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 청년, 그에게 '항쟁 조형물'은 어떤 의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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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 청년, 그에게 '항쟁 조형물'은 어떤 의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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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서귀포 6월 민주항쟁 주역 이영일 씨의 '새로운 시도'

혈기왕성한 청년들은 어느덧 희끗희끗 흰머리가 나기 시작한 중년이 됐다.

나라의 안위만을 걱정하며 몸을 불사르던 그들에게는 식구들의 안위까지 걱정해야 하는 무게가 얹어졌다.

24년이 지난 오늘, 차곡차곡 일궈 온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변하기도 많이 변했다.

그러나, 그날의 감격과 영광만큼은 결코 잊혀지지 않으리라.

기념조형물 앞에서 활짝 미소짓는 이영일 서귀포6월민주항쟁정신계승사업회장. <헤드라인제주>

"그때만 생각하면 말할 수가 없이 감동스럽죠. 오늘 동지들도 함께 참석해 더욱 기쁜 마음이 듭니다."

한반도 최남단에서 자발적으로 이뤄졌던 민주화 항쟁. 이를 기념하는 조형물이 서귀포의 중심에 우뚝 세워졌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선봉장 역할을 자임했던 이영일씨는 옛 기억에 젖었는지 말을 쉽게 잇지 못했다.

# "저 건물 옥상까지 사람으로 가득 찼어요!"

"대학교 하나 없는 서귀포에서 청년들이 들고 일어났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어요."

당시를 회상하며 그는 천천히 말을 이어나갔다.

"전국의 청년들과 학생들이 나선 시위였지만, 대한민국의 최남단에서도 뜻을 모았다는 것이 큰 의미가 있는 것이거든요."

서귀포에서 나고 자란 그는 육지부에서 대학공부를 배우는 와중에도 고향과의 끈을 놓지 않았다. 소그룹 모임 등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었던 서귀포 서귀포YMCA청년연맹 활동을 꾸준히 동참하면서, 졸업 후 제주로 내려와 회장까지 맡게됐다.

"학교를 다닐때도 다시 제주도로 내려와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방학 기간이나 시간이 나면 고향으로 돌아와 여러 활동을 하고는 했죠."

그러던 중 터질 것이 터졌다.

개회사를 하는 이영일 서귀포6월민주항쟁정신계승사업회장. <헤드라인제주>
'서귀포6월민주항쟁 기념조형물 제막식'에서 "민주주의 만세"를 외치는 참석자들. <헤드라인제주>

1987년 6월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하기 위한 '호헌철폐'과 '독재타도'의 함성이 연일 울려퍼지면서 전국적으로 수백만명의 인파가 몰리기 시작한 것.

가만히 구경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뜻이 같은 동지들과 급하게나마 계획을 세웠고, 그렇게 서귀포도 일어났다.

"아무래도 인원이 적다보니 물리적인 힘을 기르는 것이 중요했어요. 우리들끼리만 나서면 순식간에 제압당할 것이 당연하겠다 싶었죠."

철저한 역할분담으로 뜻이 맞는 이들을 끌어모았다. 당시 함께했던 김창수, 강방수, 오영근, 진희종, 윤춘광, 김경희, 김미리 씨 등은 모두 일당백의 역할을 맡아 거사를 준비했다.

"옛날에는 저기 주차장(서귀포매일올레시장 주차장건물)에 성당이 하나 있었어요. 그 성당의 수녀님이 저희를 숨겨주셨죠. 창고 같이 생긴 건물에 들어가게끔 하고 바깥에서 문을 잠그니 경찰들이 알지 못했어요."

철저하게 경찰의 눈을 피하며 움직이면서 서귀포시 온 동네에 민주항쟁의 뜻을 알리는 전단지를 뿌렸다.

그렇게 물밑작업을 벌여가던 중 마침내 26일이 찾아왔고, 생각치도 못한 1000여명의 인파가 시장광장을 가득 메우는 결실을 보게됐다.

"저쪽에 건물들 보이시죠? 저 건물 옥상에까지 사람들이 가득 들어찼다니까요?" 당시의 기억이 떠올랐는지 살짝 흥분한 모습을 띈다.

"그때 오후 6시에 모이기로 했었는데 약속시간이 되도 성당에 숨어있던 우리가 나타나지 않자 윤춘광 의원님은 다들 잡혀간 줄 알고 혼자 '민주주의 만세'를 외치다 연행됐더라고요."

살짝 장난기어린 미소를 띄며 이야기하는 이영일 씨. 기어코 승리를 쟁취해 냈던 그들에게는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있는 그날의 함성이다.

# 숙원 이룬 6월 민주항쟁의 정신..."앞으로가 더 바쁠거에요"

그 때의 영웅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는 이제 전기회사에 다니며 자녀의 교육을 걱정하는 가장이 됐다.

이에 못지않게 6월 민주항쟁이 의미가 남달랐던 이영일씨는 또 다른 중책을 떠맡고 있다. 이제 그는 서귀포6월민주항쟁정신계승사업회의 회장으로 서귀포의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선봉에 섰다.

25일 함성의 여운이 남아있는 서귀포매일올레시장의 중심에 민주항쟁을 상징하는 기념조형물을 세운 것은 크나큰 의미를 지녔다.

"당시부터 지금까지 전국적으로 민주항쟁이 일어났지만, 그 사건 자체를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조형물은 서귀포가 처음이에요."

기념조형물 앞에서 활짝 미소짓는 이영일 서귀포6월민주항쟁정신계승사업회장. <헤드라인제주>

사건 당시의 열사나 인물에 초점을 맞춘 조형물은 세워졌지만 사건만을 기념한 조형물은 처음이라는 것이다.

"올레1코스의 시작점에서 서귀포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서귀포에도 이런 역사가 있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될겁니다."

숙원이었던 기념조형물 건립까지 마쳤건만 6월민주항쟁계승사업회는 또 다른 발걸음을 내딛기 위해 분주해 질 것 같다.

"앞으로 법인화를 시켜서 서귀포지역의 청년과 청소년들을 육성해야지요. 그들과의 네트워크를 더욱 활성화 시키는 것이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젊은 세대를 기르는 것이 자신들의 몫이라는 설명. 시민들과의 네트워크도 더욱 확장시켜 '대화의 장'을 만들어 나가는 것도 남겨진 과제다.

"이제 서귀포시의 자랑거리가 생겼잖아요." 기념조형물을 보며 활짝 웃음을 띈 이영일씨. 서귀포의 민주화 정신은 쉽게 끊이지 않을 듯 하다. <헤드라인제주>


서귀포6월민주항쟁정신계승사업회는 25일 서귀포 매일올레시장에서 &#039;서귀포6월민주항쟁 기념조형물 제막식&#039;을 가졌다. &lt;헤드라인제주&gt;
서귀포6월민주항쟁정신계승사업회는 25일 서귀포 매일올레시장에서 '서귀포6월민주항쟁 기념조형물 제막식'을 가졌다. <헤드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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