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길' 찾다..."어! 과장님 아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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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길' 찾다..."어! 과장님 아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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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공직퇴임 송중용씨, "길 터주니, 길 보여요"
후진양성 퇴임 후..."이젠 저만의 브랜드를 찾아야죠"

환자들과 그 가족들, 방문객들로 매일 북적이는 제주대학교병원 로비.

꽤 넓은 로비를 가득 메운 사람들 때문에 처음 방문하는 이들은 어디서, 어떻게 접수를 해야하고 어떤 절차를 밟아야 하는지 막막할 때가 있다.

홀로 먼길에 나선 시골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 있어서 병원진료 접수 그 자체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바로 이런 이들을 돕기 위해 로비에는 형광색 조끼를 입은 이들이 항시 대기 중에 있다. 자신의 시간을 쪼개어 봉사활동에 나서는 이들이다.

척 보면 알아본다나. 23일 낮, 자원봉사자 중 한명인 송중용씨(60)는 저만치서 서성거리는 할머니에게 먼저 다가가 살갑게 말을 건넨다.

접수하는 방법을 몰라 헤매던 할머니를 대신해 진료 접수 서류를 작성하고, 한참을 쫓아다니며 진료를 받아야 할 방으로 안내해줬다.

병원 방문객을 돕고있는 송중용씨. <헤드라인제주>
병원 방문객을 돕고있는 송중용씨. <헤드라인제주>

# "사소한 일인 것 같지만 쉽지만은 않더라고요"

송씨는 바로 지난해까지만 하더라도 공직생활을 해왔던 사람이다. 지난해 6월, 제주특별자치도 축정과장으로 재직하던 그는 민선 5기 제주도정 출범을 앞두고 명예퇴임을 했다. 정년을 1년여 남겨둔 시점에서의 결단이었다.

왜 명예퇴임을 결심했는지에 대해 이렇다할 설명도 없이, "후배들에게 길을 터주고 싶다"며 그는 조용히 공직에서 물러났다. 

퇴임 후 한달도 못돼, 그는 '새로운 일거리'를 찾아냈다. 바로 자원봉사 활동이다.

인터뷰를 하면서 환하게 웃고있는 송중용씨. <헤드라인제주>
"놀고 있으면 뭐하나요. 자원봉사는 퇴직하기 전부터 생각하고 있던 것이에요."

삼양교회에서 봉사단에 소속돼 활동하고 있는 그는 매주 월요일 이른 아침부터 오후까지 제주대학교 병원 로비에서 환자들을 안내하는 봉사를 한다.

"사소한 일인 것 같지만 하루에 1500여명의 환자들이 몰려오는데, 이들을 안내하는 것이 쉬운일만은 아니더라고요."

인적사항을 적어야 하는데 글을 쓰지 못하는 분들도 상당수다. 해녀나 고엽제 환자, 국가유공자 등 의료혜택을 받고 있는 사람들도 어떻게 해야할지를 몰라 혜택을 못받는 경우도 부지기수라고.

병원 업무가 세분화 되다보니 봉사대원으로써 환자들의 질문에 제대로 된 답을 해주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성의를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환자들은 연신 고마움을 표한다.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우리도 안내책자를 보면서 안내해주는 형편이에요. 대신 찾아오는 분들이 '어디가 어떻게 아프다', '내 병이 이런데 어떻게 해야 하겠나' 라는 하소연을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그 분들에게는 큰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벌써 10개월째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그는 환자가 아니라 도울 수 있는 입장에서 이 곳에 와있는 것이 감사하다고 말했다. 또 도움을 받는 사람들이 고맙다고 말하는 것에 대해서도 감사하다고 덧붙였다.

매주 금요일에는 제주도립미술관을 찾아가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 "공직에서의 전문성, 별다른 소용은 없더라고요"

그에게 다시 시간을 되돌린 질문을 던졌다. 왜 갑작스럽게 명퇴를 했는지에 대해.

"갑자기 그만두게 됐다던가 속된말로 짤리거나 한 것은 아니니 크게 씁쓸하다던가 하는 것은 없었죠. 다만 이제부터 내 브랜드를 찾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더라고요."

40여년간의 공직생활동안 축산업 관련 업무를 도맡으면서 뚜렷한 성과를 보인 그였다.

