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은 '좌익 세력' 때문?, 교과서 '역사관 왜곡' 심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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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은 '좌익 세력' 때문?, 교과서 '역사관 왜곡' 심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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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 근.현대사 교과서, "4.3사건은 공산주의자 때문에 발발"
4.3 관련 단체 "말도 안되는 이야기, 특별법 규정대로 바뀌어야"

제주4.3사건 제63주기가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4.3사건이 발발한지 반세기가 지나고 대통령의 공식 사과에 이어 정부 차원의 진상조사보고서까지 나왔으나, '4.3의 왜곡'은 끊이지 않고 있다.

왜곡된 정보들이 제주도내 학생들의 교과서로 사용되고 있어, 자칫 잘못된 '4.3 역사관'을 심어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현재 제주도내 고등학교에서 쓰이고 있는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 6종을 비교, 분석해 본 결과 일부 교과서는 4.3사건의 발단을 '공산주의자', '좌익 세력'으로 표기하고 있다.

학교 현장에서 쓰이고 있는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 <헤드라인제주>
J출판사 근.현대사 교과서의 4.3사건 관련 부분. <헤드라인제주>

J출판사에 펴낸 교과서에는 '1948년 4월에 제주도에서 공산주의자들이 남한의 5.10 총선거를 방해하고자 소요 사건을 일으켰다'고 적혀 있다.

D출판사의 근.현대사 교과서는 '대한민국 정부의 수립을 전후해 대규모의 유혈 사태가 잇따라 발생하였다. 제주도 4.3사건의 배경에는 남한 단독 정부 수립을 반대하는 좌익 세력의 활동, 군정 경찰과 서북 청년단에 대한 반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적시하고 있다.

G출판사의 경우 '4월3일 단독 정부 수립 반대와 미군의 즉시 철수 등을 주장하는 제주도의 공산주의자와 일부 주민들은 무장 봉기하여, 도내의 관광서와 경찰지서를 습격하였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M출판사도 '5.10 총선거를 둘러싸고 좌.우 세력이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는 상황에서 4월3일 500명 가량의 좌익 세력은 단독 선거 저지를 통한 통일 국가 수립, 그리고 경찰과 극우 세력의 탄압에 저항한다는 명분을 내걸고 경찰 지서와 서북 청년회 등의 우익 단체들을 습격하였다'는 내용을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교과서들이 학교 현장에서 실제 수업에 사용되고 있다는 점. 제주도교육청 관계자는 "현재 사용되고 있는 근.현대사 교과서는 2002년 교육과학기술부의 검정을 받은 것으로, 7차 교육과정에서 쓰이고 있다"고 말했다.

M출판사 근.현대사 교과서의 4.3사건 관련 부분. <헤드라인제주>

지난 2000년 국회를 통과한 '제주 4ㆍ3사건 진상 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은 4.3사건을 '1947년 3월1일을 기점으로 해 1948년 4월3일 발생한 소요사태 및 1954년 9월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충돌과 진압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즉, 국가공권력에 의해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임을 분명히 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4.3특별법이 제주4.3사건에 대한 '좌.우 세력' 등의 용어 사용을 배재하고 있고, 정부가 2003년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까지 확정했지만, 아직까지도 왜곡된 정보가 혼용되고 있다.

이에대해 제주도내 4.3관련 단체들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일제히 성토했다.

홍성수 4.3희생자 유족회장은 "4.3사건이 공산주의자에 의한 것이라면 우리 조상들이 모두 공산주의자라는 말이냐"며 말도 안되는 이야기라고 일축했다.

김관후 유족회 사무국장도 "교과서 선정에 일부 세력들이 가세하면서 잘못된 정보가 담겼는데, 4.3진상보고서에 나온 내용대로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창후 제주4.3연구소장도 "공산주의자나 좌익 세력이라는 표현은 학생들이 배우는 교과서에 있어서는 안될 말"이라고 강조했다.

