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의 시인, "詩도 주문제작할 때가 있죠"
상태바
거리의 시인, "詩도 주문제작할 때가 있죠"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경훈이 시(詩)로 전하는 세상살이 이야기] (28) 거리의 시인

 너는 물어 보았니
그 실개천들에게 계곡물들에게 물어 보았니
당신은 어떤 길을 따라 돌돌돌 흐르고 싶은 영혼이냐고
당신은 어떤 여울목에서 소용돌이로 엎어져 뒹굴며
쿨렁쿨렁 쏟아져 울고 싶은 영혼이냐고
물어 보았니. 콘크리트 수조 속에 갇혀 썩어가는 물이 되고 싶은지
세상의 모든 정체와 지체, 세상의 모든 부패와 오염을 밀고 흐르는
급류가 되고 싶은지 물어 보았니
실버들 선 돌방죽길을 따라 흐르며 무슨 생각을 했는지
갈대숲 늪지를 따라 흐르며 어떤 영혼의 정화를 꿈꾸었는지
물어 보았니
- 송경동의 시 「너는 그에게 물어 보았니 -MB에게 묻는다」 부분

가두집회나 추모제 등에서 시를 낭송해오고 있는 저로서는 다른 이름보다는 '거리의 시인'이라는 호칭이 아주 좋습니다. 저에게는 좀 과분한 이름이긴 하지만요. 위의 시를 쓴 서울에 사는 송경동 시인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거리의 시인’일 겁니다. 저는 그의 발끝에도 따라가지 못하지만, 그 이름값을 하려고 나름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이제는 주위에서 무슨 무슨 행사나 집회가 있을 때마다 저에게 시를 '주문제작' 의뢰를 해옵니다. '언제까지 어떤 내용으로 써달라'는 겁니다. 저가 아무리 거리의 시인일지언정 어떤 때는 하루 만에 써달라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대놓고 그 의뢰자들에게 말합니다.

"내가 무슨 시 공장이냐? 시 대장장이냐?"
그러면 그들은,
"너 밖에 해줄 수 있는 사람이 없어서 그래!"

좋은 말인지 놀리는 말인지 모르지만 저는 그냥 마지못해서 승낙하고 맙니다. 그리고는 계속 고민을 합니다. 그러다가 번갯불처럼 번쩍 시상이 떠오르면 그야말로 순간적인 감흥으로 쭉 써내려갑니다. 시를 쓰면서 저 자신이 어떤 전율 같은 것을 느끼게 되면 그것은 대중에게도 그대로 전달됩니다.

시가 대중들로부터 외면을 받는 작금의 현실에서 이 모든 거리의 시 행위들이 저 나름대로 대중들과 함께 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보아 주시기 바랍니다. '거리의 시인!' 멀지않은 미래에 백발이 성성한 노인네가 거리에서 시를 낭송하는 그런 모습도 그려봅니다.

어쨌거나 이런 시를 가지고 집회 현장에서 시낭송을 하게 되기라도 하면 공연에 배우로 참여할 때와는 또 다른 긴장을 하게 되는데요. 아무래도 저 스스로의 시낭송법에 대해 아직도 숙지를 잘 못하고 있는 탓일 겁니다. 어떤 이는 저의 시낭송이 항상 성명서 낭독 수준이라고 비하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언젠가 한 번 꼭 ‘시낭송굿’을 하리라 다짐합니다. 1인 시낭송 행사를 저는 ‘시굿’이라고 부르는데요. 굿이라는 게 맺힌 걸 풀어내는 행위잖아요. 그래서 저도 시를 가지고 맺힌 마음들을 풀어보려고 하는 겁니다. 이 시낭송 공연은 일본에 사시는 김시종 선생에게서 한수 배운 겁니다. 김시종 시인이 지난 겨울에 시낭송극을 했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시낭송극?’
‘어떻게 하는 거지?’
‘80이 다 된 노인네가 어떤 공연을 한 걸까?’

지인을 통해 확인을 해보니, 시낭송인데, 평범한 낭송이 아니라, 밴드까지 동원한 나름 공연 위주의 낭송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도, ‘아, 노인네도 하는데, 나도 한 번쯤 해야겠다!’고 작심을 하게 된 겁니다.

