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하는 일이라고는 '조율' 밖에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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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하는 일이라고는 '조율' 밖에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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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8> 어린이 지킴이, 사회복지사 양권철 씨
영화같은 이야기 "저는 힘만 실어줄 뿐이에요~"

"세상에 저보다 멋있게 사시는 분들이 얼마나 많은데...너무 평범해서 이야깃거리도 없을 거에요!"

한사코 거부하려는 그의 팔을 억지로 붙잡는다. 꼭 멋있게 살거나 대단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려는 게 아니라고.

그런데 이 사람, 본인의 증언과는 다르게 이야기를 나눌수록 다채로운 '멋스러움'을 물씬 풍긴다.

사회복지사 타이틀은 그저 명함일 뿐. 구좌동네 조율사 양권철씨(37)의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 촉망받는 인테리어 업자에서 사회복지사가 되기까지

"벌써 5년 전이네요. 그때까지만 해도 인테리어 회사에서 일을 했었죠." 갓 20살 되던 해, 멀쩡히 다니던 학교는 적성에 맞지 않아 과감히 내던졌다.

동제주사회복지관 양권철 씨. <헤드라인제주>

군대를 다녀와서 전부터 관심을 갖고 있던 인테리어 일에 푹 빠져들었다. 낮에는 실전에서, 밤에는 학교에서 꾸준히 인테리어를 공부했다.

"인테리어 직업이 참 열악해요. 한 달에 하루 이틀 정도 쉬게 되고, 거의 퇴근 시간도 없다시피 일하거든요." 이른 아침부터 시작된 일과는 빠르면 밤 9시, 늦으면 11시께나 끝나곤 했다.

"쉬운 일을 찾기 위해 그만둔 것은 아니에요. 일이 힘들기는 했지만, 적성에도 맞고 참 재미있게 일했었죠." 직업을 바꾸게 된 계기는 당시 만나던 여자친구의 부탁 때문이었다.

"8년간 교제하면서 결혼까지 생각하고 있던 친구였어요. 결혼하려는데 지금 같이 생활하면 같이 살기 힘들 것 같다고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한참 즐기고 있던 일이었지만, 별다른 고민 없이 직업을 다시 선택했다. 그렇게 시작한 3번째 도전이 현재 걷고 있는 사회복지사의 길.

"계약직으로 일을하며 야간대학 사회복지과 과정을 마쳤어요.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면 운명이었던 것 같아요."

# "어린이들 너무 쉽게 방치돼 있어요"

그가 적을 두고 있는 곳은 제주시 구좌읍에 위치한 동제주사회복지관. 연동에 살다 보니 매일 출.퇴근 시간으로 3시간가량 허비되지만, 전혀 개의치 않다. "이 계통에서 저보다 훨씬 대단하게 일하시는 분들도 정말 많다니까요!"

그는 복지관 내에서 아동과 청소년 분야 업무를 주로 담당하고 있다.

"시골동네라 젊은 세대가 많이 없어요. 아이들이 성장하는 데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거죠." 어른들이 일을 나가면 아이들은 방치된다.

"기본예절을 갖추지 못한 것은 물론이고, 의식주조차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는 친구들이 있어요. 그저 안타까울 뿐이죠."

일일이 돌봐주고 어루만져 주려면 한도 끝도 없겠지만, 다행히 혼자는 아니다. 제주사회복지 공동모금회의 프로젝트로 구성된 '이루다 사업단'은 그의 충실한 팀 메이트다.

공동모금회에서 파견된 두 명의 직원은 그와 함께 밤낮으로 고군분투하고 있다.

# 경력 십분 발휘한 '러브하우스'

얼마 전의 일이다. "집이 정말 무너질 것 같은 곳이 있었어요. 그런데 아이들이 딱 사춘기에 접어드는 시기라 그런지 부끄러워서 집을 보여주지 않더라고요."

보수가 필요하다 싶었는데, 마침 인테리어업에 종사하는 한 사장님이 도움을 주겠다고 선뜻 나섰다. 그렇게 시작한 '러브하우스'프로젝트.

초기에는 순조로웠다. 기둥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을 싹 뜯어고치며 조금씩 윤곽을 잡아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도움을 주던 인테리어 사장님이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부득이하게 손을 놓게됐다. "거의 다 지어진 상황이었는데, 회사가 정말 많이 어려우셨어요."

결국 완공되지 못한 채, 다들 발만 동동 구르고 있던 찰나, 소싯적 인테리어업에 몸을 담았던 경력이 빛을 발했다.

