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천 할머니, 이젠 외롭지 않으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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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천 할머니, 이젠 외롭지 않으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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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아영 할머니 삶터에 이어진 발길, '봄단장'

한 여자가 울담 아래 쪼그려 있네

손바닥 선인장처럼 앉아 있네
희다 흰 무명천 턱을 싸맨 채

울음이 소리가 되고 소리가 울음이 되는
그녀, 끅끅 목젖의 음운 나는 알 수 없네
가슴뼈로 후둑이는 그녀의 울음 난 알 수 없네
무자년 그 날, 살려고 후다닥 내달린 밭담 안에서
누가 날렸는지 모름 날카로운 한발에
송두리째 날아가 버린 턱

당해보지 않은 나는 알 수가 없네
그 고통 속에 허구한 밤 뒤채이는
어둠을 본 적 없는 나는 알 수 없네

링거를 맞지 않고는 잠들 수 없는 그녀 몸의 소리를
모든 말은 부호처럼 날아가 비명횡사하고
모든 꿈은 먼 바다로 가 꽂히고

어둠이 깊을 수록 통증은 깊어지네
홀로 헛것들과 싸우며 새벽을 기다리던
그래 본 적 없는 나는 그 깊은 고통을 진정 알 갈이 없네
그녀 딛는 곳마다 헛디는 말들을 알 수 있다고
바다 새가 꾸륵대고 있네

지금 대명천지 훌훌 자물쇠 베롱한 세상
한 세상 왔다지만 꽁꽁 자물쇠채운 문전에서
한 여자가 슬픈 눈 버린 저녁놀에 얼굴 묻네
오늘도 희다흰 무명천 받치고 울담 아래 앉아 있네
한 여자가.

-무명천 할머니 / 허영선 시인


'무명천 할머니'라는 별칭이 따라붙는 진아영 할머니의 생전 모습. <헤드라인제주>
4.3의 광풍 속에서 턱을 잃고 무명천으로 얼굴을 감싸 한평생 슬픈 삶을 살다 2004년 9월8일 세상을 떠난 故 진아영 할머니(1914-2004년).

1949년 1월, 35살의 나이에 당시 북제주군 한경면 판포리 집 앞에서 경찰이 무장대로 오인해 발사한 총탄에 턱을 맞고 쓰러진 뒤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졌다.

목숨은 부지했으나 턱을 잃어 무명천으로 턱을 감싸고 한평생을 살아야 했던 진 할머니. 그래서 그를 '무명천 할머니'라 불렀다.

말을 할 수도 없고 음식도 제대로 먹을 수도 없었다. 단 한번도 밥을 먹는 모습을 남에게 보인 적이 없다고 한다.

상처를 입은 후, 하얀 무명천으로 턱을 감싼 채 55년을 외롭고 고통스러운 삶을 살다 타계했다. 

그리고 7년이 지난 2011년 3월26일 아침.

제주시 한경면 월령리의 생가에는 따스한 봄기운과 함께 손님들을 반기고 있었다.

담장에 새겨진 '무명천 할머니 삶터'라는 표지석이 제일 먼저 손님들을 맞는다.

진아영 할머니의 삶터. <헤드라인제주>
진아영 할머니 삶터에 도착한 자원봉사자들. <헤드라인제주>
제주주민자치연대와 월령리 주민들이 4.3후유장애인의 상징인 진아영 할머니를 영원히 기억하고자 구성한 '진아영 할머니 삶터 보존위원회'(공동대표 배기철)에서 봉사활동을 하러 나온 것이다.

제주주민자치연대 회원들과 자원봉사 중.고교생과 어린이들도 함께 했다.

진아영 할머니 생가에 내걸린 문패. <헤드라인제주>
생가는 진 할머니가 살았던 당시 모습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자그마한 마당에 8평 남짓한 스레트집은 방 1칸과 부엌칸으로 돼 있다. 방에는 할머니가 생전에 사용했던 옷가지와 이불장 등이 그대로 보전돼 있다. 부엌 역시 옛 모습 그대로다.

2008년, 삶터 보존위원회가 자체 모금을 통해 비가 새던 천장의 방수공사를 하고 도배도 새로 하고 하면서 옛 모습을 보전하고 있는 것이다.

마당 한켠의 수도꼭지에서는 금방이라도 할머니의 손길이 미칠 듯, 물이 준비되고, 전기시설이 돼 있다.

어느 것 하나 버릴 것 없이 깔끔하고 곱게 정돈된 물건들은 할머니가 가슴 속 깊이 묻고 살아왔던 세월을 보는 듯 했다.

'무명천 할머니'라는 별칭이 따라붙는 진아영 할머니의 생가. <헤드라인제주>
'무명천 할머니'라는 별칭이 따라붙는 진아영 할머니의 생가. <헤드라인제주>
'무명천 할머니'라는 별칭이 따라붙는 진아영 할머니의 생가. <헤드라인제주>
작은 공간이지만 할머니가 머물렀던 방에는 할머니를 기리기 위해 제작된 다큐멘터리를 상영할 수 있는 작은 텔레비전 한대와 DVD가 마련된 것이 삶터 보전운동 과정에서 추가된 것이다.

자원봉사자팀이 도착하고 이번 행사를 기획한 양창용 제주주민자치연대 볼런티어 센터장.

집에 도착해 한번 둘러본 후 자원봉사자들에게 오늘 할 일에 대한 주문이 이어진다.

"두달에 한번꼴로 삶터를 방문해 집안을 정리하고 있지만, 봄이 되면서 마당 잔디밭에 잡초들이 많이 돋았네요. 특히 쑥이 군데군데 많이 나 있는데 그것부터 제거하고 봄 단장을 하도록 합시다."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마당을 예쁘게 가꾸는 일이 시작됐다. 회원들과 자녀, 그리고 함께 참가한 중.고교 자원봉사자들의 손놀림도 바빠졌다.

