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 없는 '우주소년'..."이번엔 올레길 접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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겁 없는 '우주소년'..."이번엔 올레길 접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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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15>락밴드 '우주소년단' 기타리스트 이현철씨
똑같은 삶 'NO'..."우리는 콩나물이 아니잖아요"

설원 속 허름한 가건물에서는 멀찌기서부터 예사롭지 않은 소리가 흘러나온다.

제주산업정보대학 구석진 곳에 자리잡은 락밴드 '우주소년단'의 밴드연습실. 그럴 돈이면 차라리 마이크를 하나 더 사겠다며 그 흔한 난로 하나 들여놓지 않아 연신 입김이 새어나온다.

난로값이 아깝기도 하지만, 추위를 느낄 겨를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합주가 끝나면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땀이 뚝뚝 떨어진다. 앉아서 듣는 관중의 입장도 마찬가지다. 음악을 가만히 듣고 있노라면 추위에 손이 곱아진다는 사실은 금세 잊혀진다.

고도가 높아서인지 앰프의 출력때문인지는 알 길이 없으나 귀까지 먹먹하다. 귀뿐 아니라 심장까지 쿵쾅거리는 이상증세를 보이는 것으로 보아 귀를 때리는 '음악 때문이리라' 짐작할 뿐이었다.

이현철 씨. <헤드라인제주>
허름한 가건물에서 밴드연습을 하고 있는 '우주소년단'. <헤드라인제주>

이 밴드의 한 축에는 기타리스트 이현철씨(30)가 있었다. 그는 수 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10년간 이 자리를 지켜왔다.

한바탕 소리를 지른 밴드는 서로 눈을 마주치더니 곧장 다음곡을 연주했다.

# 열악한 환경..."음악이요? 좋아서 하는거죠~"

자세히 살펴보니 열악한 환경은 굳이 난로뿐만이 아니었다. 5명의 멤버가 마음껏 뛰놀기에는 너무나 좁은 건물에 낡은 앰프. 드럼의 심벌은 이가 나가 있었다.

상황이 이럴진대 현철씨는 "이게 진짜 헝그리 정신이 아니겠냐"며 씩 웃고만다. 연습은 내리 2시간여동안 계속됐다.

엄밀히 따지자면 연습실의 주인은 이들이 아니다. 이 연습실은 산업정보대학 그룹사운드 '맷돌'의 연습실이다.

물론 '우주소년단' 탄생배경이 옛 맷돌 멤버들과 만든 밴드라 태생은 같지만, 그래도 세 들어 살며 눈칫밥을 먹는 신세인 것은 부정할 수 없다. 틈틈히 한참어린 후배들의 연습을 도우며 자리를 지키고 있다.

허름한 가건물에서 밴드연습을 하고 있는 '우주소년단'. <헤드라인제주>
이가 나간 드럼의 심벌. <헤드라인제주>

"왜 밴드를 하느냐고요? 그런 질문이 어딨어요~ 당연히 음악이 좋기 때문이죠." 우문현답이다.

각자의 음악적 주관이 뚜렷한 멤버들과 다투기도 많이했다. 모르는 이들이 보면 의가 상하는 것이 아닐까 우려가 들 정도로. 하지만, 아무리 심하게 싸우고 난 후라도 눈만 마주치면 서로간의 호흡이 딱딱 들어맞는다. 앙금이 남을턱이 없다.

# 혈혈단신 서울생활, "꿈 찾아 돌아왔어요"

제주시 소재의 한 정신요양원. 이곳에서의 현철씨는 기타를 든 것과는 사뭇 다른 이미지를 풍겼다. 차분한 느낌은 같은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극과 극이다.

이 곳에서 그는 환자의 생활을 돕는 도우미직을 맡고 있다. "지금 다른 일을 시작하려고 공부하는 중인데, 잠시 몸담고 있습니다." 하루 종일 정신질환 환자를 마주하는 병원생활도 쉽지 않은 일이지만, 유쾌한 성격과 특유의 친화력으로 너끈히 해내고 있다.

