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지스님이 중학교에 다시 입학한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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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지스님이 중학교에 다시 입학한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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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산중 2회 입학생 원경 스님, 40년 만에 재입학
"부처님에 소홀해도, 이해해 주시겠죠?"

18일 오후 서귀포시 성산읍에 위치한 신산중학교 어학실에서 3학년 영어수업이 한창이다.

영어 교사의 질문에 또래 10대 학생들의 목소리와는 다른 '걸걸한' 목소리가 답한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성산읍 고성리 지장암 주지인 원경(圓炅, 58, 속명 정성도) 스님.

또래보다 큰 덩치, 내일 모레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의 얼굴, 삭발머리가 유독 눈에 띄지만, 수업을 듣는 자세 만큼은 누구보다 진지했다.

1971년 신산중 2회로 입학한 그가 40년이 흐른 지금, 중3 교실에 모습을 나타낸 사연은 무엇일까?

원경 스님. <헤드라인제주>
# "어려운 형편에 접어야 했던 학업...40년만에 이뤘죠"

열일곱 살이던 그가 신산중에 재학 중이던 1970년대 당시 대부분 집안의 형편이 어려웠다. 원경 스님의 경우도 다르지 않았다.

"4남5녀를 어머니 혼자 기르셨기 때문에 가정 형편이 어려웠어요. 아버지께서는 국가유공자셨는데 당시에는 전혀 혜택도 받지 못했고요. 어머니가 남의 밭에서 일한 돈으로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는데, 학교에 내야하는 돈을 내지 못해 5월까지만 학교를 다녔습니다. 3학년을 마치지 못했죠."

결국 학업의 뜻을 잠시 접은 그는 곧바로 군에 입대했다. 제대 후에는 포항에서 중장비 자격증을 획득, 오랜 직장생활을 했다.

2006년 태고종립 동방불교대학을 졸업하면서 출가한 원경 스님은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그때까지도 학업에 대한 열망이 남아 있었다.

원경 스님. <헤드라인제주>

"주변에서 검정고시를 권하기도 했어요. 그렇지만 저는 학생들과 함께 공부하고 떳떳하게 졸업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다시 학교의 문을 두드리게 됐습니다."

지금은 작고하신 어머니의 유지도 그를 다시 학교로 이끌었다. 원경 스님의 아버지는 한국전쟁 당시 해병대 3기로 참전했지만 오랫동안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했다.

소송을 거듭한 끝에 그의 아버지는 국가유공자로 인정받게 됐고, 어머니는 '소원을 성취했으니 못 배운 한을 풀라'는 뜻을 남긴 채 2년 전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의 뜻도 있었고, 생활에도 여유가 생기다 보니 다시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 났어요. 공부하고 싶은 의욕이 다시 학교 문을 두드리게 했습니다."

# "부처님에 소홀해도, 이해해주시겠죠?"

원경 스님은 신산중으로부터 재입학 허가를 얻었고, 이날 40년 만에 다시 등교하게 됐다.

새로 맞춘 교복과 절에서 신는 새하얀 고무신이 다소 어색해 보이지만, 이제 그도 어엿한 신산중 60여 명의 학생 중 한 명이다.

"학생들이 친하게 대해줘서 크게 어려움은 없어요. 불교 경전을 읽는 틈틈이 국어나 영어, 수학 등을 혼자 공부해 와 수업도 잘 따라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함께 공부하는 학생들도 '형님'인지, '스님'인지 호칭이 헷갈리긴 하지만, "족구도 잘하고, 친구들에게 잘 해줘서 좋다"며 새 친구를 반겼다.

그런데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불공을 드린다는 원경 스님. 학습과 불경을 병행하는데는 무리가 없을까? "조금 소홀해도 부처님이 이해해주실 것"이라며 활짝 웃는다.

원경 스님이 수업을 받고 있다. <헤드라인제주>
원경 스님. <헤드라인제주>

# "노인복지 전공해 어려운 이웃 도울게요"

원경 스님의 공부 욕심은 현재도, 미래에도, '진행형'이다. 중학교를 졸업하면 제주시내 고등학교로 진학하겠다는 계획이다.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다음에는 대학교도 진학하고, 불교대학원도 가고 싶다"고 말했다.

전공하고 싶은 분야로는 '노인복지'를 꼽았다. 가정 형편이 어렵고, 가진 게 없는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다는 게 그의 꿈이다.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노인복지를 하고 싶어요. 관련 학과를 졸업하면 자격증을 준다내요? 자격증을 따서 없는 사람을 모시고 싶은 게 제 꿈입니다"

학교에서는 친구이자 선배로, 사회에서는 어려운 이웃의 도우미로, 신도들에게는 주지 스님으로 버팀목이 될 앞날이 기대된다. <헤드라인제주>

원경 스님. <헤드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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