한시간쯤 해서 잡초제거가 마무리되자, 이번에는 봄꽃을 심는 작업이 시작됐다. 준비해온 봄꽃은 아자리아와 금잔화, 철쭉, 데이지, 수선화 5종.

꽃은 자원봉사활동이 있을 때면 남편과 자녀들까지 데리고 매번 참석하는 박외순씨(제주주민자치연대 조직위원장)가 준비를 해왔다. 마당 주변에 땅을 일궈 꽃을 심는 모습이 한두번 해본 솜씨가 아니다.

"4.3의 후유장애인의 상징이자, 산증인이라 할 수 있는 무명천 할머니의 삶터는 화려하지 않지만 옛 모습 그대로 보존하면서 산교육장이 되게 끔 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죠."

진아영 할머니의 삶터 단장을 위해 분주히 작업하는 자원봉사자들. <헤드라인제주>
진아영 할머니의 삶터 단장을 위해 분주히 작업하는 자원봉사자들. <헤드라인제주>
진아영 할머니의 삶터 단장을 위해 분주히 작업하는 자원봉사자들. <헤드라인제주>
진아영 할머니의 삶터 단장을 위해 분주히 작업하는 자원봉사자들. <헤드라인제주>
진아영 할머니의 삶터 단장을 위해 분주히 작업하는 자원봉사자들. <헤드라인제주>
진아영 할머니 삶터 마당에 심어지는 꽃들. <헤드라인제주>
진아영 할머니의 삶터 단장을 위해 분주히 작업하는 자원봉사자들. <헤드라인제주>
진아영 할머니의 삶터 단장을 위해 분주히 작업하는 자원봉사자들. <헤드라인제주>
진아영 할머니의 삶터 단장을 위해 분주히 작업하는 자원봉사자들. <헤드라인제주>
무명천 할머니 삶터를 찾은 자원봉사자들이 집안청소를 하고 있다. <헤드라인제주>
진아영 할머니의 삶터 단장을 위해 분주히 작업하는 자원봉사자들. <헤드라인제주>
진아영 할머니의 생가의 방안이 깨끗하게 청소되고 있다. <헤드라인제주>
'무명천 할머니'라는 별칭이 따라붙는 진아영 할머니의 생가. <헤드라인제주>
진아영 할머니의 삶터 단장을 위해 분주히 작업하는 자원봉사자들. <헤드라인제주>
진아영 할머니의 삶터 단장을 위해 분주히 작업하는 자원봉사자들. <헤드라인제주>
문선예 학생과 김소리 학생. <헤드라인제주>
마당을 예쁘게 가꾸는 일이 끝나자, 이번에는 배기철 대표 가족을 중심으로 해 문의 창호지를 새로 바르는 작업이 시작됐다. 그의 고등학생 아들이 한껏 도왔다.

방 바닥을 닦고 부엌을 정리하는 일은 자원봉사자로 참여한 문선예 학생과 김소리 학생(중앙여고)이 맡았다.

"꼭 사람이 계속 살았던 기분이 들어요. 이불도 가지런히 그대로 있고, 사진 액자하며, 부엌의 그릇들, 방 한켠이 요강까지도..."

집단장이 어느정도 마무리되자, 생가는 훨씬 생기가 돌았다.

할머니가 세상을 떠난지 7년이 지났어도 집은 사람이 살고 있는 듯 정결하게 유지되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러한 노력이 곁들여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08년만 하더라도 어려움은 많았다. 당시 삶터보존운동을 주도했었던 고성환씨.

"처음엔 정말 해야 할 일이 많았죠. 집에는 비가 새고 있었고, 그대로 놔둔다면 흉가가 될게 뻔했어요. 월령리 주민들과 뜻을 모은 후 작은 정성들이 이어졌습니다. 각 자의 재주만큼 힘을 보탰어요. 방수공사도 방수재주를 가진 회원의 노력봉사로 했고, 벽지단장도 회원의 노력이 더해졌죠.

"한땀 한땀 수를 놓아가면서 지금의 할머니 삶터를 단장됐다"그는 "주말마다 시간을 쪼개 월령리 할머니 집을 찾아 나선 희망의 발길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올 한해 삶터 보존사업의 방향을 구상 중인 양창용 센터장.

"오늘 자원봉사활동을 계기로 해 다음달 4.3순례기행을 통해 다시 들를 예정이구요, 올해에는 두달에 한번꼴로 해서 6번정도는 집단장을 할 생각이에요."

진 할머니의 기일인 9월8일에는 마을 어른들과 함께하는 추모행사도 구상 중이라고 했다.

삶터는 언제나 개방돼 있다. 문을 잠궈두지 않기 때문에 4.3순례에 나선 이들의 발길도 이어진다. 마을 분들도 시간이 나면 집을 둘러보고 간다.

두달에 한번 집단장을 하더라도 삶터에 생기가 넘쳐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진아영 할머니 삶터 봉사활동에 참여한 자원봉사자들. <헤드라인제주>
집단장을 마친 후 발길을 돌리는 배기철 대표는 큰 시름을 던 표정이다.

"날이 따뜻해지면서 이곳을 찾는 이들이 많을 텐데, 오늘 모처럼 새단장을 하게 돼 마음이 놓인다"는 그는 4.3의 아픔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진아영 할머니 삶터가 산교육장으로 소중하게 활용되었으면 한다는 바람을 피력했다.

살아서 수없는 고통을 받아야 했던 진아영 할머니, 그의 삶터는 이젠 외로워 보이지 않는다. <헤드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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