틀에박힌 삶을 살고 싶지 않아서 25살되던 무렵, 새로운 세계를 보고싶다는 생각에 무작정 서울 한복판으로 뛰어들었다. 그의 수중에는 신구간동안 이삿짐을 나르며 번 110만원이 전부였다.잠시 시간을 내서 들은 그의 삶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누군가는 젊은 혈기라고 치부하기도 했지만, 그에게는 인생을 건 도전이었다. '내 생존력이 얼마나 되는지 테스트해보자'는 생각으로 시작됐지만 과정은 쉽지 않았다.

무작정 뛰어든 외지에서는 당장에 머리를 뉘일 곳부터 찾아야했다. 물어물어 동대문 인근에 사글세 16만원짜리 방을 얻었다. 방이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좁았다. 훤칠한 키의 그가 누우면 머리와 발끝이 닿는 마치 상자같은 방이었다.

"제가 나오니까 폐쇄조치 되더라고요. 비위생적이기도하고 소방시설 같은 것도 하나도 되지 않은 위험한 곳이었다네요." 이후로도 밑바닥부터 해보지 않은 일이 없었다. 막노동에서부터 영업일까지 닥치는데로 해나갔다.

제주시 소재 정신요양원에서 만난 이현철씨. <헤드라인제주>

그렇게 지내면서 차근차근 모아둔 밑천으로 오토바이 온라인 판매사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사업이 기우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창고가 없어 노상에 세워둔 오토바이가 하나씩 없어졌죠. 하나 사라지면 아무리 벌어도 적자가 날 수밖에 없더라고요."

인생에서 처음으로 맛 본 실패감이었다. 좌절감에 가득찬 나날을 보냈다. "힘들긴 했지만 그 때가 음악적으로 한층 더 깊어진 계기가 된 것 같아요. 한이 서렸다고 해야할까."

좌절은 순간이었다. 훌훌털고 일어나 다시 앞만보고 살아왔다. 다시 고향땅인 제주로 내려오기까지 쉬운날은 없었지만 즐겁지 않은 날도 없었다고 한다.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나이지만, 지금까지 살면서 뼈저리게 느낀 것은 우리가 너무 똑같은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에요. 아파트 하나 갖기위해 70~80년 평생을 바치는 것에 회의감이 들더라고요."

# "우리는 똑같이 배양되는 콩나물이 아니잖아요"

고향으로 눈을 돌린 결정적인 계기가 된 생각이었다. "하고 싶은 음악을 마음껏 하고 싶었죠. 여유가 있고, 자연이 살아있는 고향에서."

'우주소년단'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꿈을 안고 살아가는 어린이들이 꿈을 더 키울수 있는 음악을 하고 싶다는 뜻에서였다. "우리는 똑같은 환경에서 배양되는 콩나물이 아니잖아요? 각자가 꿈꾸는 삶이 있는 법이죠."

허름한 가건물에서 밴드연습을 하고 있는 '우주소년단'. <헤드라인제주>

지금도 시내 소극장 등에서 정기적인 공연을 벌이고 있다. 이미 확보해 놓은 고정팬도 상당하다. "가끔 결혼식 축가를 부르러 나가기도 하는데요. 하객들이 정말 좋아하세요. 그럴때면 아직 얽매인 사람들이 많구나 생각이 들기도 하죠."

그가 생각하는 음악의 가치관은 뚜렷했다. "음악은 삶을 표현하는 방법이에요. 내 삶을 다른 사람과 공유하는 매개체죠. 관객과의 호흡이 없다면 그 음악은 아무 쓸모도 없는 음악이에요."

제주가 자랑하는 올레길에서 '게릴라 콘서트'를 열고싶다는 당찬 포부도 밝혔다. "그냥 갑자기 들이닥치는거에요. 한바탕 신나게 놀 수 있도록. 제주를 평생 기억하지 않겠어요?" <헤드라인제주>

<박성우 기자 / 저작권자 ⓒ 헤드라인제주 무단전재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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