"알고 지내던 인테리어 종사자들께 도움을 구했죠. 도배, 타일, 페인트, 보일러 등 다들 너무 쉽게 응해주셨어요." 진두지휘는 그의 몫이었고, 경험을 십분 발휘해 무사히 공사를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아이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어찌나 뿌듯하던지...제 경력이 이렇게 쓰일 수 있다는 것을 보면 저는 정말 행복한 사람이에요."

항상 업무가 늦게 끝나는 바람에 늦은 저녁에서야 양권철 씨를 만날 수 있었다. <헤드라인제주>

# 누릴 수 있는 문화시설 너무 부족해

"시골 지역에는 청소년들이 건전하게 놀만한 문화시설이 전혀 없어요."

한림읍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던 그에게 시내에 사는 이모집을 방문할때마다 찾아갔던 영화관은 잊혀지지 않는 추억이었다.

"어렸을 때 문화를 접하는 것은 정서적인 영향이 정말 커요. 꼭 필요한 부분이에요."

어떤 방식으로 문화를 접하게 하는 것이 좋을까 고민끝에 얼마전 복지관 청소년들을 구성원으로 밴드 동아리를 결성했다. 옛부터 음악에 깊은 관심을 가져오던 터라 거창한 준비는 없지만 조금씩 진전되고 있다.

"아이들에게 동기부여를 시켜주려고 한달에 한번 시내 소극장에서 열리는 밴드 공연을 찾아가곤 했어요."

쉬는 날인 토요일, 집에서 센터로 출근해 아이들을 싣고 시내에서 공연을 관람한다. 다시 아이들을 데려다 주고 집으로 돌아오면 꼬박 반나절 동안 운전대를 붙잡아야 한다.

"공연을 데리고 갔는데 애들이 난리가 나는거에요. 3번째 방문할때쯤 되니까 아이들이 직접 피켓까지 만들어왔더라고요."

소극장에서 공연을 치르던 밴드도, 본인들의 공연에 피켓까지 만들어주는 열성팬들이 나타나니 퍽 감동이었다.

"요청하지도 않았는데 밴드를 하시는 분들이 직접 센터로 방문해 주시겠다고 했어요." 영화같은 스토리의 공연은 내년 2월 19일에 열린다.

# "제가 하는 일은 중간에서 조율만 해주는 거에요"

"조금씩 분야가 다르기는 하지만, 사회복지사로 일한다는 것은 중간 조정자 역할인 것 같아요." 업무에 관한 그의 철학을 엿볼 수 있었다.

"제가 인테리어 일을 할 때도 그렇거든요. 인테리어일이 직접 타일, 도배, 배관 모든 역할을 하는게 아니라 적재적소에 필요한 부분들을 채워놓는 조율사 역할을 하는거죠." 이야기를 이어간다.

"사회복지사도 똑같아요. 자기가 모든 것을 해줄 수는 없어요. 마냥 퍼주다보면 금방 지치기 마련이거든요."

반년 전쯤 종달지역아동센터에서 축구팀을 만들고 싶다는 제의가 왔다. 그 순간 그의 역할은 직접 물품을 지원해주고 교육을 시켜주는 것이 아니었다.

"한국마사회에 요청해 축구용품과 유니폼을 지원받았고요. 행정에 도움을 구해 축구코치 비용을 지원받았죠."

그렇게 탄생한 종달FC. 내친김에 타지역 아동센터의 축구팀과 연계해 친선경기까지 가졌다.

"동네 어른들과 선수 부모님들이 참관해서 응원을 하는데 어찌나 재밌던지...월드컵 올림픽 저리가라 였어요." 한 작품이 탄생했다.

"간혹 사회복지사로 일하는 분들 중에 이런 생각을 갖고 계신 분들이 있어요. 도와주고 나서 '잘 받았죠? 내가 도와줘서 고맙죠?' 하는 생각."

늦은저녁 해안가에서 만난 양권철 씨. <헤드라인제주>

그는 사회복지사에게 있어 자만과 오만은 '최악'이라고 표현했다.

"감히 내가 누구에게 뭘 해준다고 생각하는 것은 말도 안되는 일이에요. 그런 분들이 있기 때문에 내가 일할 자리도 생기는 거고."

"제가 일하는 것도 거창하게 '인류애를 위해서' 같은 이유가 아닙니다. 적어도 내가 사회복지사라면 스스로 부끄럽지는 않아야 하는 거죠." <헤드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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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 2011-01-05 13:17:03 | 125.***.***.107
따뜻한 이야기네요
좋은 이야기 많이많이 들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