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빈자리', 사춘기 큰 딸이 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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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빈자리', 사춘기 큰 딸이 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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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스물두살 임지숙씨가 집안의 가장이 된 사연은?
감당하기 힘들었던 시간...그러나 '척척'...복지부장관 '효행상' 수상

5년 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그때 임지숙씨(22. 서귀포시 상효동)의 나이가 17살.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오랜 지병 끝에 돌아가신 아버지였으나, 그 빈공간은 너무나 컸다. 어머니 또한 몸이 좋지 않아 병원신세를 지고 있었다. 할머니는 연로하셨다.

어린 두 동생을 포함해 6식구가 먹고 살 길은 정말 막막했다.

누군가 가장의 역할을 해야 하는 상황. 아직 사춘기의 티를 벗지 못했던 17살 소녀는 그 때부터 가장의 역할을 부여받고 있었다.

제39회 어버이날 보건복지부 장관 '효행자'상을 수상한 임지숙씨. <헤드라인제주>

그 뒤로 5년, 지숙씨의 일상 생활이 제주사회에서 '효행'으로 알려졌다. 그가 해낸 것이다. 

지난 6일 서귀포 88올림픽 기념생활관에서 열린 제39회 어버이날 기념행사에서 지숙씨는 '효행자'상(보건복지부 장관 표창)을 수상했다.

7일 오후 서귀포시 상효동 모처에서 만난 그는 "기대도 안했는데 이런 상을 받게 돼 놀랐다"며 눈을 휘둥그레 떴다.

지난 2007년까지만 해도 지숙씨는 여느 또래와 다를 것 없는 첫째딸이었다. 두 살, 여덟 살 아래의 여동생들과 아웅다웅하며 지내던 평범한 10대 소녀였다.

고등학교 3학년을 앞둬 진로를 설정해야 하는 고2때, 아버지는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힘들었어요. 아버지가 더 이상 곁에 계시지 않는다는 생각에 며칠을 울었어요."

6식구가 먹고 살길은 정말 막막했다. 대입을 준비하면서 투정을 부릴만도 했지만, 지숙씨에게는 그런 여유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집안일은 동생들과 함께 맡아 꾸려나가야 했다. 이때부터 지숙씨의 일상생활도 달라졌다. 학교에 가기 전에 식사를 준비하는 것은 물론, 집안 청소 등은 모두 세 딸의 몫이 됐다.

몸이 불편한 어머니와 연로한 할머니, 지체장애를 안고 있는 삼촌의 수발을 드는 일도 큰 일이었다.  아직 나이가 어린 동생들에게도 엄하게 대할 수밖에 없는 현실.

하지만 그에게는 '가족'이라는 버팀목이 있었다.

"힘들었지만, 나 혼자만 힘든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가족들이 함께 있으니까 힘을 낼 수 있었어요. 친구들이 큰 힘이 돼 줬고, 동생들도 저를 잘 따라줘서 늘 고마워요."

밝은 모습으로 인터뷰에 응하고 있는 임지숙씨. <헤드라인제주>

가족이란 힘으로 마음은 위안받을 수 있지만, 생계를 꾸려나가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기초생활수급 대상자로 행정기관에서 지원받는 생활비로는 두 동생과 자신의 생활비로는 턱없이 부족했을 터였다.

다행히 지숙씨의 문제는 스스로 해결했다. 2009년 제주관광대학 유아교육과에 입학한 그는 학비문제는 성적 우수 장학금으로 해결했다. 

저녁에는 매일같이 아르바이트를 했다고 한다. 방학 때에도 누구보다 바쁘다. 행정인턴까지, 안해본 일이 없을 정도다. 이러면서 병석에 있는 어머니와 거동이 불편한 삼촌, 팔순이 된 할머니까지 극진히 모시며 가정을 꾸려나갔다.

이제 졸업반인 지숙씨.

지난달부터 서귀포시내 한 유치원에서 실습 과정을 밟고 있다. 졸업 후 유치원 선생님이 되는게 그의 꿈이다.

"아이들이 좋아서 이 길을 택했어요. 실습이 생각만큼 쉽지 않아 매일매일 녹초가 돼서 집에 돌아오지만, 아이들을 볼 때면 너무 즐거워요."

유치원 아이들 이야기를 하던 내내  웃음을 잃지 않았다. 힘든 생활 속에서도 그를 지탱하게 한 바로 그 웃음이었다.

"대학에 입학했을 때 무표정하게 앉아 있으면 주위 사람들이 무섭게 보인다는 말을 많이 했어요. 그 뒤로 더 자주, 많이 웃게 된 것 같아요. 웃으면서 평범하게 살겠다는 마음만 먹으면 행복하게 살 수 있으니까요."

웃음의 힘이었을까. 웃음을 잃지 않고 늘 열심이던 지숙씨는 강의시간 중 발표을 독차지했고, 성적우수 장학금도 받았다.

졸업 후 '엄마 같은 선생님'이 되고 싶다던 그는 "혹시나 유치원 아이들이 저를 진짜 엄마로 착각해 버리면 어쩌죠?"라며 웃어보였다.

임지숙씨. <헤드라인제주>
이번 어버이날에 뜻하지 않은 효행자상을 수상하게 된 것에 대해 그는 부끄러움이 더 많다.

수상소감을 묻자 멋쩍은 듯한 웃음을 지으며 손사래를 쳤다.

"상을 준다고 했을 때 기대도 안했던 터라 매우 놀랐어요. 저보다 더 어려운 사람도 있을텐데 왜 저에게 상을 준 것인지 잘 모르겠어요."

지숙씨는 자신들보다는 더 어려운이 이웃이 많고, 오히려 그들에게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했다.

"저보다 더 어려운 이웃들도 아직 많아요. 이렇게 상을 준다거나 할때만 관심을 갖는게 아니라, 어려운 이웃들에게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도움이 필요하면 손을 내밀어야 하지 않을까요?"

지숙씨의 이러한 고운 마음이 '효행자 상'을 받은 진짜 이유가 아니었을까. <헤드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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