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된 강정, "이젠 '국민의 힘'에 호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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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립된 강정, "이젠 '국민의 힘'에 호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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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강경 대응방침에, 강정마을 대응기조도 '변화'
"사소한 대응은 자제...구럼비 해안은 끝까지 사수"

"오늘은 또 무슨 발표 이뤄지려는지, 이거야 참..."

매일매일 터져나오는 상황들은 서귀포시 강정마을 주민들에게 있어 결코 달갑지 않은 것들이었다.

공안당국의 초강경대응 방침 발표에서부터, 해군기지 문제를 진두지휘하게 될 경찰TF팀의 파견, 육지부 경찰 재투입, 법원의 공사방해금지 가처분 결정 등등.

'평화적 해결원칙' 하에 문제를 풀어줄 것으로 기대됐던 정치권 역시 실망스런 일들의 연속이다. 야권을 제외하고는 한결같이 '제주해군기지 건설의 정상화' 의지를 거듭 밝히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도 "지난 정권에서 잘 결정한 정책"이라는 말로 해군기지 정상적 추진의사를 밝혔다. 31일에는 김관진 국방부장관과 권도엽 국토해양부 장관이 담화문을 발표했다. 제주해군기지 건설사업을 조속한 시일 내에 정상화시키겠다는 것이 골자다.

그리고 31일 공사방해금지 가처분신청 결정사항에 대해 고시를 하기 위해 법원 집행관이 강정마을 중덕해안가 농로 삼거리와 강정포구 등에 '표지판'을 세운 직후에는, 육지부 경찰 450명이 제주에 추가 투입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하루에도 몇번씩 급박하게 변하는 상황을 접해야 하는 주민들은 정말 혼란의 연속이다.

여전히 해군기지를 온몸으로 저지하고, 절대보전지역인 구럼비 해안가와 할망물, 중덕해안을 지키겠다는 강한 의지를 표명하고 있지만, 분위기는 전과는 상당히 달라진 모습이다.

31일 오후 2시 이뤄진 법원의 고시내용 표지판 설치작업 때 표출된 반응이 이를 잘 보여준다.

예전같았으면 밀고당기는 충돌이 일어났을 터였다.

박성구 제주지법 집행관이 강정주민들에게 고시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헤드라인제주>
법원이 주민 등 37명에 대해 공사구역 내에 접근하지 말도록 하는 것은 물론, 5개 단체에 대해서도 공사방해 금지명령을 내렸는데 그 단체 중에서는 다름 아닌 '강정마을회'가 포함돼 있기 때문이었다.

사실상 강정주민들에 대해서도 의사표현의 자유영역을 제한한 것이다.

경찰도 바싹 긴장하고 있었다. 해군기지 사업단 앞은 물론 강정 일대에 수백명의 경찰력을 배치시켜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충돌은 없었다. 그동안 상황이 발생할 때만 하더라도 울려댔던 '사이렌'도 이날은 침묵했다.

집행관이 고시내용을 적은 표지판을 중덕 삼거리에 설치할 때에도 많은 주민들과 단체 회원들은 가까이서 지켜보기만 했을 뿐, 몸으로 막아서지는 않았다.

더욱이 표지판이 세워진 곳은 주민들과 단체회원들이 쇠사슬을 묶어 장기간 밤샘농성을 벌여오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표지판이 세워지는 동안에도 충도은 없었다.

다만 채증에 나선 경찰관과 약간의 실랑이가 있었는데, 이 때에도 쇠사슬 농성을 하고 있는 현애자 전 국회의원과 단체 대표자들이 적극 만류하면서 금새 진정을 찾았다.

표지판을 세우는데는 불과 20분 남짓 걸렸다.

중덕 삼거리에 설치된 법원의 공사방해금지 가처분 결정 고시내용을 읽고 있는 한 주민. <헤드라인제주>
법원의 공사방해금지 가처분 결정 고시내용. <헤드라인제주>
주민들이 농로 삼거리 주변에 모여앉아 얘기를 나누고 있다. <헤드라인제주>
중덕 삼거리 농로. <헤드라인제주>
묵묵히 지켜보던 주민들, 집행관이 돌아간 후, 그때서야 표지판의 내용을 찬찬히 읽으며 울분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강정마을회를 명단에 넣은 것은 강정주민 아무도 접근하지 말라는 뜻인데, 법원이 어떻게 이런 결정을 내릴 수가 있어?"

법원의 결정 등으로 활동반경이 크게 위축된 주민들은 이젠 넋두리로 마음을 달랠 수밖에 없는 듯 했다.

지난 몇달간 주민들과 함께 해 온 군사기지 저지 범도민대책위 위원장인 홍기룡씨도 지금의 벼랑 끝 상황에 대한 현실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국가권력을 위시해 모든 상황이 주민들에게 아주 불리하게 돼 있다"는 그는 "그렇지만 공권력이 투입돼 강제진압이 이뤄지는 그 순간까지도 '비폭력 평화적' 원칙은 끝까지 지키겠다"고 말했다.

앞으로 대응할 원칙은 '비폭력'임을 거듭 강조했다.

그는 "육지부 경찰이 내려왔고 해군이 곧 공사재개를 시도하겠지만, 하나하나에 일희일비 하듯 대응하지는 않겠다"고 말했다.

종전의 공사강행 시도 자체를 전면으로 막아섰던 대응기조와는 상당히 다른 것이다.

홍 위원장은 앞으로 기본적 대응방침을 명확히 정리했다.

군사기지저지 범대위 위원장인 홍기룡씨. <헤드라인제주>
기본적으로 현재 밤샘 농성이 이뤄지는 농로길에 펜스로 막으려 할 경우, 그리고 절대보전지역인 구럼비 해안에 포클레인을 앞세워 들어온다든지 할 경우에는 온 몸을 던져서라도 반드시 막아내겠다는 것이다.

이 외에는 가급적 불필요한 충돌이 없도록 한다는 생각이다.

그는 "물론 결사항전식으로 막아낸다고는 표현했지만, 이 역시 철저한 비폭력 원칙을 지켜 나갈 것"이라며 "공권력이 밀고 들어와 쇠사슬 농성자를 끌어내면 다른 사람이 다시 그 자리에 들어가고 하는 방식으로 농성은 계속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앞으로의 활동방향에 대해서는, "현실적으로 해군기지를 반대하는 주민들과 활동가의 힘만으로는 막아내기 힘든 실정"이라며 "따라서 앞으로는 '국민의 힘', '여론의 힘'을 모아내는 방향으로 활동을 전개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그는 "국민들과 함께 천혜의 아름다운 해안인 구럼비를 지켜달라는 호소를 통해 여론의 힘을 일으키고, 많은 국민들이 이곳 구럼비에 당당하게 걸어서 들어가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구럼비 살리기 국민운동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토요일인 3일 강정에서 열리는 문화행사에 많은 기대를 하고 있었다. 이날 '평화비행기'와 '평화버스'를 타고 전국의 많은 시민들이 강정에서 "구럼비 살리기"에 뜻을 모을 예정이다.

하루하루가 긴장의 연속인 강정마을은 이젠 '국민의 힘'을 간절히 기대하고 있다. <헤드라인제주>

<윤철수 기자 / 저작권자 ⓒ 헤드라인제주 무단전재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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