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수를 찾는 사람들, '할망물'을 마시다
상태바
생명수를 찾는 사람들, '할망물'을 마시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강정현장 이야기] <3> 제주해군기지와 곤경에 처한 '할망물'

사람마다 고유한 특징이 있습니다. 그 사람을 생각하면 얼른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습니다. 그런 것을 가리켜 ‘트레이드 마크’(Trademark)라고 부릅니다. 이 말은 원래 ‘등록상표’라는 뜻이지만, 사람이나 집단에 대해 사용할 때는 그 사람을 연상시키는 특징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이 ‘트레이드 마크’라는 것이 교역품을 의미하는데, 이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무엇인가 팔고 살수 있는 있는 물건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트레이드 마크’에는 살 수 있는 것이 있고, 살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강정마을에서 문득 주변의 집단들과 사람들에 대한 상징적인 이미지를 상상해봅니다.  해군에 대항하고 있는 강정마을에 대한 이미지는 무엇일까요? 저는 바로 ‘물’이라고 봅니다. 이름 그대로 ‘강정(江汀)’입니다.
 
해군은 물 없이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물을 바라보는 시각은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 물은 인간생존의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물이 있는 곳에 사람이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강정마을에서 물은 생명의 근원이자 삶의 내용인 반면, 해군에게 물은 단지 군함이 뜨기 위해 필요한 조건일 뿐입니다.
 
하나의 상징이 이처럼 극단적으로 비교되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고 봅니다.

현재 강정마을에 해군기지를 반대는 강정지킴이들이 거주하는 해안가에는 상수도가 없습니다. 중앙정부의 공권력이 점차로 봉쇄를 좁혀오지만, 사람들은 상수도 없이도 하루에도 수백명씩 버티고 있습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자연이 미리 배려한 물이 있기 때문입니다.

강정마을은 물의 마을이라고 할 정도로 풍부한 용천수가 분출됩니다.
 
서귀포시의 주요 수원인 강정천과 악근천이 있고, 면적당 밀도로는 전국 최대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마을 곳곳에서 용천수가 솟아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용천수마다 강정마을에 살았던 사람들의 삶의 애환이 담겨져 있습니다. 소왕물은 보를 쌓아서 물레방아를 돌렸던 곳, 이첨장물은 이씨성을 기진 사람이 이 물을 이용해 논을 만들었다고 해서 붙힌 이름, 함백이물에는 선사유적이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할망물은 집에서 토신제를 지내거나 굿 등 정성을 드릴 때, 또는 산모가 젖이 잘 안나올 때 이용하는 물로 제주의 토속신앙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서귀포시 강정마을 해안가. <사진=김국상, 헤드라인제주>
서귀포시 강정마을 할망물. <사진=김국상, 헤드라인제주>
서귀포시 강정마을 할망물. <사진=김국상, 헤드라인제주>

강정마을에서 해안가로 내려가면, 길다란 해안선을 따라 형성된 조간대에 ‘구럼비’라고 불리는 검은 너럭바위가 죽 늘려있습니다. 곳곳에서 지하 용천수가 분출되는데, 갈증 난 목을 축이니 이보다 더 달고 시원할 수가 없습니다. 지척이 바닷물이건만 염기 성분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 신기하게 느껴집니다.
 
이중에서도 할망물의 물맛이 그중 으뜸입니다. 그리고 이 할망물은 위치나 그 의미가 너무나도 절묘하기만 합니다.

할망물은 일단 해군기지 공사장에서 바다로 내려가려면 반드시 필요한 진입로 가운데 위치합니다. 따라서 할망물이 자연스럽게 공사진행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할망물은 강정지킴이들이 먹고 사용하는 물을 공급하기에 충분한 수량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해군기지가 건설되려면 반드시 이 할망물을 파괴해야만 합니다.

그러나 해군기지를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할망물은 생명수입니다. 설화나 전설에 서 생명을 살리는 물질로 흔히 얘기되는 것이 물, 바로 그 생명수입니다.
 
이미 죽어버린 생명체에 새로눈 뼈와 피가 되는 생명수의 신화는 동, 서양을 막론하고 널리퍼져 있는 테마입니다. 이는 물이 생존의 필수조건이기 때문입니다.
 
소설가 황석영씨는 ‘바리데기’라는 소설에서 우리 고유의 설화를 재해석해서 생명수를 찾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사람이 살아가고, 얽히고, 눈물 흘리는게 '삶'이란 거 같다. 
인간은 삶에 관한 여러가지 단어를 만들어냈다. 사랑. 슬픔. 배신. 믿음. 신뢰. 소망.
이런 것들 말고도 수십, 수백, 수천가지의 단어들이 있다.
생명수가 뭔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 모두에게 중요한건 이런 생명수를 찾아가는 과정이 아닐까?
삶을 살아간다는거, 그런 생명수를 찾아가는 길을 어떻게 걸어가냐가 중요한게 아닐까.
존재하는지, 안하는지도 모르는 생명수를 찾아가는 그 길.
그 길을 걸어가는게 중요한게 아닐까. ( 소설 ‘바리데기’ 중에서)

할망물은 자연이 수없이 셀 수 없는 오래된 시절부터 오늘을 위해 준비한 배려입니다. 그리고 자연에 순응하는 사람들이 찾아낸 생명수입니다.
 
가만히 할망물 앞에 앉아서 샘물을 바라보고 있으면 1급 보호종인 ‘제주새뱅이’가 보입니다. 자그마한 공간이지만 온갖 생명체가 살아 숨쉬고 있음을 금방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강정을 찾는 ‘순례자’들에게 할망물 속에 있는 세상은 하나의 경의로운 존재로 다가섭니다. 수만년전부터 생명을 잉태하고 이를 지켜온 할망물의 존재는 돈을 앞세우고 권력을 앞세우는 사람들에게는 한낱 공사의 방해물로밖에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생명을 찾고 자신을 찾으려는 이 세상의 ‘바리데기’들에게는 세상의 끝에서 만난 최고의 경이로움이자 세상살이에 지친 육신을 치유하는 생명수입니다. 
 
또한 현재 할망물이 처한 위기는 곧 닥쳐올 우리의 미래에 대한 얘기이기도 합니다. 이 슬픔이 진정 아름다운 희망이 될 수도 있음을 지금 할망물 앞에 느껴보시기를 간절히 권합니다.
 
사회당 전 대표인 금민씨가 할망물에서 설거지하다 넘어져서 한참을 웃었는데, 뼈가 뿌러졌다고 하네요. 빨리 쾌유하기를 바랍니다.

<김국상 / 제주주민자치연대 정책실장>

 

김국상의 '강정현장 이야기'는...

   
김국상 제주주민자치연대 정책실장. <헤드라인제주>
제주해군기지 문제로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이 계속되고 있는 서귀포시 강정마을.

현재 제주주민자치연대 정책실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김국상님은 몇달째 강정마을에 있습니다.

강정을 꼭 지켜야 한다는 그의 희망이 간절합니다. 불안감에 휩싸여 있는 주민들과 함께 하고 싶어합니다.

<강정현장 이야기>는 지금 강정마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그대로 전하고자 합니다. 

이 이야기의 끝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또 언제까지 이 이야기가 이어질지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이야기의 진행과정과 끝, 그것이 바로 제주해군기지 문제의 당면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이 글은 <헤드라인제주>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딥페이크등(영상‧음향‧이미지)을 이용한 선거운동 및 후보자 등에 대한 허위사실공표‧비방은 공직선거법에 위반되므로 유의하시기 바랍니다.(삭제 또는 고발될 수 있음)
댓글수정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