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경야독' 빵가게 실장님, "보람 느끼며 사는거죠"
상태바
'주경야독' 빵가게 실장님, "보람 느끼며 사는거죠"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는 이야기]<6> 작은 토스트 가게 아줌마 이경옥씨
때 늦은 고입준비, "공부가 얼마나 즐거운데요~"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하나둘 몰려드는 하교 시간. 빨간 앞치마를 입은 토스트 가게 아줌마가 맛깔스러운 경상도 사투리와 함께 반갑게 맞아준다.

"아들~ 토스트 여 나왔네~"

몰려드는 손님, 토스트의 종류만도 수십 가지에다가 주스나 커피 등의 음료까지 뽑아내려면 정신이 없을 법도 하건만, 찾아온 이들과 쉴 새 없이 이야기를 나누며 능숙하게 하나씩 처리한다.

"이제 1년째 돼가는 것 같네요." 그다지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아줌마'로서의 내공 덕분인지 어떤 주문이 와도 척척이다.

동문로터리 토스트 가게 아줌마 이경옥씨(53)를 만나봤다.

# 토스트가게 '실장님' "우리 집 같이!"

이경옥 씨. <헤드라인제주>
"마트나 식당일 등 술장사 외에는 안 해본 일이 없어요." 변변한 기술이 있었던 것은 아닌지라 궂은 일 마다치 않고 살아왔다. 지금 일하고 있는 가게도 그녀의 가게는 아니다.

"사장님이 알지는 모르겠지만 딴에는 우리 집처럼 일하고 있죠." 손님을 대하는 데 있어서 조금도 '객식구'스럽지 않은 넉살을 본다면 누구나 사장님이라고 오해할 법 하겠다.

작은 가게지만 그녀는 이곳에서 '실장님'으로 통한다.

"이 일을 하기 직전까지 마트 청과코너에서 일했었는데, 그러면 지금 받는 봉급보다 훨씬 많이 받을 수 있어요. 적어도 한 달에 150만원은 받았었죠."

지금 받고 있는 봉급이 얼마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녀는 경제적 논리 때문에 토스트를 굽는 것은 아니었다. "돈을 떠나서 무슨 일이든 보람을 느끼면 되는 거죠."

이야기 나누는 것을 좋아하는 그녀. 손님을 맞이하며 안부를 묻기도 하고, 어린 학생들에게는 이런저런 조언을 건넨다.

# 낮에는 빵을 굽고...밤에는 책을 읽고...

"하루일과요? 집이랑 가게랑 학교밖에 몰라요." 오전 일찍 가게에 나와 5시까지 일을 하고, 곧바로 학교로 향해 늦은 밤까지 책과 씨름한다.

올해 초부터 그녀는 동려평생학교에서 고입 검정고시 준비를 하고 있다.

"부모님께서 어렸을 적부터 집안일 도와야 한다며 과일을 따라고 시키셔서요. 공부하고 싶어도 할 수 있는 상황이 못됐죠." 사과로 유명한 고장 대구에서 태어난 그녀는 유년시절부터 부모를 도와야 하는 통에 배움에 대한 열망을 채우지 못했다.

결혼 후 제주에 내려와서도 배움은 고팠지만, 하루하루 살아가는 형편에서 공부를 한다는 것은 시도부터가 쉽지 않았다.

"딸아이 둘이 대학을 다니는데 올해 큰 애가 졸업을 앞두고 있어요." 조금 여유가 생기자 다시 펜을 들 결심이 생겼다고 한다.

"얼마 전에 중학교 졸업장을 받는 검정고시를 봤는데, 4과목에서 영어만 조금 틀리고 나머지는 다 합격했어요! 영어만 재시험 보면 졸업장이 생길 거에요."

"어느 정도 수익이 보장되던 일을 제치고, 조건이 조금 열악하더라도 공부하는 시간을 맞출 수 있는 일을 선택한 것이죠." 물론 지금 하고 있는 일 또한 매우 만족스럽다는 이야기를 빼먹지 않는다.

능숙하게 토스트를 굽고 있는 이경옥 씨. <헤드라인제주>
# "언니 오빠들 얼마나 대단한데요!"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부하는 일을 이어가는 일이 쉬운 일만은 아닐 터.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하는 일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손사래를 친다.

"학교에 와보면 아시겠지만, 정말 'ㄱ'자도 모르는 분들이 태반이에요. 연세가 70이 넘고 90가까이 되시는 분들도 다시 공부를 시작하겠다고 오시는데, 너무 존경스러운 거 있죠."

53세, 옛날 같으면 하늘의 뜻을 아는 나이라고들 하지만, 학교에 가면 그녀는 막내뻘이다.

"먹고 살기도 바쁜 건 다 마찬가지에요. 그러는 와중에 글도 모르는 사람들이 밤에 와서 공부를 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죠. 언니 오빠들 보면 참 대단해요."

50~60대 '언니, 오빠'들에 대한 칭찬이 계속 이어진다. "몸은 늙었다 하더라도 얼마나 젊게 살고 있는지...스스로 낙오되지 않고 의식을 갖고 살아가는 거잖아요."

학교를 찾아오는 이들 중에는 말 상대가 없어 치매나 우울증을 앓고 있는 학생들도 더러 있다고 한다. "그래도 젊은 제가 말상대를 해주면 어찌나 좋아하시는데요."

# "힘들게 사는 분들 얼마나 많은데...저는 행복하죠"

자신이 살아가는 건 아무것도 아니라며 학교에 꼭 소개해주고 싶은 분이 있단다.

"지금 터미널 매표소에서 일하는 언니인데, 여자의 몸으로 얼마나 대단하게 살고 있는지 몰라요."

이야기 속의 언니는 어렸을 때부터 동생들을 거의 먹여 살리다시피 하고, 커서는 4남매를 혼자 업어 키우면서 고생이라는 고생은 모두 겪으며 하루하루를 버텨왔다고 한다.

"그러다가 갑자기 암 선고를 받았었대요. 그것도 대장암 말기. 의사 선생님도 가망이 없다고 했었는데 그런 죽을 고비까지 이겨내고 지금 공부를 하고 있다니까요."

사연 없는 이가 있겠느냐마는 "꼭 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다"는 그녀에게 있어서는 특별한 삶이었다.

자신보다 힘들게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는 생각과 함께 희망을 놓지 않고 살아가야겠다고 다짐하게 만드는 그런 이야기.

"아이들도 다 자랐겠다 이제 하루하루 행복하죠. 특별한 걱정거리가 있을 것도 없고." 앞으로 남은 공부 열심히 하고, 가능하다면 조그만 가게를 차렸으면 한다는 그녀.

낮에는 밭을 갈고 밤에는 책을 읽는다는 고사성어 '주경야독'은 그만큼 고된 노력이 동반돼야 한다는 속뜻을 담고 있지만, 삶의 모습이 비슷하다 할지라도 행복한 표정을 짓는 그녀에게 꼭 들어맞는 표현은 아닌 듯도 싶다. <헤드라인제주>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