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쓰는 경비아저씨..."봄이 머뭇거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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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쓰는 경비아저씨..."봄이 머뭇거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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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20>아파트단지 지키는 시인 김대경 씨
일상생활이 곧 시상..."제가 어렸을때는요"

졸졸졸
들녘소리
새싹들 파릇파릇

골골골
벌들소리
어설픈 날갯죽지

한라산
먼발치 잔설
머뭇머뭇 골머리

유채꽃
피는소리
텃밭들 아린가슴

징거 둔
멍울소리
꼿꼿한 저울눈금

대숲들
모르쇠 앙금
엉금엉금 괴나리

봄이 오는 것을 머뭇거리고 있음은 한라산 먼발치의 잔설 때문이리라.

멍울을 간직한 대숲은 말이 없다. 꼿꼿한 저울눈금에 어찌할 줄 모르고 그저 모르쇠로 일관할 뿐이다.

제주시 용담2동 현대아파트 단지의 경비원이자 지난 1월 신인작가로 등단한 시인 김대경씨(63)에게 남겨진 4.3의 흔적이다.

시인으로 등단한 김대경 씨. <헤드라인제주>

"4.3 유족회 직원도 아닙니다. 4.3이 일어날 당시에는 저는 1살이었으니 직접적으로 경험하지도 않았죠. 다만 어렸을적부터 그 흔적만은 생생하게 보며 자라왔을 뿐이에요."

자신을 '4.3둥이'라고 소개한 그에게도 어릴때부터 보고 자란 4.3의 흔적은 남의 일이 아니었다. 직접 보고, 듣고, 느끼는 것만으로도 아픔은 적지 않았다.

하지만, 머릿속의 떠도는 이야기를 함부로 꺼낼수는 없었다. "요즘에는 세상이 좋아져서 그렇지 옛날에는 어디 엄두나 냈겠어요? 할 소리 못하고 살았을 때인데"

다소 늦은 나이에 얹혀진 시인이라는 무게. 그래도 그는 목소리를 내는 방법으로 시를 택했다.

# 60의 나이에 시인으로 등단한 사연?

나이가 들어가고, 삶의 여유가 생기다보니 시를 가까이 하게됐다. 제주에서는 최초로 시인이 된 사촌형님과 8년전 한발 앞서 시인으로 등단한 형님의 덕도 컸다.

그러나 옆에서 보던 것처럼 쉽지만은 않은 일이었다. 연습하고, 연습하고, 또 연습했지만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

2008년 처음으로 도전했던 문예지 '유심'의 백일장에서는 '차하'를 수상했다. 그에게는 수상의 기쁨보다 신인작가로 등단할 수 있는 '장원'이 되지 못한 자괴감이 더 컸다.

"그 이후로 한동안 시를 쓰지 않았어요. 그런데, 연습하며 쓰던 버릇이 있다보니 나도 모르게 다시 시를 쓰고 있더라고요."

시상이 떠오르면 저절로 팬이 잡혔다. 결국 서정문학 신인작가 응모전으로 다음 도전을 하게됐고, 지난 1월 서정문학 신인작가로 등단하게 됐다.

김대경씨가 시를 쓰고 있다. <헤드라인제주>

# "시라는 것이 설명문은 아니더라고요"

본업은 경비원이라고 못 박았다.

"시 쓰는 사람도 시를 쓰지 않을때면 평범한 사람이죠. 보는 눈이 조금 다를 수는 있어도 직업과는 달라요." 시인으로 등단했다 하더라도 시간이 남으면 시를 쓸 뿐 그의 생활은 아무런 흔들림이 없다.

이날도 경비실에 맡겨지는 택배를 받으며 본업에 충실했을 뿐이다. 다만 옆에서 벌어지던 고물수거 작업을 보며 '깡통'이라는 시상이 떠올라 몽당연필로 무언가를 끄적댔다.

시를 쓰는 과정에서 그만의 철학도 자연스레 생겨났다. "아직 잘은 모르지만 너무 세밀하게 쓰다보면 설명문밖에 되지 않더라고요. 시는 그런 것이 아니잖아요."

시는 꼿꼿한 저울눈금이 무엇인지, 텃밭의 가슴이 어째서 아린 것인지 설명해주지 않는다. 왜 들녘소리가 '졸졸졸' 소리를 내고, 벌떼가 '골골골' 소리를 내는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 "그저 가슴으로 와닿으면 족할 뿐이에요"

# "어렸을적 기억...아련하게 떠올립니다"

촉새 같은 바람아 바람개비는 왜 돌려
어질어질 하였노라 나이조차 잊었노라
섬 안에 섬을 다진다 비자나무 삼천 섬

먹새 같은 구름아 구름개비는 왜 날려
郡木이라 하였노라 꿈쩍하지 않겠노라
이슬도 일편단심이다 햇살방울 삼천 섬

얌체 같은 사람아 담배개비는 왜 버려
불씨리고 하였노라 조심하라 일렀노라
낙엽도 자연유산이다 세세손손 삼천 섬

그가 어렸을 적부터 비자열매는 매우 귀한 열매였다. 그가 살던 도도름(돋오름) 동네의 비자나무는 군에서 관리하던 나무여서 함부로 건드릴 수 없었다.

유난히 힘들고 가난했던 그 시절, 몰래 가서 떨어진 비자열매를 주워다가 팔면서 연필이나 공책을 겨우겨우 마련했다. 아련한 향수이면서도 씁쓸한 이면이 남아있는 때다.

"시상은 주로 어릴적 기억들을 많이 떠올리고는 해요. 옛 추억들을 곱씹고 있으면 무언가 하나씩 잡히더라고요."

그 외에는 일상에서 겪는 일들이다. 시상을 떠올리기 위해 일부러 어느 곳을 방문하며 낱낱이 살펴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간혹 TV를 보다가도 시상이 떠오르고는 해요. 이제 나이가 먹다보니 떠올랐을때 적어두지 않으면 금세잊혀지더라고요."

잊혀지는 것은 시상뿐만이 아니었다. 자신이 썼던 시의 단어를 끄집어 내는대도 기억을 더듬어야 했다.

"경비를 하다보면 어느정도 여유가 있어서 제가 썼던 시를 다시 외우면서 보고는 합니다. 그러면 꼭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어서 단어를 바꿔보기도 하고, 문장을 바꿔보기도 해요."

시는 한번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김치가 배추를 소금에 절인다고 되는 것이 아니잖아요. 수 많은 과정을 거쳐 숙성돼야지 맛있는 김치가 완성되는 법이죠."

다시 책상에 앉아 연필을 집어든 김대경씨. 그가 끄적이고 있던 메모지에서 깡통은 '녹슬은 심장이 문제'라며 외치고 있었다. <헤드라인제주>

시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김대경씨. <헤드라인제주>

<박성우 기자 / >저작권자 ⓒ 헤드라인제주 무단전재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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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일 2011-03-22 20:04:53 | 118.***.***.81
시인 등단을 늦게나마 축하드립니다. 좋은 시 잘 읽었습니다. 항상 건필하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