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사의 고비를 뛰어넘어..."절대 포기 말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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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사의 고비를 뛰어넘어..."절대 포기 말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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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9> 시외버스터미널 관리인 안순실 씨
2번의 암투병, "주어진 일에 충실하면 되요"

업어 키우다시피 한 형제들, 시집을 와서는 시댁 식구들과 슬하의 4남매까지... 하루하루 앞만 보고 달리다 보니 자신의 몸이 망가지는 것을 살펴볼 겨를 따위는 없었다.

갑작스레 떨어진 청천벽력 같은 판정 암 말기. 하지만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고, 끝내 병마를 이겨냈다.

8년쯤 지나던 해 끔찍했던 암세포가 다시 찾아왔다. 암이 재발하면 거의 가망이 없다는 것이 상식이었던가. 찾아가는 병원마다 고개를 젓는다.

하지만, 그래도 포기가 되지 않았다. 정말 끈질기게 버텨내고 지독하게 버텨냈다.

"벌써 7년전 이야기네요." 그에 대한 보상으로 오늘을 맞이한 그녀. 슬며시 미소 짓는다.

휴먼스토리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이야기는 고스란히 그녀가 밟아 온 여정이었다. 어제보다 오늘이, 오늘보다 내일이 행복한 시외버스 여객터미널 관리 아주머니 안순실씨(58)의 삶이다.

# "친정식구, 시댁식구, 우리식구 뒷바라지 모두 내 몫"

안순실 씨. <헤드라인제주>

"그때야 다 똑같죠. 안 힘든 집이 있었겠어요?" 7남매중 장녀로 태어나 나머지 동생들은 거의 그녀의 등에 엎혀졌다. "옛날 제주에서 쓰는 말로 '애기엎개'라 불리곤 했는데 딱 그렇게 지냈어요."

특히 막내동생이 1살 무렵 소아마비를 앓는 바람에 그녀의 어깨는 한층 무거워졌다.

"공부를 하고싶어도 가난해서 엄두를 못냈죠. 국민학교도 간신히 졸업할 수 있었어요." 사정이 어려웠던 터라 다소 이른 나이에 시집을 가게 됐다.

그렇게 결혼한 남편의 처지도 비슷했다. 시댁식구 7남매의 뒷바라지도 고스란히 그녀의 몫이었다.

"산에 올라 고사리 캐다가 등짐의 여유가 있으면 나무 해오고, 매일 그 생활의 반복이었어요." 처음 산에 오를 때는 송충이도 무서웠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억척스러워질 수밖에 없었다.

"무섭다는 것도 덜 서러우니까 무서운 거에요. 절박하면 그런 마음이 들리도 없죠. 일상 생활에서 다치면 못 걷겠다고 난리를 치는 다리 상처도 전쟁터에서 나면 살기 위해 걸어야 하니까요."

한 발자국만 잘못 발을 헛디디면 천 길 낭떠러지인 산을 타며, 그녀는 젊었을 적부터 생사의 고비와 싸워왔다.

"그래도 피하지 않고 꿋꿋이 버텨온 것 같아요. 길을 비켜나지 않고 닥치면 닥치는 대로 이겨내면서요."

# 사우나 수증기와 찬물 마시며 버틴 암 투병생활

본인은 제대로 공부하지 못했지만 자식들 만큼은 공부를 시키고 싶었는데, 형편상 그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전과 한 권 제대로 사주지 못했어요."

고된 삶이 이어지는 가운데 끼(?)가 있던 남편은 어느 날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았다. 여자 홀몸으로 지기에는 너무나 무거운 짐이 지워졌다.

"남의 밭 빌어 보리농사 지으며 살기에는 버티기가 어렵더라고요." 온 종일 일해도 2000~3000원을 겨우 벌었다. 다른 일로 눈을 돌릴 수 밖에 없는 상황까지 내몰렸다.

"예전에 우연치 않게 미용 기술을 배웠었는데, 그 기술로 사우나에서 마사지사로 일했어요." 정식으로 배운 것은 아니었지만, 곧 잘했던 터라 사우나에서는 기술직으로 인정해 줬다.

"하루 몇천 원 벌던 것을 몇만 원 벌었으니 사정은 훨씬 좋아졌죠." 눈물을 삼키던 삶이었지만 그나마 서광이 비치는 듯 했다.

그렇게 살아가던 어느 날, 갑작스레 대장암 판정이 떨어졌다.

"몸은 멀쩡한데 가망이 없다고 하니 황당하더라고요. 암이 급하게 퍼지고 있어 제주도에서는 치료할 수 없으니 서울로 올라가서 치료하라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가망이 없다는 이야기까지 들었는데, 절망은 되지 않았다. 그녀의 뒤에는 책임져야 할 이들이 있었다.

"그때가 1995년쯤이었어요. 지금과는 달리 당시 제주에는 암 병동이 없었죠."

병원비는 그녀의 손으로 직접 마련해야 했다. 할 수 없이 보름을 주기로 제주와 서울을 오갔다. 보름 동안 서울에서 항암치료를 받고, 보름 동안 제주 사우나에서 마사지를 했다.

