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허한 시장 직선제, "미리 써둔 답이 어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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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허한 시장 직선제, "미리 써둔 답이 어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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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진의 미디어칼럼] ② 제주사회 재설계를 위한 제안-'계층구조'

유난히 길었던 지난 명절, 길었던 만큼 문자 행렬도 이어졌다.

“복 들어감쪄 하영들 받으라이”라고 선배가 보낸 정겨운 문자도 있었다. 반면 지역구도 아닌데 정치인들의 관습적인 신년인사 문자에는 ‘누가 내 번호를 넘겼을까?’ 하는 의구심도 들었다.

이번 명절 ‘안습문자’는 나의 딱한 경제사정을 어떻게 알았는지 일면식도 없는 김연희 팀장의 ‘최저 금리 3000만원 당일 신속 대출’ 류의 문자들과 함께 공적기관인 제주도청에서 보낸 문자다.

우근민 도지사 명의로 2번, 부지사 명의로 2번, 제주자치도 명의로 5번 총 9번의 문자가 날아들었다. 도청 사무실 번호라 ‘전화세 아까워 영어사전 뒤져가며 인터넷으로 이미 투표했어요’ ‘제발 명절에는 공무원들도 가족, 친지들과 함께 보내주세요’라며 답문을 남길 수도 없었다.

명절이 끝나자 ‘7대 경관 전화세만 1억원’이라는 보도와 할 일 많은 공무원들에게 서귀포시청을 배우라며 투표했는지 실과별로 숙제 검사하겠다는 제주시장의 황망한 발언 ‘뉴스’에 확 깼다. ‘뉴세븐 원더스’ 홈페이지 접속기록이라도 제출하라는 것인지도 의문이다.

이미 10번을 넘게 투표한 공무원도 있다고 하니 이 같은 우근민 도정의 열정이라면 인구가 56만 제주도민의 실제 투표참여인원은 100만명을 훌쩍 넘어 ‘세계 7대 투표 참여 지역’으로 선정될 것 같다.

김태환 도지사 시절이 생각났다. 영리병원 추진한다며 공무원들을 ‘정보요원’으로 변모시켜가며 오늘은 도민 몇 명 만나서 무슨 대화를 나눴고 영리병원에 대한 성향은 어떤지 도지사에게 일일이 ‘일일보고’하라고 했던 ‘10만명 도민과의 대화 행정’이 되새김질 됐다.

선전선동의 대가 반열에 올랐던 ‘괴멜스’가 떠올랐다. 이쯤 되면 ‘상징조작’이다.

# 후퇴한 현안들

소위 ‘7대 세계 경관 선정 투표’라는 우근민 도정의 상반기 최대 이벤트가 활성화되면 될수록 누적됐던 제주사회 최대 현안은 해결이 아니라 패착으로 가고 있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성희롱 전력’이라는 꼬리표만 떼면 3대 현안이던 군사기지, 영리병원, 기초자치권 문제에 대한 우근민 후보의 정책은 시민사회의 정책과 크게 다를 게 없어 보였다.

군사기지 문제 역시 '윈-윈' 전략이 근본적으로 허구하는 지적도 있지만 당선가능성 입장에서 보면 도지사가 되면 뭔가 해결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소위 ‘7대 세계 경관 선정 투표’로 여론이 지배당하고 있는 시점에서 ‘윈-윈’ 하겠다던 군사기지문제는 강정주민들이나 반대운동 단체 회원 등이 도청 출입만 자유로워졌을 뿐이다. 오히려 언론의 표현대로 강정주민만 사지(死地)로 몰아넣고 제주의 자존은 세우지도 못한 채 정부와 해군에 질질 끌려가고 있는 모양세다.

공사가 강행되건 말건 정부에 건의문 한 장 제대로 못 보내고 있다. 영리병원 정책 역시 우근민 도정의 오락가락 정책으로 결국은 선거전 반대한다던 입장을 뒤집으며 유권자들을 우롱한 셈이 됐다.

# 답안지 정해 놓고 하는 ‘공허한 시장 직선제’

2010년 도지사 선거 주요 정책 쟁점 중 하나였던 계층구조 문제는 어떨까.

2011년 주요 현안 중 하나로 계층구조가 부각될 전망이다. 우근민 지사의 입장, 도의회의 입장 등이 다소 엇갈리고 있지만 공론화 단계에 돌입된 상태다.

