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매의 '억척 고집', "다 경 허멍 배우는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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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매의 '억척 고집', "다 경 허멍 배우는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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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13> 제주 노동요 맥 잇는 '환상의 콤비' 김향옥-김향희 자매

제주인의 소리 노동요. 밭을 밟고, 풀을 베고, 검질을 매면서 자연스레 흘러나오는 구슬픈 가락은 듣는 이들의 마음을 요동치게 만든다.

그러나 대부분의 농사과정이 대형기계로 이뤄지는 현대사회에서 예닐곱씩 모여 검질을 매야 하는 일은 사라졌고, 후렴구에 맞춰 울려 퍼지는 제주농요도 덩달아 잊혀져가고 있다.

현존하는 노동요의 유이한 전수자인 김향옥(60), 향희(51) 자매는 이 노동요의 맥을 잇기 위해 오늘도 동분서주하고있다.

혹자는 먹고살기 바쁜 지금같은 시대에 왜 그리 돈 안되는 일에 열을 올리냐며 의아해하기도 하지만, 그들에게는 밥벌이보다 더욱 의미있고 가치있는 일이었다.

노동요 전수자 김향희 씨와 김향옥 씨.(왼쪽부터) <헤드라인제주>
# "설움만 담은거 누가 허쿠냐마는"

지난 2007년 타계한 제주특별자치도 무형문화제 16호 고 이명숙 명창은 자매의 어머니다. 한 평생을 소리와 함께 살아온 어머니의 유지를 이어받아 자매는 여전히 노동요를 부르고 있다.

"물론 돌아가신 어머니의 뜻도 있겠지만, 배우면 배울수록 이를 꼭 지켜나가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가 지키지 않으면 이 귀한 유산이 사라지겠다는 그런 생각."

향희씨의 설명에 향옥씨가 거든다. "그런 마음 어서불민 아예 허지도 못해분다 게. 좀 힘들어야 말이주."

예쁘게 차려입은 한복 대신 갈옷을 입고 호미를 들어야 한다. 깨끗하고 시원한 발성보다는 구슬프고 굴곡있는 목소리를 내야한다.

"월~ 워리 월월워뤄~"

겉보기에는 화려하지 않은 노동요, 많은 관심을 얻지는 못한다. 그래도 약 30여명의 동료들이 자매와 함께 애환을 나눈다.

"설움담은거 누가 허쿠냐 게. 겐디 옛날사람들 살멍그넹 불럼던 노래들이 생각낭 오는거라." 향옥씨는 각자의 삶이 있음에도 바쁜 시간을 쪼개 함께해주는 이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한다.

# 각자의 스타일대로...'환상의 콤비'

자매는 닮기 마련이라 했던가. 일단 생김새는 누가봐도 닮았다. 그런데 내뿜는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아니, 자매가 맞나 싶을 정도로 한참 다르다.

재래시장에서 옷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언니 향옥씨는 전형적인 제주여성 상이다. 그녀의 억센 사투리에서도 잘 나타나듯이 강인하면서 열정적이다. 그러면서 정이 넘치는 사람냄새를 물씬 풍긴다.

제주시 동문재래시장 김향옥씨의 옷가게에서 만난 자매. <헤드라인제주>
김향희씨가 전해준 제주농요를 시연하고 있는 사진. <헤드라인제주>
피아노 교습소를 운영하는 동생 향희씨는 차분하고 이지적인 느낌이다. 언니 향옥씨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쏟아내면 이를 되새기며 내용을 정리해준다.

"살아온 환경이 조금은 달라서 그래요. 언니는 어렸을때부터 물질하고 검질매고 풀을 베면서 노동요를 몸소 익혔어요. 따로 배운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익힌거죠. 저는 나이 터울이 조금 나다보니 시로 넘어와 학교를 다니면서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이었어요."

맡은 역할도 다르다. 아무래도 생활에서 직접 익힌 향옥씨가 노래는 조금 더 매끄럽다. 메인으로 나서는 것은 향옥씨고 향희씨는 뒤를 서포트한다.

향희씨는 공연이나 무대의 모든 프로그램을 직접 기획하고 연출한다. 매번 똑같은 공연만을 보여줄 수 없으니 감초 역할로 곁들이는 부수적인 무대는 모두 향희씨의 작품이다.

지난해 공연에서는 플루트 앙상블이 나서 2부 공연에 화려한 수를 놓기도 했다. 향희씨는 좀 더 전문적인 공연을 배우기 위해 올해 국악전문대학원에서 국악공부를 병행해 나갈 계획이다.

또 단원들을 맞이하는 부분은 언니 향옥씨의 몫이다. 가족처럼, 친구처럼 단원들을 하나로 묶는 것은 특유의 붙임성으로 너끈히 해결한다.

누가 따로 시킨것도 아니건만,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해나가면서 환상의 콤비를 이뤄낸다.

# "우리가 이 일에 매진하는 이유는요"

처음부터 원하던 길은 아니었다. 특히 향옥씨는 "엄마처럼 살기 싫었다"며 노동요를 배우는 것을 한사코 거부해왔다.

그러면서도 공연에 앞서 단원 중 누가 아프기라도 하면 직접와서 부탁하는 어머니의 부탁을 거절할 수는 없었다. 울면서 연습해왔다. 모친이면서도 선생님이었던 어머니는 그렇게 강하게 단련시켜왔다.

직접 가져온 노트북으로 관련 프로그램을 설명해주는 김향희 씨. <헤드라인제주>
"다 경 허멍 배우는거라. 우리 손주들도 싫댄 하멍그넹 배웜서."

어머니가 배워준 노동요는 4대에 걸쳐 내려오고 있다. 향옥씨의 손자들까지 지금은 노동요의 전수자다. 지금에 와서 가족들은 누구보다 든든한 후원자이자 조력자가 됐다.

생업도 마다하고 이 일에 매진하는 것은 이 같은 이유다. "힘들지만 누가 지켜도 지켜내야 되는거당 보난...맨날 문 덛겅 댕기멍, 단골들 가불고 경 해여도 우선이 이거라."

최근에는 매주 토요일 오전 11시 제주시 사라봉에 위치한 '제주시 무형문화재 전수회관'에서 전통학교를 열고 제주농요를 가르친다.

"누군가는 지켜내야 하는 문화에요. 제주에는 이만한 가치가 있는 유산이 많지 않아요. 어머니와의 약속도 약속이지만 전승가치를 알고, 키워가야할 가치가 있다는게 저희가 사명감을 갖고 이 일에 매진하고 있는 이유죠." <헤드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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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국 2011-01-26 14:18:04 | 218.***.***.227
제주 사람들의 유의미한 작업을 진득하게 취재하는 모습, 참으로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