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자 엄마', 그녀가 활짝 웃을 수 있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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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자 엄마', 그녀가 활짝 웃을 수 있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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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10> 활동보조원-성교육 상담사 '투잡' 신동자 씨
"누군가를 돕는 것은 내가 더 행복한 일"

이제는 무뎌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아픈 상처로 남아있는 장애라는 이름의 멍에.

장애인시설 생활재활교사, 그룹홈 생활, 활동보조원 등을 거쳐온 그녀에게 장애는 아픔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소통의 도구였다.

"꼭 의도한 것은 아닌데, 어쩌다보니..."라면서 이번에도 자신보다 더 어려운 장애를 가진 이들을 돕는일에 올인한 신동자 씨(39).

활짝 웃는 모습의 그녀는 지체3급 장애를 안고 있다. 다른 이들보다 손가락이 조금 짧기 때문이다.

신동자 씨. <헤드라인제주>

# 생활보조-성교육상담 "투잡생활, 너무 흡족해요"

이제 막 새로운 출발선을 통과한 그녀의 선택은 지나온 반 평생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현재 그녀는 흔히들 말하는 '투잡(Two Job)'을 뛰고 있다. 장애인자립센터의 활동보조인과 장애인여성상담소의 성교육 교사가 그녀를 지칭하는 설명이다.

"지금이 학교 방학기간이기는 하지만, 다행히 두 가지 일을 하는 시간이 겹치지는 않더라고요." 주중 4번의 방문교육을 실시하는 상담소 일과 한 달에 100시간을 채워야 하는 보조인 업무 간에는 큰 충돌이 일어나지 않는다.

벌이는 얼마되지 않는다. 그래도 그녀는 "직장에 다닌다면 네살박이 아들을 집에 두고 안절부절 못했을 거에요."라며 지금 하고있는 일이 너무나 흡족하다고 이야기한다.

적성에도 꼭 맞는다.

"생활보조인이라는 직업이 '일하는 것'이라고만 생각한다면 참 힘든 직업일수는 있겠네요. 비슷한 소리겠지만 일보다는 그냥 '함께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석달 전부터 시작한 생활보조인은 "가사일 하나는 자신있다"는 그녀에게 더 할 나위없이 딱이었다. 주로 청소나 세탁, 음식만들기 등의 가사 도우미 역할에 있어 그녀는 프로다.

지난해부터 시작한 성교육 상담일도 재미있으면서 값진 활동이다. 제주지역 곳곳에 위치한 중.고등학교를 직접 방문해 장애를 가진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가르치려고 가기는 했지만, 아이들의 순수함과 솔직함에 제가 더 배우고 오는 것 같아요."

생활보조 대상자와 상담한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는 꺼낼 수 없다는 투철한(?) 사명의식이 함께 동반됨은 물론이었다.

# 여덟 자녀들과의 재활원 생활 "참 애틋하죠"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았음에도 나름 능숙하게 해결해 나가는데는 지나온 시간들이 밑거름이 됐다. 특히 10년이 넘는 시간동안 지적장애인시설인 재활원에서 생활재활교사를 맡았던 것이 큰 도움이 됐다.

"특별한 일은 아니고 그냥 아이들의 엄마 역할을 해주는 거에요." 교사라는 호칭이 붙었지만 국어, 수학, 영어 등을 가르쳐주는 선생님이라기 보다는 양치질, 밥 먹는일, 옷 갈아입기 등을 보살펴주는 엄마와 가까운 일이다.

재활원의 어린이들도 그녀를 선생님이 아닌 '동자엄마'라고 불렀다.

"한 반 7~8명의 친구를 맡게되요. 함께 생활 하다보면 반도 바뀌고, 다른 친구들도 만나게 되면서 다 내 아이 같아지는거죠." 친구들끼리 싸우거나 고집을 부릴때면 따끔하게 꾸짖기도 한다. 그게 엄마의 역할이기 떄문에.

"혼자 밥을 먹지 못하던 친구가 밥을 먹고 있을때, 대.소변 못가리던 친구가 어느 순간부터 스스로 해결하게 됐을때 그 뿌듯함은 이루 말할 수 없어요!"

