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날' 스러진 아버지..."따뜻한 곳에서 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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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날' 스러진 아버지..."따뜻한 곳에서 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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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4.3유족회, '행방불명 발굴유해 봉안식' 394구 안치
김홍순씨의 '시린 기억'..."유해라도 찾아 다행이에요"

"뒤늦게나마 유해라도 찾을 수 있어서 감사한 일이지만, 제게 4.3은 너무나 밉고 원망스러운 일이에요. 정말 원망스러워요."

지난 2006년부터 진행된 4.3 희생자 유해발굴사업으로 아버지의 유골을 찾게된 김홍순씨(67).

그에게 4.3은 여전히 진행 중인 아픔의 연속이었다. 반세기를 훌쩍 지난 과거의 일이라는 사람도 있지만, 그는 오늘에야 아버지의 유해를 부여안고 울음을 터뜨렸다. 꼭 63년만에 장례식을 치르게 된 것이다.

26일 오전 10시 제주4.3평화공원 봉안관에서 열린'4.3행방불명인 발굴유해 영령봉안식'에 참석한 그는 흐르는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26일 '4.3행방불명인 발굴유해 영령봉안식'에서 제를 올리는 김홍순 씨. <헤드라인제주>
26일 제주4.3평화공원 봉안관에서 열린 4.3행방불명인 발굴유해 영령봉안식. <헤드라인제주>

"4.3은 제가 3살때 일어났어요. 제대로 기억조차 나지 않는 일이죠."

어떻게 된 일인지, 아버지가 도대체 무슨 잘못을 했는지, 아무도 그 이유는 모른다. 다만 당시 무고한 학살이 이어졌고, 집단 학살 중 아버지가 포함됐다는 것만 알 수 있을 뿐이다.

지금 남아있는 기록들 조차 진실을 말해주지 못하고 있다.

기억조차 없는 3살 때 아버지를 떠나보내야 했던 그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했다. 

"21살때 집을 나가신 이후 단 한번도 뵌 적이 없어요. 어머니의 말로는 그 맘때쯤 '사상' 이야기를 하는 친구들이 아버지를 자꾸 찾아왔다고 하더라고요."

갑자기 사라진 아버지, 총을 멘 이들은 매일 집으로 찾아와 그녀의 어머니와 할머니를 때리고 고문하는 일상이 이어졌다.

결국 어머니는 그 후유증 때문에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고된 농삿일과 바느질로 연명하면서 평생을 살았다고 했다.

아버지는 이유도 모른채 한 무리의 사람들과 현재 제주공항이 있는 터에서 총살을 당했다.

집단학살된채 매장된 이 일은 오랜 세월이 지나도록 거론되는 것조차 금기시됐다. 그러다가 4.3특별법이 제정되면서 2003년 4.3진상조사보고서가 채택됐다. 뒤이은 공권력에 의해 무고한 주민이 희생당한데 대한 대통령의 사과 등이 이어지면서 마침내 오랫동안 묻혀있던 유해발굴사업이 시작됐다.

처음 제주공항에서 유해가 발굴됐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혹시나 하는 마음이 컸다. 제주공항 인근 어딘가에 묻혀 있을 것이란 생각은 해왔지만, 아버지의 유해라고 단정지을만한 것이 남아있을리 없었기 때문이다.

DNA 검사 등을 거쳐 마침내 아버지의 유해가 확인됐다. 세살 때 떠나보내야 했던 아버지를 63년만에 만난 것이다. 

4.3을 입밖에 꺼내는 것 조차 금기시하는 잔혹한 시간이 오래도록 지속되면서 그의 마음 속 한켠에는 당시 상황에 대한 아픈 기억과 함께, 홀로 떠났던 아버지에 대한 원망도 남아있었다.

봉안식에 참석한 김홍순씨. <헤드라인제주>
봉안식에 참석한 김홍순씨. <헤드라인제주>

"유해라도 이곳에 모셨으니 다행"이라며 연신 눈물을 훔쳤다. "아버지가 살아계셨더라면 84세쯤 됐겠네요. 아직도 비슷한 나이에 정정한 분들을 보면 아버지 생각이 나요."

저마다의 사정은 다르겠지만, 비슷한 심정이리라. 이날 모인 수백명의 유족들은 억울하게 죽어 간 원혼들을 달래고, 영면을 빌었다.

정부의 4.3진상보고서를 바탕으로 진행한 희생자 유해발굴사업은 2006년 1단계 화북지역, 2007년 2단계 1차로 제주공항 서북측, 2008년 2단계 2차로 제주공항 동북측, 3단계로 남원읍 태흥리 지역에서 조사가 이뤄졌다.

이를 통해 화북지역에서 11구, 공항 서북측에서 123구, 공항 동북측에서 261구, 태흥리에서 1구 등 총 396구가 발굴됐고, DNA감식까지 거친 결과 총 71구의 신원이 확인됐다.

26일 제주4.3평화공원 봉안관에서 열린 4.3행방불명인 발굴유해 영령봉안식. <헤드라인제주>
숙연한 표정의 유족들. <헤드라인제주>
숙연한 표정의 유족들. <헤드라인제주>

이날 제주4.3유족회는 발굴된 유해 396구 중 유족에게 인계된 2구의 유해를 제외한 394구를 제주4.3평화공원 내 봉안관에 안치하고, 봉안식을 올렸다.

봉안식에는 우근민 제주도지사를 비롯 문대림 제주도의회 의장, 양성언 제주도교육감, 강창일 국회의원, 홍성수 4.3희생자유족회장, 장정언 4.3평화재단 이사장 등이 참석했다.

봉안관 내부에는 유족들의 유골함이 안치돼 있었다. 신원이 확인한 이들에게는 이름이 붙여졌지만, 아직 확인되지 않은 유해는 감식이 가능하도록 확인번호가 붙어 있었다.

홍성수 4.3유족회장은 "4.3이 발생한지 63년이 지난 오늘 이 시간은 매우 뜻깊은 시간"이라며 "아직도 가슴이 시리지만 비통한 마음을 억누르고 원혼들의 명복을 빈다"고 말했다.

이어 우근민 제주도지사는 "다각도의 노력으로 유해를 발굴해 이제라도 편히 모시게 됐지만, 기쁘기보다는 안타까움이 앞선다"며 "행방불명된 희생자들에 대한 조사가 꾸준히 이뤄지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조사에 이어 봉안식에 참석한 유족들과 관계자는 애통한 심정으로 헌화와 분향을 했다.

원혼들의 영면을 비는 제주도의회 의원들. <헤드라인제주>
숙연한 표정의 유족들. <헤드라인제주>

봉안관을 나가기 전 아버지에게 헌화를 한 김홍순씨는 "그나마 아버지의 유해라도 찾을 수 있게 돼 너무 다행"이라며 "아직 유해조차 찾지 못한 사람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이날 봉안식은 유해라도 찾게돼 다행이라는 마음과 비통하게 운명을 달리 한 원혼들의 대한 안타까움이 공존하고 있었다. <헤드라인제주>

봉안관에 안치된 유골함. <헤드라인제주>
26일 제주4.3평화공원 봉안관에서 열린 4.3행방불명인 발굴유해 영령봉안식. <헤드라인제주>

헌화하는 유족들. <헤드라인제주>
헌화하는 우근민 제주도지사. <헤드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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