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는 살림, 왜 퍼주냐고? "그런 욕심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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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는 살림, 왜 퍼주냐고? "그런 욕심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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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7> 재활용품 수거의 달인 김동은 씨
"쓸 만한 주인 찾아가면 그게 제일 좋더라고!"

1kg당 150원, 꼬박 밤을 세며 거둬들인 100kg의 종이박스 뭉치는 끽해야 1만5000원 가량의 품삯으로 돌아온다. 이마저도 경쟁업주가 어찌나 많은지 여의치 않다.

드물게 보이는 가전제품이나 고철 제품 등이 그나마 위안일까. "라디오나 냉장고, 컴퓨터 같은 쓸만한 물건들이 가끔 나오거든요? 그러면 요 옆에 복지센터 가져다주기도 하고 그래요."

하루 2만원 벌이로, 하루 일당을 충당시켜줄 만한 물건들을 다른 이에게 건네준다? 속세에 찌든 귀로는 일순 이해가 가질 않아 다시 물었다.

"욕심 안나냐고요? 에이~ 그런 욕심은 없어요~"

하루 일당이 1만원이면 어떻고, 3만원이면 어떠랴. 마음은 누구보다 풍요로웠던 김동은씨(48)를 만났다.

# 재활용품 수거..."하루 벌기 빠듯해요"

김동은 씨. <헤드라인제주>

"초저녁부터 시작하면 다음날 새벽 4시정도에 일을 끝내고는 하죠. 재활용품 수거차가 그때 쯤 도니까요." 매일 거친 밤공기를 마주하다보니 건강 관리가 쉽지 않다.

"지금은 잠시 일을 쉬고 있어요." 결린 어깨와 시린 관절이 생각만큼 쉬이 낫지 않아 두 주간 일을 놓고 있다는 그의 직업은 재활용품 수거상. 고되기도 하지만 위험한 일이기도 하다.

"스테인레스를 수거하다가 찢어졌던 자국이에요." 왼손을 보이며 말한다. "이쪽 손등은 아예 감각이 없어요. 신경을 건드렸다나봐요."

한참 일을 할 때는 하루에 두시간 정도밖에 잠을 자지 못했다. 밤새 재활용품을 수거하고 나면, 수거해 온 물건들을 종류별로 구분해야 한다. 겨우 끝내놓고 눈을 붙이면 얼마 지나지 않아 다음날 일과가 시작된다.

현재 몸에 부담이 가는 새벽일을 쉬고는 있지만, 낮 시간 '거래처'는 빠짐없이 챙기고 있다.

"폐지나 박스가 많이 나오는 업소의 종이를 대신 처리해주는 일이에요."

주로 약국이나 마트 등 박스가 많이 나오는 가게를 방문하며 쓰레기를 수거하는 것. 특히 은행을 거래처로 둔다면 더 할 나위 없이 든든하다고 한다. 그러나 몫 좋은 곳은 대부분 차량을 가진 이들이 선점해 버린다.

그의 거래처는 동문로타리와 중앙로타리를 연결하는 일대의 약국과 헌혈의 집.

"종이만 걷어가는 것은 야박하고...대신 그 업소에서 나오는 쓰레기들을 함께 처리해주고 있어요." 함께 수거한 쓰레기를 치우는데 드는 종량제 봉투값도 무시할 수준은 아니다.

# 혈혈단신 젊은시절..."예전에 비하면야"

충북 제천에서 태어난 그는 한때 직장생활을 하기도 했다. "구미 쪽에 있던 공장에서 일을 했었죠. 재생 폴리에스텔이라고 아세요? 인조 모발을 만드는 재질인데."

그러다 우연찮은 기회에 부산에서 배를 타기 시작했고, 자연스레 제주에서 둥지를 틀었다.

"제주에 내려 온 시기는...한 25년인가 26년쯤 됐겠네요. 한림에 있는 용역에서 일을 했는데 용역 사장이 인부들 임금을 떼먹고 도망가는 바람에 막막했었죠."

다시 배를 타보기도 하고, 용역일을 찾기도 하고, 또 식당 배달은 물론 주방 홀 서빙까지 해봤다. 젊었을 적의 그는 해보지 않은 일이 없었다.

재활용품이 가득 쌓인 김동은 씨네 앞마당. <헤드라인제주>
들어서는 초입부터 재활용품이 가득 차있다. <헤드라인제주>

"당시 여인숙에 묵으려면 한달에 17만원 정도였어요. 정말 하루벌어 하루 방세 내기가 빠듯했죠." 일하는 도중 새참이 나오기는 했지만, 돈을 아끼기 위해 한달에 식사를 10끼밖에 먹지 않았던 적도 있다고 한다.

젊은 혈기로 뛰어들다보니 몸이 금방 망가졌다. 어깨에도 무리가 갔고, 두 다리가 한꺼번에 부러진 적도 있었다. 결국 몸이 따라가지 못하는 용역일을 뒤로하고 재활용품을 모으기 시작했다.