송중용씨. <헤드라인제주>
축정과장으로 재직하는 동안 막혀있었던 제주 돼지고기 수출길이 열렸고, 보들결 제주한우 등 축산 브랜드를 구축하는 것에도 일조했다.

말산업 육성법 통과와 세계양돈수의사협회 총회 등 세계적인 대회를 유치하는데도 힘을 기울였다.

그런데, 막상 일을 그만두고 보니 공직에 있을 때의 전문성은 별다른 소용이 없었다고 한다. 자신만의 브랜드를 새로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절실히 하게 된 이유다.

"막상 이야기가 나온김에 이 이야기는 꼭 해야겠네요."

그는 현재 공직에 몸담고 있는 후배들에 대한 칭찬을 이어갔다.

특히 반 평생을 함께 해 온 축산관련 직원들과 단체 사람들에 대해 "이런 사람들이 없다"며 치켜세웠다.

"얼마 전에 전국적으로 구제역이 발생하면서 난리가 났었는데, 후배들이 잘하니까 걱정이 안되더라고요. 다른 부서도 그렇겠지만 축산부서 직원들은 소명의식을 갖고 일을 잘합니다."

그는 전염병이 터졌다 하면 '특근이네, 야근이네' 반복하면서도, 축산부서 직원은 소위 말해 '잔머리'를 굴리는 사람이 없었다고 단언했다.

"축협 등의 각종 협회, 생산자 단체 같은 축산관련 단체들끼리도 아주 단합이 잘돼요. 무슨일이 생기면 일사불란하게 자기 역할을 맡아주죠. 회의 후에 결정된 사항에 대해서는 토를 달지도 않아요."

다른 산업에서도 본받아야 할 점이라고 제언한 그는 FTA 등으로 축산시장이 어려움을 겪는다고들 이야기하지만 제주도 만큼은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공직에서 물러난지 아직 1년이 안되어서 그런지, 그의 마음에는 여전히 공직생활에 대한 기억들로 가득했다.

# "이제, 저만의 브랜드를 찾아봐야지요"

어느덧 환갑의 나이이지만, 아직 하고싶은 것도 많고 이뤄야 할 것도 많은 그였다.

"옛날 같았으면 60이면 끝나는 나이로 보는데 요즘에는 고령화 시대잖아요. 넉넉잡아 80세까지 보면 앞으로 해야할 일이 많겠죠?"

그는 지금 하고있는 봉사활동도 좋지만 전문적으로 남을 도울 수 있는 일을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또 글을 읽고 쓰는 것을 좋아해서 문단에도 등단해보고 싶다는 소망을 드러냈다.

"아직 뚜렷한 계획은 없지만 6개월에서 1년정도 더 탐색을 해보려고요."

굳이 돈을 버는 일을 찾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싶다는 송중용씨.

후배들을 위해 길을 터주고, 새로운 길을 찾았다는 그의 얼굴은 무척이나 밝아 보였다. '새로운 길'에서 그가 찾아나설 '브랜드'는 어떤 것일까. <헤드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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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허 이런... 2011-05-25 14:49:08 | 59.***.***.23
근래에 읽은 기사중 가장 기분좋은 기사입니다. 송중용 과장님이기에 더욱 눈이 가네요. 자원봉사로 나선거 정말 잘한 일입니다. 박수 보내요

고향후배 2011-05-25 12:05:27 | 112.***.***.140
역시, 송중용 과장님은 변함이 없군요....공직생활때도 그렇고, 교회생활도 여전하겠지요? 앞으로도 하시는 일마다 순조롭게 척척 이뤄지시길...


존경하는 이 2011-05-24 23:26:22 | 1.***.***.30
존경스럽습니다 도청에 있을때는 개인적으로 안면틀 기회없었으나 언제나 묵묵히 일하시던 모습 눈에 선합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기죽지마시고 제2의 인생 잘 설계햐가세요

우리의 호프 2011-05-24 21:32:31 | 49.***.***.132
송과장님 화이팅
역시 소신파

송명현 2011-05-24 18:24:43 | 112.***.***.74
어! 우리아방이네?
아빠~힘냅써!!!!!!!!!

반가워요 2011-05-24 13:51:30 | 122.***.***.150
과장님 웃는 얼굴이 너무 좋아 보여요
힘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