그런데 결론적으로 우근민 도정의 계층구조 추진방향은 답안지 미리 써 놓고 추진되는 형국이다.
제목은 <제주특별자치도형 기초자치단체 도입>이지만 권한도 제대로 없는 행정시장 직선제로 답을 정해 두고 있다. 다른 가능성과 상상력은 배제한 채 정해놓은 길로 가야된다고 설파하고 있다.

조례제정권도, 인사권도 기초의회도 없는 법인격을 갖추지 못한 ‘짝통 기초자치’로 끝내려는 모습이다. 오히려 기초자치단체 도입을 전술적로만 접근해 위헌논란을 피해가기 위한 <공허한 시장만 직선제 모형>을 강조하고 있다.

내용은 다르지만 정부의 정책기조에만 부응해 광역자치단체 가운데 유일하게 기초자치단체를 없애면서도 환호했던 김태환 도정의 짝퉁 ‘혁신안’과 다를 바 없는 수준이다.

후보자 시절, 우근민 후보는 기초자치권 부활을 강조했다. 객관적 검증은 불가능하다. 이 공약으로 인해 정책적으로는 당선에 많은 도움이 됐을 것이다.

하지만 그 세부내용으로 후보자 시절 의 시없는 시장 직선제를 채택했다는 근거를 찾을 수는 없다. 이제야 논의 시작인데 끝을 정해 버리면 논의가 제대로 될 수는 없다.

계획대로 2014년 제주시장과 서귀포시장이 주민직선으로 선출됐다고 가정해 보자. 스스로 시장이 조례하나 만들 수 없는 권한이라면 과연 기초자치권이 확보됐다고 할 수 있을까?

제주시장과 서귀포시장이 각각 예산을 편성해 도지사 결재 받고 제주도의회에 제출해 통합 심사하는 것이 재정권이 독립이라고 볼 수 있을까?

실제로는 우근민 지사가 공언했던 행정시로의 단계적인 과감한 권한이양도 되지 못하고 있다.

약속했던 일정상으로는 2010년에 이미 행정시로의 인사권 완전 이양, 재정권 일부 이양, 조직원 일부이양 등 기초자치단체 수준 사무이양이 이뤄져야 했지만 제대로 이뤄졌다고 보는 사람은 없다.

# 강요된 정답 아닌 도민들이 만들어야

기초자치단체를 없앤지 4년 밖에 되지 않았다는 데라는 비판도 있지만 잘못된 제도라면 오히려 제대로 바꿔야 한다.

이번 주부터 제주도의회 공청회를 시작으로 기초자치제도 도입 문제가 본격적으로 공론화 된다. 그 논의 출발은 답안지 채워 놓고 도민들에게 강요하는 형태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이미 지난 4년간 행정계층구조 개편을 위한 논의과정에서 시민사회와 도의회 차원에서도 다양한 모형에 대한 논의가 이뤄져 왔다.

법인격이 있는 기초자치단체 부활에서부터 행정시를 없애는 대신 권한있는 대동제로 가야한다는 의견까지 도민들이 생각은 다양할 수 있다. 풀뿌리 자치, 생활자치 강화를 위해 주민자치위원회에 법인격을 부여하자는 방안까지 나오고 있다.

학계 일부에서는 제주특별자치도의 사례를 '행정시ㆍ군ㆍ구를 둘 경우에는 행정계층은 그대로 유지되므로 행정의 효율성 측면에서는 크게 개선되는 효과가 없다’는 지적도 제기된 바 있다.

권한과 지위가 불명확하고 법인격도 없는 행정시가 도와 읍.면.동 사이에 존재함으로서 혼선만 초래되고 있다는 지적인 셈이다.

강호진 사단법인 제주대안연구공동체 연구지원실장. <헤드라인제주>
우근민 지사가 최대 현안 중 하나였던 기초자치단체 부활을 정책으로 내걸고 당선된 이상 이제야 공론화 시작 단계부터 도민의 선택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7대 경관 추진에도 힘을 모을 필요가 있겠지만 풀뿌리 자치를 실현하기 위해 도민의 지혜를 모으고 이를 추진하는 일은 그 이상 노력이 필요하다.

명절날 쉬지도 않고 도청 사무실에 앉아 한 도민에게 투표독려를 위해 9번의 문자를 보내는 정성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강호진 사단법인 제주대안연구공동체 연구지원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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