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초를 겪은 '두 여인'을 만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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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초를 겪은 '두 여인'을 만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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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훈 시인이 시(詩)로 전하는 세상살이 이야기] (13) 두 여인

두 여인을 만났습니다. 일본에 살고 있는 두 여인을 만났습니다. 지난 4월 16일과 17일에 일본 도쿄와 오사카에서 4.3위령제가 열렸는데요, 거기서 두 여인을 만났습니다. 모두 제주4.3을 겪고 일본으로 밀항해서 지금까지 살아오고 있는 분들입니다. 한 분은 입산入山 활동을 했던 분이고, 또 한 분은 입산활동을 한 가족 때문에 모진 고초를 겪으신 분입니다.

지난 2007년 무작정 일본으로 가서 이 두 여인을 처음으로 만났습니다. 두 여인은 생면부지(生面不知)의 낯선 저를 경계하지 않고 많은 얘기를 해주셨습니다. 저의 생긴 꼬라지가 남에게 해를 가할 위인이 아니란 걸 바로 파악하셨나 봅니다. 그 이후 제주와 일본에서 기회가 닿는대로 만나면서 4.3얘기를 계속 들을 수 있었습니다.

 억새밭 속에서 우리는 싸웠다
 그 질긴 뿌리로 이어진
 제주민들의 연대는
 하얀 봉화 같은 꽃으로 타올랐다

 무수한 인민들이 뭇별이 지듯
 그렇게 죽어갔지만

 해가 뜨면 다시 돋아나는 해바라기 꽃처럼
 온 벌판을 태워도 기어이 다시 태어나는 진초록 억새처럼

 캄캄한 먹밤이 깊을수록
 억새의 그늘, 깊은 어둠만을 골라 딛는 빨치산에게
 아침 해는 내일의 찬란한 기약

 너른 억새밭 위로 솟는 해를 그리며
 우리는 인민들 위해 싸우다
 억새꽃 흩날리듯 별이 되어 사라져갔다
  -졸시, '억새와 해바라기 -김동일 할머니' 전문

올해 나이 일흔아홉의 김동일 할머니는 조천리 항일운동가 김순탁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조천중학원에 다니다가 한라산에 입산해서 빨치산활동을 하다가 검거됩니다. 석방된 이후 지리산으로 가서 빨치산 활동을 하다가 다시 검거된 이후 수형생활을 마치고 1958년 일본으로 밀항합니다. 이후 지금까지 도쿄에서 도시락 가게를 운영하며 살고 있습니다.

도쿄에 있는 그녀의 도시락 가게엔 해바라기꽃과 억새가 늘 화병에 꽂혀 있습니다. ‘해가 뜨면 다시 돋아나는 해바라기 꽃처럼, 온 벌판을 태워도 기어이 다시 태어나는 진초록 억새처럼’ 제주4.3은 그녀의 곁에 언제나 함께 합니다. 해바라기 씨 서너 봉지를 저에게 쥐어주며 고향에 심어달라고 했습니다. 그녀의 염원대로 제주4.3평화공원 남쪽 기슭에 해바라기 꽃이 피었습니다.

 억울한 죽엄을
 슬퍼마세요
 아--- 한 방울의 이슬은
 피가 되어
 영원히, 영원히 4.3을
 빛내리!!
  -김동일 할머니의 자작시

도쿄에서 만난 할머니는 저에게 "내가 한 일에 대해 후회하지 않아. 나라를 찾는다는 생각으로 한 일이니까.”라고 말합니다. 또 현재의 4.3정세에 대해서는 “제주4.3에 대해 다들 너무 안이하게 활동하고 있다. 이제부터가 새로운 4.3투쟁의 시작이라는 자세로 좀 더 힘있게 나아가야 한다!”고 힘주어 말합니다.

