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라를 치다", 도서관 문패에 왜 '구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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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라를 치다", 도서관 문패에 왜 '구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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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도서관 문패 '구라(口羅)'의 또다른 탐색
"사상가나 정치지도자들도 사실은 '구라군'이었다"

제주대학교 법정대학 2층에는 전 세계에 하나밖에 없는 '구라도서관(口羅圖書館)'과 '구라학습당'이 있습니다. 동쪽 문으로 들어가면 도서관이고, 서쪽 입구로 들어가면 학습당입니다.

한글로 구라는 흔히 '거짓말'을 대신 쓰는 일종의 비속어지만, 한자로 구라(口羅)는 입에서 술술 쏟아져 나오는 비단처럼 아름다운 말을 의미합니다(고영철의 정의).

영어로는 스토리텔링(Story-Telling)이 됩니다. 일본어로 구라(くら)는 여러 가지 물건이나 귀중한 물품 등을 쌓아두거나 보관하는 곳간이나 창고를 뜻하는 단어입니다.
  
이처럼 구라는 다의적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단어를 도서관 앞에 접두사로 붙인 이유는 세 가지입니다.
 
첫째, 이곳은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의 입을 통해 가장 아름답고 고귀한 진리와 지혜가 담겨 있다고 평가되어 널리 읽혀지고 있는 책(口羅冊)들을 소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책들은 대부분 법정대 교수님과 사회 각계각층 인사들이 기증한 것들이 입니다. 책장의 각 칸마다 누가 어떤 책을 기증했는지 알 수 있도록 ‘아무개의 기증도서 코너’ 라는 표찰이 붙어있습니다.
   
그리고 한쪽에 ‘구라학습당’이라고 문패를 단것은 이곳이 또한 자신의 스토리텔링을 만들기 위해 읽고, 꿈꾸고, 상상하고, 탐색하는 공간이 되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둘째, 당장 눈앞의 이익 때문에 자신을 위장하거나 포장하지 말라, 결국 하늘이 처 놓은 덧에 걸려들게 되어있다는 것을 늘 상기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한 개의 거짓말을 관리하려면 2개의 거짓말이 필요하고 다시 또 4개의 거짓말을 기억해야 된다고 합니다. 한 개의 거짓말이 어떠한 결과를 낳는지, 지난 8월 국회 청문회 테스트(위장전입·부동산 투기·병역기피·세금탈루.논문표절 등)에서 거짓말 탐지기에 걸려 탈락한 장관후보들의 어록(?)을 보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교육의 궁극적 목적은 무엇이 구라(거짓/가짜)이고, 안구라(참)인지, 그리고 어디까지가 구라(口羅)이고 비구라(非口羅)인지를 식별해, 항상 옳은 일을 행하도록 가르치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셋째, 이 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구라이고, 그 힘과 생각은 책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인류역사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에 많은 영향을 미쳤던 성인, 사상가, 문인, 학자 그리고 각 시대의 정치 지도자들도 대부분 입으로 먹고 살았던 위대한 구라군(口羅君)들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범인(凡人)들에 비해 독서량도 많고 미래를 내다보는 통찰력이 뛰어났다는 사실입니다. 현재를 보려면 TV나 컴퓨터 앞에서 마우스나 리모컨을 돌리면 되지만 미래를 보려면 책을 읽어야 합니다.
  
독서는 남의 인생을 살아보는 것이고, 영웅의 꿈을 스캔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구라도서관은 이처럼 영웅들의 꿈과 삶을 전시해 놓은 박물관이면서 이들의 꿈을 파는 백화점입니다.

이곳은 전진할 것인가, 후퇴할 것인가, 싸울 것인가, 아니면 굴복할 것인가, 그리고 가치를 창조할 것인가 아니면 파괴할 것인가를 가르치는 전사의 학습당입니다.

그래서 한쪽에는 ‘구라도서관’, 다른 한쪽에는 ‘구라학습당’이라는 문패를 달았습니다. 
  

제주대학교 법정대학에 문을 연 구라도서관 개관식. <헤드라인제주>
오늘도 안팎이 내다보이는 유리문을 열고 들어서면, 널찍하게 배치된 4인 또는 6인용 책상들에 앉아 뭔가에 몰두하고 있는 학생들을 볼 수 있습니다.

바닥엔 고급스런 색깔의 양탄자가 깔려 있고, 두개의 출입문 양쪽에는 응접실용 스탠드가 문지기처럼 서 있습니다.

창밖을 마주 보게 배치한 테이블위에 자리한 개인독서용 스탠드에서는 툭 건드리기만 해도 은은한 빛이 새어나옵니다.

고영철 제주대 법정대학장. <헤드라인제주>
그리고 도서관 양쪽에 위치한 두 개의 대형 책장에는 약 2천여 권의 책을 비치할 수 있습니다(현재는 약 8백여권). 한쪽 벽에 걸린 대형 세계지도 속의 비단길을 걷다 보면, 세계는 넓고 갈 곳도 많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나는 이곳을 매일 안방처럼 드나드는 단골손님들이 언젠가는 저 수천 권 책 속의 전설적인 인물들이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리고 이곳이 전설적인 영웅 돈키호테 같이 여러분의 꿈을 키우는 인큐베이터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법정대학 구라도서관(口羅圖書館)으로 초청합니다. <고영철 / 제주대학교 법정대학장>

*이 글은 <헤드라인제주>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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