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지천에서 '고등어 박사장' 모르면 간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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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지천에서 '고등어 박사장' 모르면 간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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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산지천은 내가 지킨다" 박장오씨
"쓰레기 보이면 줍는 것, 당연한거 아닌가요?"

제주시 구도심의 중심 산지천.

한때는 '제주시의 관문'으로 불리며 많은 시민들이 오가는 번화가로 첫 손에 꼽혔지만, 어느 순간부터 상권이 시들해졌고 덩달아 거리도 활기를 잃어갔다.

특단의 대책으로 성냥갑처럼 붙어있던 낡은 건물들이 헐리고 하천이 만들어지는 등 새로운 관광명소로 거듭나기 위한 몸부림을 치고 있는 상황이다.

불과 50년사이에 변하기도 많이 변한 산지천 인근. 이 자리에 '고등어 박사장님'은 한결같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뭐 특별히 하는일도 없어요. 쓰레기 떨어져 있으면 줍고, 싸움 나면 말리는 건데 이야기할 것이 있겠나."

박장오씨. <헤드라인제주>
수십년째 산지천의 순찰을 자임하고 있는 박장오씨(78)는 무더운 날씨임에도 저만치 떨어져 있는 빈 컵을 주으러 걸음을 바삐 옮겼다.

50년째 서부두 근처에서 살고있는 그는 젊었을적 배를 타면서 시장에 생선을 내다 팔았다. 1남 2녀가 장성하고, 어느정도 여유가 생기자 지난 2006년 어선을 감척했다.

이후 동네를 산책하며 떨어져 있는 쓰레기도 줍고, 거리에서 술을 마시는 사람들을 보면 타이르기도 했다.

길거리에서 자고있는 사람이 눈에띄면 깨워서 집으로 들여보내고, 싸움이라도 나면 가장 먼저 나서 뜯어말리는 사람은 항상 박씨다.

소일거리로 시작한 일이었는데 5년이 지나가니 그를 모르는 주민들이 없을 정도다. 한참 고등어를 팔다보니 통칭 '고등어 박사장'이라고 불리는 그를 모르면 간첩이란다.

함께 자리하고 있던 주민들이 그를 추켜세우자 "대단한일 하는 것도 아닌데 괜히들 그런다"며 멋쩍은 웃음을 짓는다.

"그래도 내 말은 잘 듣더라고. 다들 알고지내는 사이다 보니까 이해하게끔 타이르면 돼요."

경찰이 나서도 해결되지 않는 상황도 그의 한마디로 정리되고는 한다.

간혹 멋모르는 뜨내기들이 그에게 덤벼들고는 하지만, 그럴때면 가만히 지켜보던 주위의 주민들이 역정을 내면서 "어디 어르신한테 함부로 대하냐"며 편을 들어준다.

산지천 인근 벤치에 앉아 쉬고있는 박장오씨. <헤드라인제주>
산지천 인근 벤치에 앉아 쉬고있는 박장오씨. <헤드라인제주>
여름철이 되니 더욱 바빠졌다. 산지천 테우 근처에서 놀고있는 아이들이 사고가 나지 않을까 신경쓰랴, 밤이되면 인근에 앉아 술을 마시는 이들이 말썽을 부리지는 않을까 지켜보랴 정신이 없다.

서부두도 그의 관할이다. 제주해양경찰서의 민간 구조대 활동에 동참하고 있는 그는 유니폼을 입고 방파제에서 노는 아이들을 지도한다.

그에게 '어떻게 이런 일을 시작했느냐'는 미련한 질문을 던지자 "쓰레기 떨어지면 줍고, 싸움 나면 말리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니냐"며 의아해 한다.

그 당연한 것조차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는 부끄러움에 화제를 급히 바꿨다.

"산지천이 많이 좋아졌죠. 공원이 만들어지면서 사람들도 많이 찾아오고. 그런데 좀 바꿨으면 하는 것이 있어요."

오후 1시 산지천 음악분수에 분수가 뿜어져 나오는 것을 지켜보던 그는 분수의 시간대를 늘려야한다고 말했다. 한참 더울때인 오후 2시나 3시께 가동하면 훨씬 좋아지겠다는 것이다.

"관광객들이 더운 시간에 찾아오는데 분수가 꺼져있어 제 구실을 못하고 있어요."

또 어린이집 등에서 단체로 분수를 찾아오기도 하는데, 그럴때면 일부러 분수를 가동시켜주면 어떻겠느냐는 제안도 넌지시 꺼냈다. 공원 인근에 식수가 없다는 것도 큰 불편으로 지적했다.

직접 보고 경험한 것과 여러 사람들과 대면하면서 느껴온 것들이다.

대단한 일은 아니지만 앞으로도 꾸준히 산지천 동네를 돌보고 싶다는 박씨. "손자가 군대도 갔다오고 이제 대학교를 졸업해요. 이렇게 살다가 조용히 가는거죠." <헤드라인제주>

<박성우 기자 / 저작권자 ⓒ 헤드라인제주 무단전재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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