일본 오사카 한인시장 골목. <헤드라인제주>

일본 오사카 한인시장 골목. 이복숙 할머니의 가게 ‘에덴찻집’이 멀리 보입니다

이복숙 할머니는 1936년 조천읍 신촌리에서 태어났습니다. 해방 후 부친은 신촌리에 국민학교와 중학교를 지었습니다. 4·3당시 무장대 사령관을 지낸 작은아버지 이덕구로 인해 일가친척 26명이 희생을 당했습니다. 1956년경 도망치듯 일본으로 밀항해서 지금까지 오사카 이쿠노구에서 찻집을 운영하며 살고 있습니다.

2007년 오사카에서 처음 뵐 때, “오늘까지 어떻게 살아 왔는가를 누군가에게 말하기는커녕 생각조차 하기 싫다”고 했지만, ‘겪은 일을 전해야 하는 일이 살아남은 자의 몫’이라는 생각에 많은 이야기를 풀어냈습니다. 이덕구의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겪어야 했던 모진 수모와 고통은 제주에서뿐만 아니라 일본에서도 계속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살암시민 살아진다’고 이 악물고 세상을 헤쳐와 이제는 ‘대통령 부럽지 않은 생활을 한다’고 환하게 웃습니다.

그녀는 2008년에 도일 이후 처음으로 고향에 가서 가족묘지를 만들었습니다. “제주 방문길에 친정 조상들을 위해 굿도 하고 비석도 세울 수 있어서 한 시름 놓였다.”며 “이칩의(이씨 집의) 아들이 하나도 없어서 내가 딸이지만 가족들의 넋을 진혼할 수 있어 이제 여한이 없다”고 말을 합니다. ‘비록 이번 제주국제공항 4.3유해발굴사업에서 오빠의 유해를 찾지는 못했지만 오빠가 항상 나를 지켜주고 계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단지 이덕구의 가족이라는 이유 때문에 죽어가야 했던 가족들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또한 그들의 극락왕생을 빌며 묘를 한 자리에 모아놓는 수고로움 속에는 애틋한 정과 절박한 그 무엇이 뒤섞여 있습니다. 밀항으로 일본에 간 지 ‘51년만에 다시 찾은 제주도는 더 이상 죽음의 땅이 아니었고, 아버지가 학교를 지을 때 심었던 소나무가 지금도 잘 자라고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4.3으로 인해 일가친척들이 희생당하고 살아남은 친척들은 제주도와 일본, 그리고 북한과 미국에 걸쳐 제각각 흩어져있는 가족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픕니다. 오랜 기간을 생이별하고 있는 친척들을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없다는 그 오랜 고통의 이산의 역사가 가슴에 박혀 있습니다. 그 앙금이 암癌으로 자라 요즘 힘든 투병생활을 하고 있어 저의 가슴을 아리게 합니다.

김동일 할머니를 생각하며 몇 해째 제주4.3공원이나 북촌 너븐숭이4.3기념관에 해바라기씨를 심습니다. 너른 억새밭 위로 아침 해가 찬란히 솟구치는 광경을 그려 봅니다. 이복숙 할머니를 생각하며 그의 가족묘를 둘러 봅니다. 죽어서야 이렇게 다시 한 자리에서 만나지 않고 살아서 식구들 모두를 만나게 되길 빌어 봅니다.

김경훈 시인이 시(詩)로 전하는 세상살이 이야기는...

   
김경훈 객원필진.<헤드라인제주>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4.3이야기, 현시대의 시사문제, 책을 읽은 후의 느낌, 삶의 의미과 가치에 대한 생각 등을 시(詩)를 통해 세상을 들여다봅니다.

 프로필.

1962년 제주에서 태어났고 제주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시집으로 「운동부족」, 「한라산의 겨울」, 「고운 아이 다 죽고」,「삼돌이네집」, 「눈물 밥 한숨 잉걸」이 있고 마당극대본집으로 「살짜기옵서예」가 있다. 

제주 4.3 일본어 시집 「불복종의 한라산」도 최근 출간했다.  

제주MBC 라디오 제주4.3 드라마 10부작「한라산」을 집필했다.

제주4.3 연구서인 「잃어버린 마을을 찾아서」와 「그늘 속의 4.3」, 「무덤에서 살아나온 4.3수형인들」을 공동집필했다.
현재 제주4.3사업소에서 일하고 있다.  <헤드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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