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테랑 만화가, 펜 대신 '깃발' 든 사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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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테랑 만화가, 펜 대신 '깃발' 든 사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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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고향 내려온 고권일씨, '해군기지'에 올인하다
18년 베테랑 만화가의 귀환..."해군기지 문제가 급선무"

최근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시민운동가들의 동참으로 활기를 더해가고 있는 서귀포시 강정동 해안의 해군기지 반대 투쟁현장.

그 투쟁현장에서 항상 가장 선두에 자리를 잡고 누구보다 강하고 단호하게 해군기지 철회를 요구하는 사람이 있다.

긴 머리에 덥수룩한 턱수염의 고권일씨(49).

강정마을에서 제주해군기지 반대대책위원장을 맡고 있다. 이 지역 출신이기는 하나, 서울서 만화가로 활동했던 그가 어떻게 해서 지금 해군기지 반대 투쟁 최일선에서 활약하고 있는 것일까?

6일 강정마을 중덕해안가에 설치된 평화전시장에서 그를 만날 수 있었다.

고권일 제주해군기지 강정마을 반대대책위원장. <헤드라인제주>

# "18년간 서울서 만화가 생활...고향 내려오니 해군기지 문제로 떠들썩"

그는 스포츠신문에 만화를 연재하며 데뷔, 소년만화잡지 등을 거치며 18년간 연재해온 베테랑 만화가였다. SF와 판타지 그리고 스포츠물을 그리며 상당한 인기를 얻기도 했다.

하지만 IMF와 일본만화 시장 개방, 도서대여점 문제 등 다양한 악재가 겹치며 그는 손에서 펜을 놓았고 한동안 갈피를 못잡고 방황하다 어머니의 병환을 계기로 지난 2008년 10월께 고향인 강정마을로 돌아오게 된다.

그가 돌아왔을 당시 서귀포시 강정마을은 한창 해군기지 문제로 갈등을 겪고 있던 시기였다.

해군기지 문제로 고통을 겪고 있는 마을주민들을 보며 그 역시 해군기지 반대운동에 참여하긴 했지만 어머니의 병수발을 들어야 하는 입장이다 보니 앞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기보다는 뒤에서 지원하는 일을 도맡아했다.

고권일 위원장이 강정마을 의례회관에 그린 벽화. <헤드라인제주>

만화가의 실력을 살려 강정의례회관을 비롯해 마을 곳곳에 벽화를 그리거나 해군기지 반대운동과 관련된 성명 등을 작성하고, 강정해돋이 축제와 제주도 일주 도보순례 등을 계획하고 했다.

그러나 갈수록 심해지는 어머니의 병세에 그는 자신이 계획했던 행사에 참석하지도 못했을 정도였다.

그렇게 2년의 시간이 흘렀고 2010년 중순께 고 위원장은 어머니를 보다 좋은 환경에서 모시기 위해 요양원으로 옮기게 됐고 아이러니하게도 그때부터 시간적 여유가 생기면서 해군기지 문제에 더욱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생각도 정리할 겸 해서 고향으로 돌아왔는데 해군기지 문제로 떠들썩 하더라구요. 하지만 어머니를 모셔야 하는 입장이다 보니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다가 2010년 어머니를 요양원으로 모시고 난 후 본격적으로 반대운동에 참여하기 시작했죠. 그러다보니 어느새 반대대책위원장까지 맡게 되더라구요."

# 해군기지 '전국화' 앞장

고 위원장이 본격적으로 해군기지 반대운동에 동참하게 된 계기는 어머니의 일도 있었지만 당시 상황이 영향을 준 것도 컸다.

2010년 9월 강정주민들이 제안했던 해군기지 입지재선정.

당시 강정주민들은 당초 해군이 기지건설 입지조사를 벌였던 8개 마을에 유치여부를 다시 물어보고 모두 받아들이지 않으면 강정 해군기지 건설을 받아들이겠다는 '조건부 수용'의 초강수를 뒀다.

그러나 이 제안은 무산됐고, 강정마을 주민들은 다시 해군기지 반대투쟁에 나서긴 했지만 오랜 투쟁에 지쳐 의욕을 상실하고 투쟁을 포기하는 사람이 나오기도 했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그가 선택한 것은 '해군기지 문제의 전국화'.

