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메산골 향 물씬 '할아버지', "나이가 대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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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메산골 향 물씬 '할아버지', "나이가 대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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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70세 백발 '만학도' 박홍배 씨
"이 학교에서 내가 친구 제일 많을걸요?"

"두메산골~" 첫 접견부터 심상찮다. 만국(?) 공통어 "여보세요"를 제쳐놓고 대뜸 "두메산골"이라 외치는 그는 70세 백발의 만학도 박홍배씨다.

적잖은 나이라고 칭하기도 민망하겠다. 대놓고 말하자면 가득 찬 나이. 그러나 그의 열정을 가득 채우기에는 70년이란 세월은 너무 큰 모자람이 있었다.

두툼한 가방 하나 등에 짊어지고 눈발을 헤치며 인문대학 강의실을 향해 묵묵히 걷는 그를 뒤따랐다.

# 40년 공직 뒤로한 '만학의 길'

박홍배 씨. <헤드라인제주>

40여 년을 공직에 몸담아왔다. 지금은 농림수산식품부로 명칭이 바뀐 옛 농림부가 그의 직장이었다.

"보통 공무원이라면 한 지역에 오래 머무는 경우가 많다던데, 이곳저곳 돌아다니기도 많이도 돌아다녔죠." 강원도 오지부터 시작해 부산, 대전 등에도 발령을 받았다.

제주와 인연이 닿은 것은 1989년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제주도지소장으로 1년 반 동안 근무했을 당시다.

"가족들과 떨어져 있기는 했지만, 제주도가 상당히 좋더라고요. 언제 한번 다시 와 봐야겠다 막연히 생각은 하고 있었죠."

우연찮은 기회에 배움의 길이 열렸고 2008년 제주대학교 국문학과로 편입하기에 이른다. 지금은 손자뻘 학생들과 함께 동고동락하며 기숙사 생도를 자처하고 있다.

# 해발 1200m 까마득한 '두메산골' 냄새

10년 전 정년퇴임을 할 당시에는 세상 금 밖으로 쫓겨나는 줄로 알았다는 그. 강원도 해발 1200m 가량 되는 산꼭대기에 보금자리를 틀었다.

"예전에는 화전민 부락이었던 곳이 이제는 고랭지배추 농사지로 활용되고 있죠." 경사가 심해서 트랙터나 경운기 등의 농기계를 사용할 엄두조차 나지 않는 곳이란다.

지금도 소와 함께 농사를 짓는다는 그곳, 인근 분교에 가려면 5km를 걸어야 한다는 그곳은 문자 그대로 까마득한 '두메산골'이었다. 살짝 들뜬 표정으로 그곳에 대해 한참을 설명하는 그에게서도 첫 인사 같은 '두메산골' 냄새가 배어 나왔다.

"산골 사는 사람들은 겨울이 되면 농사를 짓지 못해 읍내로 내려가고는 해요. 날이 추워지면 적적할 때가 많았죠." 간혹 들러주는 집배원이나 사냥꾼, 사진작가 등이 벗이 되곤 했다.

"평소에도 문학에 관심이 많아 나이 육십 퇴임하던 때에 시집을 한 권 냈었죠. 그 이후로도 산골에서 시나 산문에 대해 꾸준히 공부했는데, 혼자서 공부하니까 진도가 안 나가더라고요." 8년간의 산골짜기 생활을 뒤로하고 만학의 길을 걷게 된 계기다.

그러면서 정가 '막걸리 두 됫박, 외상도 좋소' 짜리 시집을 건네준다. '할아버지 잠지'라는 제목의 시집은 익살스러우면서도 진솔한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었다.

연신 전화벨이 울린다. 손자뻘 친구들과 통화 중인 박홍배 씨. <헤드라인제주>

# 공부 욕심 많은 '할아버지 학생'

조금은 특별한 '할아버지 학생'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누구보다 열심이다. 수업 시간은 무조건 출석하고, 꼬박꼬박 과제도 챙기며, 더듬더듬이지만 발표 준비도 열심이다. 또 교우관계는 어찌나 원만한지 친구도 가장 많다고 자부한다.

"모두 '할아버지'라고 불러요. 대화할 때도 할아버지, 토론할 때도 할아버지. 교수님들도 '할아버지가 말씀하시는 바에 의하면'이라고 수업 중에 말씀하세요." 그는 '할아버지'라는 애칭을 썩 마음에 들어 했다.

