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쾌한 그녀, "제가 좀 싹싹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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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한 그녀, "제가 좀 싹싹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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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12> 용담우체국 양지영씨의 '이유있는 자랑'
부녀지간 꾸려가는 작은 우체국..."재미있는 에피소드요?"

거리가 멀어 우체국으로 직접 찾아가기가 쉽지 않은 지역 주민들을 위해 동네 곳곳에 마련된 우편취급국. 소위 '커다란 우체통'이라 불리며 소포나 우편물의 징검다리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작고 허름한 건물이지만 제주시 용담동 큰 길가에도 30년이 넘는 시간동안 자리를 지키며 이웃들의 온갖 소식을 전해주는 우편취급국이 있다.

그리고 그 허름해보이는 건물 안에는 누가 찾아오던 항상 유쾌한 웃음을 짓게 만드는 양지영씨(40)가 기다리고 있었다.

용담2동 우편취급국의 양지영 씨.<헤드라인제주>

설을 앞두고 있는 20일 오후, 손 꼽히는 대목인지라 정신없는 하루다.

"계절에 따라 다르기는 한데 6월쯤에는 한가하다가 주로 10월부터 2월 사이에 가장 물건이 많이 들어와요. 그 시기가 감귤 출하량이 많아지는 때 라서요."

겨울연말과 설, 추석 등의 명절을 앞두고 있는 시기에 우편물이 몰린다. 많게는 하루에 100개 이상의 소포가 들어오기도 한다.

아무리 많은 물량이 들어와도 모든 업무는 국장님과 단 둘이서 처리한다. 처음에는 서투르고 실수를 연발하던 이 일도 어느덧 4년째에 접어들다보니 웬만한 물량에는 끄떡도 없다.

"아무래도 요즘은 손편지 보내는 사람들이 많이 줄어들기는 했죠. 그래도 소포나 등기를 보내는 고객들은 여전히 많아요."

수년째 우편취급국을 통해 물건을 부치는 동네사람들, 소위 '단골'이라 불릴만한 고객들은 찾아올때마다 항상 웃음짓게 만드는 그녀의 매력을 익히 알고 있다.

최근에는 인터넷 쇼핑몰이 워낙 활성화되다보니 젊은 세대들도 많이들 찾아온다. 특히 부모님이나 여자친구로부터 군으로 보내지는 우편물이 유독 많다고.

# 부녀지간 '국장님', 든든한 버팀목

"옛날에는 유아교육을 전공하고 어린이집이나 학원 선생님으로 일했어요. 중국어 공부한다고 중국에 다녀오기도 했었죠."

앞서 설명했듯이 이 곳에서 일한지는 4년째 접어들었다. 자칭(?) 서비스 정신이 투철하다보니 꼭 맞는 일을 하고 있다며 그녀는 함박웃음을 지었다.

한창 중국어 공부를 하던 중 이 곳에 자리를 잡게된 이유를 묻자 본인을 혈연에 의한 '낙하산'이라고 소개한다. 무슨말인고 하니, 급한일로 잠시 자리를 비웠다는 국장님이 그녀의 아버지란다.

"우편취급국은 개인 사업체 성격을 띄기도 하거든요. 불법 같은거 아니에요~"

우체국에서 근무하다 15년 전쯤 정년을 맞으면서 우편취급국을 열게 된 국장님. 마음이 꼭 맞는 부녀간에 손발을 맞추다보니 금상첨화다.

"처음에는 실수 연발이었죠. 가령 동네 이름을 잘못알고 우편번호를 기재해서 제주도에 있는 용담동으로 가야하는데 부산에 있는 용단동으로 보내지는 경우? 뭐 그런!"

지금도 간혹 실수를 저지르기도 하지만, 든든하게 뒷수습을 도맡아주는 국장님이 있기에 마음 놓고 업무에 임한다.

"그렇다고 실수 자주한다는 건 아니에요! 예전에 그랬다는거죠 예전에"

양지영 씨. <헤드라인제주>
제주시 용문로터리 길가에 위치한 용담2동 우편취급국. <헤드라인제주>

# "약속 너무 쉽게 져버리더라고요"

항상 유쾌한 일만 기다리는 것은 아니었다.

"꿀을 부치려는 손님이 찾아오셨어요. 포장을 하시길래 신문지로 두겹 세겹 싸매고, 끈으로 세번 네번 두르면서 단단하게 포장되도록 도왔죠."