"병원에서는 좋은 공기 마시고 좋은 음식 먹고 오라고 보내주는 것이었어요." 그녀는 좋은 공기 대신 사우나 수증기를, 좋은 음식 대신 찬물로 허기를 채워야 했다.

"병원에 있을 때는 움직일 엄두도 안 났는데 일을 하다 보면 몸이 움직이더라고요." 그렇게 스스로 병원비까지 충당하며 기어코 암세포를 그녀의 몸에서 몰아냈다.

시외버스터미널 관리 업무를 맡고 있는 안순실 씨. <헤드라인제주>

# '내가 왜 죽어?' 이 악물고 버틴 2라운드

야속하기 짝이 없었다. 간신히 쫓아낸 암세포가 8년쯤 지날 무렵 다시 찾아왔다.

"암이 재발되면 살 가망이 없다고들 하는데, 왜 그런 죽는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을까요?"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안될 것이 없다는 것을 암 투병 과정 중에 배웠다.

'내가 뭘 죽어?'라는 생각으로 버텼다. 얼른 나아 다시 일할 생각만 그녀의 머리를 가득 메웠다. 주사를 너무 많이 맞아서 꽂을 곳이 없어 심장 근처에 링거를 달아야 할 때도 포기하지 않았다.

"장 수술은 장이 유착되면 죽는다고 하더라고요. 꾸준히 움직여주지 않으면 공기가 통하지 않아 유착된다고 선생님이 말씀 하시길래 운동을 시작했죠."

한 걸음 떼기도 힘들었지만 그녀는 살기 위해 움직였다. 따로 운동할 곳이 준비돼 있지는 않았던 터라 병원 계단을 오르락내리락 반복했다.

"처음에는 거짓말 안 보태고 한 계단 오르는데 거의 한 시간 걸렸어요. 허리가 조금도 구부러지지 않아 얼마나 힘들었는지..."

누가 말릴세라 아무도 모르는 새벽 3시께에 걸었다. 한 번 걷고 나면 환자복이 땀에 흥건해져 한 바가지가 흘러나왔다. "땀 한 방울이 떨어지면 깨끗하던 병원 바닥이 시커메졌어요. 몸 안에 약 독이 그렇게 지독했었나봐요."

보통 비슷한 증세의 환자는 진통제를 하루에 6대 정도 맞는다고 했다. 그러나 그녀는 단 1대도 맞지 않았다. "맞으면 몸이 멍청해질까 봐 참았어요. 그러면 안 움직일까 봐..."

병간호하던 자식들은 난리가 났다. 엄마가 의사냐고. 왜 주사를 안 맞느냐고.

그렇게 버텨냈고, 이번에도 승리했다. "결국 이겨냈으니 된 거 아니겠어요?" 함박웃음을 짓는다.

사는이야기 7편의 주인공 이경옥 씨의 소개로 안순실 씨의 삶을 들을 수 있었다. <헤드라인제주>

# "손과 발 멀쩡한데 쉴 틈이 어딨어요?"

"지금은 인공대장을 달고 있어서 사우나에서 일하지 못해요. 벌이는 많이 안좋아졌죠." 7년째 일하고 있는 시외버스터미널 관리. 일은 고돼도 '살아있는데 못 할 일이 무어냐'는게 그녀의 생각이다.

자식들도 장성해서 각자의 자리를 잡았겠다, 50년이 훌쩍 넘어서야 그녀 자신을 위한 삶을 살 수 있게 됐다. "덕분에 시간적인 여유가 많이 생기더라고요. 못 배웠던 한이 남아 다시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했죠."

4년 전부터 동려야간학교를 다니며 초등, 중등, 고등 검정고시에 내리 합격했다. 단 하루도 결석하지 않고, 2년간 회장직까지 도맡으며 열심히 활동했다.

이제 그녀는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올해 방송통신대학 중국어과에 원서를 접수해 놓은 상황이다.

"어렵다고는 하는데 어려운걸 도전하는 게 진짜 도전이잖아요. 학생신분을 갖고 있으면 그나마 공부하게 되는데 이마저도 안되면 손을 놓게 될까 봐요." 늦깎이 대학생의 각오다.

"돈 욕심은 없어요. 투병하면서 돈이 참 부질없다는 것을 알게 됐죠. 다만 남은시간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면서 살고 싶네요."

지금도 꾸준히 봉사활동을 나가고 있다. 특히 그녀의 마사지는 어르신들에게 인기 만점이다. "손과 발이 멀쩡한데 쉴 틈이 어딨어요?"

"아픈 사람들에게 절대 포기하지 말라고 이야기해주고 싶어요. 아무래도 제가 이야기하면 다른 사람이 이야기 하는 것 보다 힘이 실리지 않을까요?"

배움에 대한 열망도 같은 맥락이다. "아무래도 좀 더 배우고 말하면 이해하기 쉽게 잘 말해줄 수 있겠죠." 삶을 통해 녹아든 그녀의 말 한마디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지도 모르지만, 그녀의 입을 통해 다시 한번 소개한다.

"사람은 누구나 건강을 자신하지 못해요. 갑작스럽게 벌어지는 일에 결코 대처할 수 없어요. 그저 주어진 시간에 충실히 살아가면 되는 거에요." <헤드라인제주>

늦은 오후 제주시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만난 안순실 씨. <헤드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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