갓 초등학교 들어가던 꼬마가 이제는 키 180cm를 훌쩍 넘긴 청년이 돼있고 한다. 그러면서 지금도 당시 생각만하면 애틋해진다고 말한다.

10년간 아이들을 어르고 달래는 과정, 또 이들을 뒷바라지 하기 위해 이러저러한 가사일을 자처해왔던 것이 현재의 그녀를 있게했다.

2년 가까이 지내온 '그룹홈' 이야기도 꺼내놨다.

"지적장애를 안고 있는 성인여성 5명이 그룹홈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살아가는 것이에요. 그냥 각자의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일상을 함께 지내는 것이죠."

"직접 물건을 고르고, 계산까지 할 수 있도록 옆에서 조금씩 도와준 것 뿐이죠." 처지가 비슷한 이들과 모이니 함께 쇼핑을 하고, 영화를 보기도 하는 등 즐거운 기억만 가득한 시간이었다.

생활보조사, 성교육 상담사 일을 하고 있는 신동자 씨. <헤드라인제주>

 
# "나보다 더 어려운 이들을 만나다보면..."

지금은 행복하다고 말하는 그녀지만 처음부터 쉬운 길은 아니었다. 손 부위에 장애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저희 어머니께서 뱃속에 저를 가졌을 때 무슨 약물을 잘못 복용하는 바람에 이렇게 됐다고 하더라고요."

지금도 물건을 집어 들어야 할때면 아무래도 불편하다. 하지만 그보다는 사람들의 시선이 불편할 때가 많다.

"아무렇지도 않아 보이는데, 장애가 있는 것을 알고 나중에서야 놀라는 사람이 종종 있어요." 특히나 거수를 하거나 악수를 할 때나 주로 오른손을 사용해야 하는 한국사회라 더욱 꺼려지는 일이 많았다.

하지만 그녀가 맡고 있는 일들로 인해 이를 극복할 수 있었다.

"직업상 나보다 더 어려운 이들을 만나다보니 그들의 어려움을 알게 되는거죠." 자신의 상황에 대한 감사를, 또 자신의 일에 대한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시간들이었다.

연고를 떠나 낯선 땅에 발을 디딘 것도 힘든 시간이었다.

5년전 요리사인 남편과 결혼하면서 내려 온 제주땅은 왠지 갇히게 된 것 같은 느낌이라 그녀를 우울하게 만들었다. 또 아무런 연고도 없는 곳에서 혼자 지내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다.

경북 문경에서 태어나 집안사정상 특수학교를 다닌 2년을 제외하면 유년시절, 학창시절, 청년시절을 보내며 고향땅의 부모, 친구들과 크게 떨어져본 일이 없기에 더욱 그랬다.

"남편이 그런 것도 아닌데 괜히 끌려온 것 같은 느낌도 들고, 원망스럽기도 하더라고요."

그녀를 다시 집 바깥으로 이끌어내 준 것은 도움의 손길이었다. 잠시 특수학교를 다니던 시절에 알게됐던 언니를 다시 제주도에서 만나게 된 것이다. 기댈 곳이 생기고, 일자리도 소개받으면서 다시 뛸 수 있는 원동력을 얻었다.

"참 많은 도움을 주셨어요. 그 분 아니었으면 아직도 집에 틀어박혀서 나갈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 같아요." 돕는다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 다시금 느낄 수 있는 계기였다.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에도 연신 '기쁘다', '즐겁다' 를 연발하던 그녀. "누군가를 돕는다는 것은 행복을 준다기 보다는 제가 행복해 지는 것 같아요." 비결은 따로 있었다. <헤드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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잎싹 2011-02-16 10:10:59 | 112.***.***.235
지낼수록 향기가 나고 늘 주변을 밝게 해주는 멋진 사람....

들국화 2011-01-31 16:52:08 | 112.***.***.23
행복해지는 비결을 소유한 당신! 웃음이 더 빛납니다.

스마일 2011-01-19 22:39:19 | 119.***.***.210
맨 마지막 말이 가슴이 와 닿네요..

박덕배 어린이 2011-01-18 17:04:09 | 112.***.***.96
문경이 고향이시구나...참으로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배워야할 게 많은 분인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