는 상황은 단순한 노상적치물 철거 수준을 뛰어넘어 농성자들에게 인격적 모욕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이것이 두번째 '과잉'적 측면의 상황이다.

3.

이걸로 끝이 아니었다. 자정이 넘어 26일 새벽시간.

제주도청 주차장에는 대형버스 2대가 여전히 시동을 켠채 세워져 있었다. 제주시청 철거전담 공무원들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며 농성자들을 감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시각 농성장에는 3명의 농민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이 3명을 감시하기 위해 수많은 공무원들이 '밤샘 지킴이'로 투입된 현실.

누가 보더라도 기가 막힌 장면이었다. 그날 따라 찬기운이 더하면서 초겨울 날씨 속에 농성자 3명은 침낭을 가져와서도 공무원들의 눈치를 보며 덮어 밤을 지새야 했다.

이 부분에서 공무원들의 '실제 목적'이 뭘까 하는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고작 3명 남은 농성자들이 또다시 천막이라도 칠까봐 밤새 감시하는 상황은 아이러니하기 그지 없었다.

단순히 노상적치물을 철거하기 위한 차원이 아니라 농성자들을 '고사'시키기 위한 압박작전에 다름없었다.

오전에 천막을 철거했고, 저녁에 가림막 3장 뿐만 아니라 '방석'까지도 모두 압수해 갔다면 그것으로 '임무'가 완성된 것으로 보고 물러설만도 한 상황이었다.

어차피 농성자들이 밤샘 노숙투쟁을 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면, 방석 몇장 갖고와서 깔고 앉는 것은 모른척 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물러서지 앉고 24시간 감시하는 체제로 나선 제주시의 대응은 지나쳐도 한참 지나쳤다는 지적을 면하기 어려웠다.

4.

전날 공무원들의 과잉적 대응에 화가 난 농민들이 제주시에 몰려가 항의했다. 김병립 제주시장과 면담하기에 앞서 시청 공무원들과 또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농민들은 "전날 공무원들은 흡사 용역 깡패 수준이었다"고 항의했다. 이에대한 제주시 총무과장의 반론.

"그럼 법대로 해결하라"고 반박했다. '힘있는 공무원'의 당당한 표현이었다. 고성과 욕설이 오갔다.

뒤늦게 면담에 나선 김병립 시장은 "농민들이 농업을 지켜내려는 것을 억제할 마음은 전혀 없다"고 전제하고, "그러나 공공재산인 도로를 점용할 경우는 행정의 입장에서 막을 수 밖에 없었다"고 답했다.

도로 점용은 정당한 사유로 관할관청의 허가를 받아야 하며, 시설물을 설치하지 못하게 한 것은 적법한 행정절차였다는 원론적 입장도 피력했다.

5.

김병립 시장의 답변 중, "농민들이 농업을 지켜내려는 것을 억제할 마음은 전혀 없다"는 말이 주목됐다. 과연 진심이었을까.

FTA 비준안이 처리되면 제주의 1차산업이 큰 위기에 직면할 것으로 우려해 긴급하게 이를 저지하고자 하는 농민들의 마음을 알았다면, 이같이 '험한 대응'을 선택했을까.

제주시 공무원들이 보여준 '철거작전'은 FTA를 주제로 한 농성 농민들에게 '노상적치물'을 화두로 돌려놓았다. 시국전환을 확실하게 시킨 셈이다.

제주대학교 고성보 교수는 한미 FTA가 체결되면 감귤에 있어서만 5년간 연평균 605억7000만원, 10년간 923억8000만원, 15년간 1002억1000만원 등 15년간 누적 손실액 1조1262억원이 발생할 것이라고 분석한 바 있다.

지금 제주시정은 FTA에 대해 얼마나 고민하고 대책을 마련하고 있을까.

FTA 비준안 체결문제는 국회에서 결정할 문제라고 하더라도, 제주시에서 해야 할 역할 또한 분명히 있다. 바로 FTA에 불안해하는 농민들과 함께 하는 일이다.

혹 FTA가 체결된다면 제주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한 답을 전해줘야 한다. 그들에게 FTA는 생존권이 달려 있는 심각한 문제다. 농성은 최소한의 '저항권' 차원이었다.

강제로 농성장을 철거하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그들이 농성을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위안을 줄 수 있는 답, 즉 'FTA 대책'이다.

이 답을 주지 못한 상황에서 발생한 일련의 과잉적 대응 상황은 '영혼없는 공무원'의 모습을 연상케 하기에 충분했다. <헤드라인제주>

<윤철수 기자 / 저작권자 ⓒ 헤드라인제주 무단전재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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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ssidy 2011-12-25 01:08:00 | 212.***.***.2
Haha. I woke up down today. You've ceerhed me up!

제대로 된 기사 2011-10-28 22:13:56 | 61.***.***.96
영혼없는 공무원에 공감

계란지단 2011-10-28 15:10:54 | 118.***.***.106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하면 그냥 되. 어차피 시간 지나면 월급 나오고, 연금 나와~.

자유로운 영혼 2011-10-28 13:29:27 | 211.***.***.3
시키면 시키는대로 옛날 용역깡패 구사대 같지요

칠십리 2011-10-28 12:57:40 | 61.***.***.170
명박이 개노릇을 하겠다는 놈들에겐 개처럼 대하면 된다. 그런
견무원들은 반드시 진급못하게 만들고 도민혈세 못받게 만들어야한다


실망 2011-10-28 10:02:17 | 211.***.***.232
집회 허가도 시청에서. 허가해쥬에. 시청은 헌법의 모든 권한 행세하나 읽어보기라도했나. 허가받으라고? 경찰에는 집회신고만 하면되는데
총무과장님은 법대로 하라고. 너무 가증스럽다
농민들을 위해 당신들은 지금 뭘하고 있소?

어처구니 2011-10-28 09:04:27 | 112.***.***.109
행정공무원들이 경찰행세를 하려하나 시민위해 군림하려는 지랄같은 행태를보이고 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