국문학과 학부생활 과정은 올 2월에 끝마치고 졸업장을 받았다. 하지만, 스스로 배움이 부족하다고 느낀 그는 철학과 대학원 과정을 밟고 있다.

"굳이 국문학이냐 철학이냐는 중요하지 않아요. 사람 살아가는 인문학에 대해 배우고 싶었던 것이지...시간만 허락한다면 중문과 공부나 사학과, 사회학과 공부까지 모두 배워보고 싶어요."

대학원생인 그의 시간표는 대체로 여유롭지만, 남는 시간마다 다른 과목을 청강하며 배움의 영역을 넓히고 있다.

"교수님이 싫어할 이유가 없을걸요. 지각이나 결석 한번 안 하고 맨 앞줄에 앉아 졸지도 않는 모범학생인데." 해맑은 미소를 어 보인다.

눈발이 흩날리는 겨울날 만난 박홍배씨. <헤드라인제주>

# "어찌나 고마운지 눈물이 핑 돌았어요"

이어 친구들에 대한 자랑을 늘어놓는다.

"아까 말했죠? 우리학교에서 친구가 제일 많을 거라고."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학교 내에서 마주치는 이들마다 그의 친구다. 실제로 기숙사 건물에서 인근 매점까지 걸어가는 동안에 인사를 나누는 이들만 예닐곱이었다.

특히 손자뻘 친구들과의 추억은 유독 기억에 남는다.

"눈이 펑펑 오는 날 할아버지 시험공부 해야 한다고 노트 필기 한 것을 복사해서 갖다 주러 온 친구도 있었고...크리스마스라면서 선물을 주고 가는 친구도 있었는데 그때는 정말 눈물이 핑 돌았어요." 두메산골을 회상하던 때의 미소가 다시 한번 입가에 떠올랐다.

"또 어버이날에 쭈뼛쭈뼛 다가오더니 카네이션을 꽂아주는 학생도 있었어요. 다들 너무 고마운 친구들이죠."

받기만 한 것은 아니다. "요 앞에 방글라데시 유학생이 하나 있어요. 이 친구가 식당에서 밥을 먹는데 숟가락 두 개로 밥을 먹으면서 어찌나 어설프게 먹던지..." 그날부터 일주일간 식사때마다 젓가락질을 가르쳐줬다.

"일주일 배우니까 젓가락질도 조금 하더라고요. 고마웠는지 집으로 초대해서 저녁을 대접해주던데요." 방글라데시 친구는 요즘 '돌아와요 부산항'에 노래를 가르쳐 달라며 조르고 있다.

눈발이 흩날리는 겨울날 만난 박홍배씨. <헤드라인제주>

# "친구들아! 해볼 것 다 해봐라!"

그는 글을 쓰는 이유에 대해 '살아온 흔적을 남기고 싶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지금 학생들과 대화해보면 불과 반세기 차이인데 내가 생활했던 것을 학생들이 이해하지 못하더라고요. 사학과에서 배우는 이야기들은 한참 옛날이야기들이지 40~50년 전 이야기를 배우지는 않죠."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는 세상에서 50년 전 이야기도 이제 까마득해지고 있다. "이런 건 할아버지가 알려줘야죠."

또 어린 친구들에게 이것만은 꼭 새겨들어야 한다고 '당부의 말씀'을 들려준다.

"학생이었을 때 하고 싶은 것들 원 없이 다 해봐야 해요.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 있을 적에 못해본 것이 없어야죠." 사회라는 울타리 밖으로 나오면 자신을 보호하기도 벅차다고 말한다.

"학창시절에는 무슨 일이라도 활기차게 열심히 한다면 흉볼 사람도 없고 평가할 사람도 없어요. 그럴 때 간부도 해보고, 연극도 해보고, 연애도 해봐야지 언제 마음껏 해볼 수 있겠어요?" 뼈가되고 살이되는 조언이리라.

한참을 주거니 받거니 이야기하면서도 시종 미소를 잃지 않았던 할아버지. 다시 눈발이 휘날리는 길을 성큼성큼 걸어가던 할아버지는 또 한 명의 친구를 얻은 듯하다. <헤드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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