돌멩이 하나, 꽃 한 송이도 건드리지 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풀 한 포기, 보말 하나라도 다치게 마라
바람 한 점, 파도 한 겹조차 거스르지 마라
시멘트덩이 하나, 쇳조각 하나 들이대지 마라
죽음의 말 한 마디, 파괴의 언어 하나 내뱉지 마라
폭력의 몸짓 하나, 허튼 전쟁의 아픈 기억 하나 보태지 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바라노니
사람 하나, 그 모든 생명 하나 감히 다스리려 마라
-졸시, 「돌멩이 하나 꽃 한 송이도」 전문

지난 6월 22일에 저의 개인 시낭송굿 공연에서 위의 시를 낭송했습니다. 강정마을 구럼비 바위를 깨부수고 거기에 콘크리트를 바르겠다는 그 천박한 발상에 대한 저의 항의의 표현입니다.

하지만 시낭송 공연은 처참하게 망했습니다. 관객이 안 든 것이 아니라, 저의 시낭송이 아주 개차반이었다는 겁니다. ‘언제 끝나나?’는 지루한 눈으로 보는 관객들 앞에서 그야말로 저는 쥐구멍을 찾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다시 ‘음, 역시 글쟁이는 글로 해야 되는 거로구나!’고 마음을 다시 바꿉니다. 그래서 ‘글을 써서 책으로 내자!’는 걸로 결론을 내립니다. 아마 여러분은 조만간 그 책자 하나를 보게 될 겁니다.

각설하고, 지난 6월에 서귀포에 사는 이모 형에게서부터 시를 하나 써달라는 청탁이 왔습니다. ‘서귀포 6월민주항쟁정신계승사업회’가 창립되면서 상징조형물을 만드는데 그 제막식에 축시를 하나 써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주문이 들어왔는데, 공장에서 거절할 수 있겠습니까? 바로 주문제작 생산공정에 들어가서 아주 짧은 시를 한 편 써서 보냈습니다.

반도의 최남단 서귀포 예서부터
다시 민주의 바람이 시작되리라
낮게 드리워진 검은 구름 걷어내고
맑은 하늘이 예로부터 열리리라
질풍노도 천둥벼락의 함성으로
써근섬 바다 가르듯 새 날은 오리라
그리하여 맑고 맑은 빛의 심판이
온갖 더러운 것들 싹 녹여 내리라
오직 정의롭고 자유로운 영혼들이
삼라만상 하나 되어 예서 영원하리라
- 졸시, 「되살아오는 유월에」 전문

아, 참고로 말하자면, 우리 공장에서는 제작비를 일체 받지 않습니다. 제작을 의뢰한 사람들도 전혀 그런 생각을 하지 않고, 공장에서도 의례히 받을 걸로 생각 안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공장이 망하거나 문을 닫을 일은 아마 없을 겁니다. 대량생산 구조가 아니라 소량의 특수품을 제작하는 공장이니까요.

저가 만든 생산품들이 때로는 골갱이가 되고, 때로는 낫이 되고, 때로는 쟁기가 되고, 때로는 수레바퀴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면야, 공장에서야 더 바랄 게 없지요. 여러분들도 혹여 필요하시다면, 언제든 우리 공장을 애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저의 부친께서는 진짜로 ‘대장장이’였습니다. 어릴 때 저가 곁에서 풀무질도 도와드리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부전자전, 아마 이것도 일종의 가업이 아닐까싶습니다.

김경훈 시인이 시(詩)로 전하는 세상살이 이야기는...

   
김경훈 객원필진. <헤드라인제주>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4.3이야기, 현시대의 시사문제, 책을 읽은 후의 느낌, 삶의 의미과 가치에 대한 생각 등을 시(詩)를 통해 세상을 들여다봅니다.

 프로필.

1962년 제주에서 태어났고 제주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시집으로 「우아한 막창」,「운동부족」, 「한라산의 겨울」, 「고운 아이 다 죽고」,「삼돌이네집」, 「눈물 밥 한숨 잉걸」이 있고 마당극대본집으로 「살짜기옵서예」가 있다. 

제주 4.3 일본어 시집 「불복종의 한라산」도 최근 출간했다. 제주MBC 라디오 제주4.3 드라마 10부작「한라산」을 집필했다.

제주4.3 연구서인 「잃어버린 마을을 찾아서」와 「그늘 속의 4.3」, 「무덤에서 살아나온 4.3수형인들」을 공동집필했다. 현재 제주4.3사업소에서 일하고 있다.  <헤드라인제주>


<김경훈 객원필진/저작권자 ⓒ 헤드라인제주 무단전재및 재배포 금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