"한 9년정도 된 것 같네요. 지금은 그때에 비하면 정말 살기 좋아진거죠."

# "갖다 팔라고요? 그런 욕심은 없어요"

사정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것. 벌어들이는 돈으로 집세를 내는 것도 쉽지 않다. 비가 오거나, 눈이 오거나, 바람이 조금만 세게 불어도 일을 할 수 없다.

사정을 아는 주위 사람들은 노숙인들도 정부 보조금으로 70만원씩 받는다며 왜 그러고 사냐고 타박을 놓기도 한다. 독신에 몸까지 성치 않으면 충분히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그럴때면 그의 대답은 한결 같다. "아직 일할 능력이 있는데 왜요? 나보다 힘든 사람들도 얼마나 많은데..."

재활용품을 수거하다보면 쓸만한 물건들이 쏟아져 나온다. 쓸만하다 뿐이 아니라 한번도 사용하지 않은 새 물건도 수두룩하다.

"이불이나 가전제품은 말 할것도 없죠. 조금 사는 아파트 단지에서는 유명 메이커인 것 같은데 상표조차 안 뗀 옷들도 버려져 있어요."

없는 물건이 없는 김동은씨의 앞마당 창고. <헤드라인제주>

그렇게 수거한 물건들 중 쓸만한 것은 주위의 어려운 이들에게 전해진다.

"컴퓨터나 노트북, TV나 오디오 다 사용할 수 있는데 버려져 있는게 많아요. 쓸 수 있는 사람들 가져다 주면 얼마나 좋아하는데요." 고물로 처리해봤자 얼마되지 않는다고 덧붙인다.

쓸만한 물건들은 굳이 고물로 처리할 것이 아니라 중고로 매매할 수도 있지 않느냐고 물었지만, 그에게는 중요치 않은 사실이었다. "아까 말씀 드렸잖아요 그런 욕심은 없다고."

"얼마전에 식당에서 사용하는 대형 냉장고 있잖아요? 그 냉장고를 얻게 됐는데, 연고지 없고 오갈데 없는 노인들이 모여사는 교회가 있어서 얼른 가져다 줬어요."

뿐만 아니다. 왕년에 안 해본일이 없다보니 손재주도 좋아져 주변 이웃들은 수도배관이나 전기선 연결이 필요할 때마다 그를 찾는다.

옥상에는 재활용 플라스틱이 쌓여있다. <헤드라인제주>
한 켠에 쌓여있는 재활용품. 이불, 은수저, 전자렌지 등 다양한 물건들이 쌓여있다. <헤드라인제주>

# "주인 찾아가는 게 제일 좋죠"

임시 창고로 사용하고 있다는 그의 집 앞마당을 찾아가보니 진 풍경이 열렸다. 없는 물건이 없는 만물상이었다.

에어컨, 우산, 자전거, 세탁기, 프린터기, 컴퓨터, 노트북, 핸드폰, 전자렌지... 모두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온갖 종류의 물건들이 산을 이뤘다.

"버릴 것이 많기는 해도 거의 사용할 수 있는 물건들이에요. 버려질 수도 있겠지만 누군가 사용하는게 더 좋지 않겠어요?"

쉬는시간을 뺏은 불청객도 손님이라고 계단 구석에 있던 깨끗한 난로를 가리키며 "날도 추운데 필요하면 사무실 가져가서 사용하세요."라고 말한다.

"여기 쌓여 있어봤자 별 거 있겠어요? 다 쓸 수있는 사람이 쓰는게 제일 좋은거지." 방 한켠에 고이 모셔둔 이불 뭉치는 곧 인근의 복지단체로 주인을 찾아갈 예정이다.

쌓여진 물건들은 다시 분류해 놓고 처리해야 한다. 가뜩이나 건강이 성치 않은 그가 큰 수고를 감당해야 할 것은 뻔한 일. 그래도 대수롭지 않다는 듯 답한다. "항상 하던 일인데요 뭐~"

비록 경제적인 형편이 썩 만족스럽지는 않을지라도, 더 어려운 사람도 있는데 도와줄 수 있는 것이 어디냐며 활짝 웃는다.

짧은 시간 그와의 만남, 어찌보면 평범했지만 어찌보면 편협했던 '풍요'에 대한 고정관념을 여지없이 깨뜨렸다. <헤드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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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단 공무원 2011-01-04 14:06:21 | 59.***.***.23
두 신문 비교할게 못되죠
찌라시와 정론지의 차이인데

박덕배 어린이 2011-01-04 13:34:26 | 112.***.***.96
미디어제주는 하얀 연탄이다. 더 이상 태울게 없어 춥다.
헤드라인제주는 검은 연탄이다. 매번 우리를 따스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