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위된' 강정마을, 정말 '최악'의 수를 두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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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위된' 강정마을, 정말 '최악'의 수를 두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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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논단] '고립작전'은 비겁한 도발에 다름없다

지난 23일부터 서서히 좁혀오기 시작하던 경찰력은 마침내 24일과 25일 이틀새 마을 곳곳에 진을 쳤다.

주민들과 수차례 대치 끝에 마을 길목 길목을 진을 친 경찰이 장악한 서귀포시 강정마을은 흡사 계엄령이 내려진 마을과 다를 바 없었다.

제주에서 가장 수려하기로 소문난 올레 7코스 길목 마다에는 진압용 방패를 갖춘 전의경, 그리고 사복경찰이 배치돼 삼엄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24일 오후 경찰이 중덕해안가 투입을 시도하면서 촉발된 경찰과 주민의 대치국면.

진입하려는 경찰과 이를 막으려는 주민들간 한바탕 난리가 벌어진 후, 25일 오후부터는 잠시 소강상태에 들어갔다.

하지만 주민들은 잔뜩 긴장하고 있다.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무력진압'의 공포심이 마을 전체에 휩싸여 있었다. 얼마없으면 수를 헤아리기 힘들 정도의 소위 '응원경찰'이 온다는 얘기까지 나돌았다.

주민들은 4.3의 아픈 기억을 떠올리고 있었다. 아직까지 중덕해안가로의 통행은 허용되고 있으나 언제 차단될지 모르는 일촉즉발의 상황이다. 서서히 고립되어 가는 모습이다.

25일 밤, 중덕해안가로 통하는 국유지 용도폐지 논란의 대상인 농로의 중간쯤에는 이날 낮 기자회견 후 몸에 쇠사슬을 묶은 여성들이 앉아 경계를 하고 있었다.

제주해군기지 공사장 서쪽에 위치한 구럼비 중덕해안가에는 주민들과 평화운동가, 시민운동가 등이 대책을 숙의했다. 결론은 '결사항전'.

말이 결사항전이지, '비폭력'을 원칙으로 천명했다. 무장한 경찰이 들이닥친다 하더라도 죽기를 각오하고 비폭력으로 마지막까지 싸우겠다고 했다.

잠시 소강상태에 들어가자, 2006년 5월4일 새벽 평택 대추리에서 행해진 국방부의 일명 '여명의 황새울 대작전'을 떠올리는 이들도 있었다. 그 때도 지금과 같은 일시적 소강상태가 진행된 후 기습적으로 이뤄졌다.

경찰은 왜 갑자기 강정마을을 포위하고 나선 것일까.

경찰측은 해군의 요청에 의해서 그러고 있다고 했다. 불법 시설물이 중덕해안가로 반입되고 있는데 왜 경찰이 이를 막지 않느냐는 해군의 항의에 따라 그렇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불법 시설물'의 반입을 막기 위한 주둔치고는 경찰력의 규모나 행해지는 일련의 과정이 심상치 않다.

더욱이 지금까지 중덕해안가에서 이뤄진 해군기지 관련 행사 등은 그 자체만으로 불법적이고 폭력적인 사례가 나타난 적이 없었다. 철저하게 비폭력으로 해군기지 반대운동은 전개돼 왔다.

그런데도 마치 1980년대 화염병이 등장할 당시 처럼 '불법'이란 단어를 붙일만한 물품들이 반입되고 있는 것처럼 호도하면서 해안가 길목에 수백명의 경찰력을 배치시킨 것은 아이러니하다.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아직 단정하기는 어려우나 공권력 투입을 통한 무력진압의 가능성이 크다. 그 사전단계로 이미 마을내 경찰력을 배치시킨 후, 실제 무력진압을 실행할 즈음에는 경찰력을 일시에 증원해 속전속결로 끝낼 계산으로 보인다.

최근 제주를 방문한 조현오 경찰청장이 '공사방해 행위에 대한 강력한 대응'을 지시한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중덕해안가를 지키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몰려온 평화운동가, 그리고 강정주민들을 끌어내고, 동시에 마지막 남은 국유지 농로를 접수해 해군기지 공사를 강행할 의도가 짙다.

당초 26일쯤 이뤄질 것으로 예상됐던 공권력 투입시점은 며칠 늦춰질 가능성도 있다.

주민들은 농로의 용도폐지를 결정하는 시점, 그리고 주민과 평화운동가 76명에 대한 리스트를 작성해 법원에 '공사지역 접근금지 가처분신청'을 한 결과가 나오는 시점에서 행해질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빠르면 2-3일 내, 늦어도 다음주 중에는 국책사업이란 미명하에 대대적인 무력진압이 행해질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해군과 경찰의 행동이 너무나도 비겁하다는 것이다. 이념과 가치관에 따라 생각을 달리할 수 있는 강정해군기지 문제에 있어 반대측 의견을 공권력을 통해 장악하겠다는 발상부터가 비겁하다.

해군기지 공사 과정에서 제기된 숱한 불법성은 그대로 눈감아주거나 방치하면서, '불법 공사'라고 주장하며 이를 저지하는 주민들에 대해서는 가차없이 법대로 집행하는 공권력 행사.

'공정한' 법 집행을 운운하고 있으나, 이미 균형을 잃어 편파성이 짙다.

무력진압은 최악의 상황으로 몰고 갈 공산이 크다. 이는 대한민국 해군과 민중의 지팡이인 경찰이 할 일이 아니다.

사실상 이번 상황을 만들어낸 해군은 비겁함을 버리고 당당히 명분있는 논리로 설득에 나서야 한다. 그게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의 순서다.

무력진압은 돌이킬 수 없는 참담한 결과를 가져올 뿐이다. 그것은 도발에 다름없다. <헤드라인제주>

강정마을 곳곳에 배치된 경찰. <헤드라인제주>
쇠살을 몸에 감고 결사항전을 다짐하는 주민들. <헤드라인제주>
쇠살을 몸에 감고 공권력에 맞서는 주민들과 여성 농민회원들. <헤드라인제주>
25일 오후 강정마을 중덕해안가에 설치된 무대에서 강정마을 주민들과 해군기지 반대단체 관계자들이 연석회의를 갖고, 앞으로 공권력 투입상황에 대한 대처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헤드라인제주>

<윤철수 대표기자 / 저작권자 ⓒ 헤드라인제주 무단전재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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