전국적으로 해군기지 문제를 알려 많은 사람들이 강정마을을 찾아오게 만들고 그들이 주민들과 함께 투쟁에 나서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이 방법은 하나의 도박이었다. 자칫하면 순수하게 마을을 지키기 위해 오랜시간 투쟁해 온 마을주민들의 뜻이 오해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고권일 제주해군기지 강정마을 반대대책위원장. <헤드라인제주>
고 위원장은 "당시 주민들의 경우 제안서가 무산되자 의욕을 상실하고 반대의지는 있지만 투쟁현장에 나오지 않거나 긴급 사이렌이 울려도 10명이 나올까 말까 한, 그야말로 와해되기 일보 직전인 상황이었다"며 "결국 마지막 방법으로 해군기지 문제를 전국에 알리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고 위원장은 현재 해군기지 반대투쟁을 벌이다 구속된 평화운동가 최성희씨와 함께 지난해 12월부터 전국의 시민사회단체 등에 강정마을의 상황을 알리고 언론을 통해 홍보활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지난 1월 생명평화순례단이 제주해군기지 관련 100일순례를 계획하며 강정마을에 의사를 타진해오기 시작했고, 그동안 회원들 개인적으로 해군기지 반대운동에 나섰던 개척자들과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도 해군기지 반대운동에 적극 동참하기 시작했다.

특히 평통사의 경우 전국 118개 시민단체들이 참여한 '제주해군기지건설 저지를 위한 전국대책회의'가 결성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고 위원장은 "해군기지 문제를 전국화하던 당시 걱정했던 문제는 일어나지 않았고, 이제는 전국 곳곳에서 강정마을에 힘을 실어주기 시작했다"며 이제부터 본격적인 해군기지 반대운동이 시작된다고 말했다.

# "공사중단-예산 백지화 중 한가지는 반드시 이뤄낼 것"

전국에서 몰려든 시민단체들로 최근 강정해안가가 활기를 띄고 있는 상황에서 고 위원장은 "올해야 말로 해군기지 문제를 결정지을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솔직히 마냥 낙관적이지만은 않지만 9월까지 해군기지 공사중단 혹은 해군기지 관련예산 백지화 중 하나는 반드시 이뤄내야 하죠"

이유는 뚜렷한 가시적 성과를 만들어 내 주민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함이다.

고 위원장은 "올해부터 전국에서 해군기지 문제에 대해 관심을 보이는 것에 대해 '너무 늦은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오고 있지만 솔직히 개인적으로는 올해가 적기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내년 총선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이명박 정권이 다양한 실정을 저지르며 힘이 약화됐기 때문에 지금 강정마을까지 신경쓸 겨를이 없다"며 "이런 상황에서 해군기지 문제를 전국으로 퍼트리고 힘을 기른다면 정부에서도 우리를 쉽게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제 해군기지를 강정에서 몰아내고 이 곳을 평화의 상징으로 만드는 일만 남았다"며 "이를 위해서는 마을주민들과 시민운동가들, 그리고 제주도민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나서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6일 비가 내리고 있는 서귀포시 강정마을 중덕해안가. <헤드라인제주>

# "나중에 해군기지 문제 다룬 만화 그릴 생각"

18년간 매진했던 만화에서 손을 놓고 지금은 고향인 강정마을에서 해군기지 반대투쟁에 매진하고 있지만 그는 아직 만화를 포기한 것은 아니라고 했다.

해군기지를 비롯해 국제자유도시, 곶자왈 등 다양한 제주도내 현안을 지켜본 고 위원장은 언젠가 이 소재거리를 가지고 만화를 그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동안 강정마을 해군기지 문제를 비롯해 다양한 현안사항에 대해 지켜보면서 많은 소재를 찾았어요. 언젠가 해군기지 문제를 비롯해 제주 곳곳에 숨어있는 문제에 대해 만화로 그려 사람들에게 알릴 생각을 하고 있어요. 그럴려면 우선 해군기지 문제가 해결돼야겠죠?"

언젠가 서점에서 만화가 고권일의 이름으로 그려진 제주 만화를 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헤드라인제주>

<김두영 기자 / 저작권자 ⓒ 헤드라인제주 무단전재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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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사랑 2011-07-08 10:56:44 | 27.***.***.190
솔직, 담백, 순수하신 고 위원장님을 보며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웁니다. 또한 많은 감동을 받기도 했구요. 정말 만화보다 더 아름답게 사시는 것 같습니다. 건강에 유의하세요.

만화가로 2011-07-08 10:49:30 | 59.***.***.65
더욱 대성하기를 빕니다.해군기지 싸움과 연계하여 벽화,만평등은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불러올 수 있습니다.건강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