4.3사건의 완전한 해결을 위해서는 요즘 젊은세대들의 역할이 크다는 점에서, 왜곡된 정보를 바로잡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헤드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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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햇살 2011-03-29 11:29:18 | 119.***.***.162
결국 4.3의 마무리는 57년에 되었지만, 4.3무장폭동으로 말미암아 폭도들에 의해 경찰 140여명, 국군 180여명, 우익 1,600여명이 죽었고, 폭도들은 순진한 수많은 양민들을 사지로 몰아 제주도에 큰 피해를 낳았습니다. 역사는 바르게 기록되어야 합니다.

아침햇살 2011-03-29 11:03:51 | 119.***.***.162
선전포고를 하였고, 10월 28일 9연대 안의 좌파군인 80여명이 반란을 일으켜 이덕구의 폭도들과 합류하여 제주도를 공산화 하려다 사전 발각되었습니다. 그리고 10월 31일 75명의 좌익 경찰과 좌익 공무원이 폭도들과 함세하여 제주도를 공산화 하려다 사전 발각되었습니다. 이상과 같이 폭동이 악화되자 정부에서는 11월 17일 계엄령을 선포하여 폭동을 진압하여 49년 6월 7일 이덕구를 사살함으로 48년 4월3일 일으킨 4.3폭동은 우선 진압되었습니다.

아침했살 2011-03-29 10:53:29 | 119.***.***.162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김달삼은 폭동을 일으켜 남한 건국 5.10선거에는 반대하여 많은 선관위원과 선거에 참여한 양민들을 죽여 제주3개 선거구 중 2개 선거구가 무효되게 하고는, 북한 건국 선거에는 제주도민 80%인 56,000여 명이 참여하게 하여 그 선거지지표를 가지고 8월 25일 개최되는 북한 해주인민대회 참석차 8월 2일 북한을 가서 돌아오지 않아, 이덕구가 제주제2대 사령관이 되면서 48년 9월 15일부터 경찰과 국군과 우익을 공격하여, 국군이 하루에 21명이 죽으면서 사건이 커졌다. 또한 이덕구는 대한민국을 적으로 보고

아침햇살 2011-03-29 10:33:27 | 119.***.***.162
제주4.3은 남로당 제주도당(공산당) 간부와 김달삼 외 400여명의 좌익들과 협조자 1,000며명이 5.10선거를 반대하기 위하여 무장을 하고 4월 3일 2시 군사작전을 하듯 12개 경찰지서를 공격을 시작으로, 4월 3일부터 7월 20일까지 경찰 56명, 우익 235명을 죽인, 제주에 공산정권을 세우려 한 무장폭동입니다. 이때 폭도들이 제주를 장악하였고, 경찰과 총격 중 폭도 15명이 죽었습니다. 폭도들이 국군은 공격하지 않아 국군 전사자가 없었고, 제주 양민이 희생되지 않았습니다. 제주 폭동이 여기에서 끝났다면 제주도의 많은 사람이 죽지

제주도민 2011-03-28 11:26:37 | 112.***.***.80
진실을 왜곡이라하고 거짖을 역사에 기록해야한다는 억지를 이제그만할때도되었다, 제주도민이라면 어느한사람 4,3과관련없는 후손은 없다, 그래서 바르게 기록되고 가르쳐야한다, 만약 북한이 대한민국을 점령했다면 당시 4,3을 일으킨 주모자들은 분명 영웅으로 대접받을것이 맞다, 허나 염연히 대한민국정부라 수립되었고 이땅에 살고있다, 4,3의주동자들까지 피해자라고 우기려는 역사의 왜곡행위는 안된다, 주동자를뺀 나머지는 모두가 억울한 죽임이였다,
다시는 그런 혼란이 되풀이를 막기위해서라도 억지주장을 더이상 말자

제주도민 2011-03-28 10:56:59 | 112.***.***.80
4,3발생이 어떤자들이 일으킨것을 분명히알고있음에도 아니라고 억지부려선안된다, 일제히 봉화를 올리고 습격을 시작으로 발생했으나 혼란한 진압과정에 옥석을 구분하지못하여 억울한 죽임이 발생한것이 4,3이 진실인것을 아니라하면 어떻하란말이냐, 당시대의 사람들이 엄연히 생존해있는데도 언제까지 왜곡시키려하는지 답답하다,

1111 2011-03-27 14:46:42 | 118.***.***.87
제주도도 대한민국 땅입니다
조선인민민주의국가 땅 아니예요
착각은 금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