그런데 그렇게 싸맨 꿀이 도착지에서는 파손돼 있었다. 취급주의 딱지까지 붙여놓았지만 수 많은 물품들이 오가는 배송과정에서 이렇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사실 소포를 부치기 전에 분명히 당부하거든요. 유리제품 같은 경우 깨지거나 파손되도 이에 대한 배상의 책임은 지지 않는다고. 물론 그 손님에게도 확실하게 말했죠."

하지만 그 고객은 우체국에서 책임을 져야하는 것이 아니냐며 배상을 요구했다. 이러이러한 자초지종을 설명해도 막무가내였다.

"동네에 사시는 분이라 간간히 뵙기도 해 민망해지겠더라고요. 그러면 제가 집에 가지고 있던 비슷한 꿀을 드리겠다고 했더니 그마저도 안된대요."

고객은 꿀 값 4만원을 돈으로 배상해달라고 요구했다. 결국 반값을 배상해 주는 것으로 합의를 보고, 그녀는 사비를 털어 지불했다.

많은 돈은 아니지만 구두로라도 한 약속을 너무도 쉽게 져버리는 바람에 언짢았던 기억으로 남아있다.

# "쟁쟁한 우체국 직원, 다 따돌렸다는거죠!"

무용담을 듣지 않을 수 없었다.

"큰 기계의 부속품으로 사용되는 물건을 부치려는 손님이 오셨어요. 기계부품이라 그런지 크기는 얼마 되지 않은데 상당히 무겁더라고요."

작은 부품이었지만 기계를 돌리려면 꼭 필요한 부품이기에 한 시를 다투는 중요한 물건이었다.

그렇게 보낸 물품이 갑자기 사라졌다. 물건을 받아보니 상자만 도착하고 부품은 사라져 있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한창 바쁠 시간에 전화가 와서 한바탕 소동이 일어났다.

"난리가 났었죠. 물건이 무거워서 소포상자 아래를 뚫고 떨어졌나보더라고요. 물건이 하나 배송되려면 그냥 우체국만 들르는 것이 아니라 수 많은 곳을 거쳐야 하거든요."

혼란스러운 와중에서도 얼추 기억하고 있던 배송지의 주소를 기점으로 거칠만한 경유지를 알아봤다. 수소문 끝에 해당지역 인근의 물류센터에서 분실물 비슷하게 취급되던 물품을 찾아냈다.

"결국 제때 도착해서 정상적으로 기계를 가동했다고 하네요. 상당히 고가이면서 부품만 봐서는 무슨 물건인지 전혀 모르게 생겼던 물건인데...감이 안오시죠? 이건 거의 기적같은 일이었어요!"

그녀의 진가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제 자랑 같지만..."이라고 운을 떼며 제주지역 우체국에서 가장 친절한 CS직원으로 꼽힌 것을 이야기했다.

"쟁쟁한 우체국 직원들을 따돌렸다는 거 아닙니까~ 여기 있는 화분들이 다 그때 받은 것들이에요." 자랑은 맞는데 전혀 거북하지 않았다.

인터뷰 도중에도 찾아오는 고객을 맞이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면 누구나 수긍할 것이다. 제주체신청 홈페이지에는 그녀의 친절함에 고마움을 표한 고객의 소리도 담겨있다. "당연히 해야할 일을 하는건데, 그저 뿌듯하죠~"

그녀가 이루고 싶은 꿈은? 진지한 얼굴로 답한다. "올해는 꼭...2등이라도 좋으니 로또 대박을 맞을거에요!"

한껏 웃음을 터뜨리자 속내를 털어놓는다. "아직 40대는 한창 열심히 활동하고 많이 움직여야 할 때죠. 조금만 더 여유를 찾고 열심히 살아가려고요." <헤드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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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 2011-01-25 21:06:27 | 49.***.***.117
헤드라인제주의 사는 이야기 매번 잘읽고 있어요
다음 주인공은 누가될까 궁금해지네요

박덕배 어린이 2011-01-25 16:31:43 | 112.***.***.96
저 분 선한 분이시다.
이전에 물건 부치러 갔을 때 박스를 안들고 갔는데 작은 박스 하나 그냥 주시더라, 덕배 만큼 좋은 사람이더라.

역시 사는이야기 2011-01-24 15:55:11 | 175.***.***.228
너무 싹싹해 보여요. 근무하시는 분이 두명인데 힘든내색 안하고 얼굴은 너무 밝아보여서 좋네요
좋은글 잘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