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천에 널린 택시? "'친절'만이 살 길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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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천에 널린 택시? "'친절'만이 살 길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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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4> 공부하는 '글로벌 택시' 기사 신동철 씨.
확고한 철학, "친절하면 2500원은 8만원이 됩니다"

넘쳐나는 공급으로 인해 총체적 난국의 길을 걷고 있는 제주도내 택시산업.

20년전 관광제주를 선도하던 택시는 점차 세력을 확장해 오던 렌트카 산업과 최근들어 시장을 잠식한 대리운전 등의 영향으로 점차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는 추세다.

많은 택시 기사들이 이같은 어려움을 호소하면서 정책적인 개선 방안이 마련되는 것을 바라만 보고 있는 가운데, 스스로 고된 '배움의 길'을 자처하며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는 이가 있어 눈길을 끈다.

택시기사 신동철씨(53). 남 부럽지 않은 일본어 실력을 지닌 그는 제주도가 선정한 '글로벌 택시' 운전사의 1인이다.

글로벌 택시기사 신동철 씨. 그는 제주지역에서는 보기 드문 7인승 대형택시를 운행하고 있다. <헤드라인제주>

"그냥 평범하게 택시 운전을 한다면 봉급 받는데는 문제 없고, 밥이야 벌어 먹겠지. 하지만 미래가 없잖아요?"

지금까지는 일본에서 제주를 찾아오는 관광객들이 많았다지만, 앞으로 중국 시장의 경쟁력이 좋아질 것이라며 최근 들어서는 중국어 공부에 매진하고 있다.

황금같은 주말 저녁, 호탕한 성격의 그를 찾는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었지만 모두 마다하고 이른 시간부터 책상에 앉아 중국어 교본을 펴들었다.

# 꾸준한 중국어 공부, "내친김에 가이드 자격까지"

그는 제주도에서 선정한 글로벌 택시기사다. 외국 관광객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 기본적인 통역이 가능한 기사들에게 부여한 이 글로벌 택시는 자격요건을 갖춘 기사가 많지 않아 100명도 채 되지 않는다.

현재 영어를 구사하는 기사가 4명, 중국어 4명, 일본어는 그보다 조금 많은 70명이라고 한다.

"제주도는 옛날부터 일본과 여러 교류가 있었기 때문에 일본어를 구사하는 기사가 많아요. 그런데 최근들어 일본이 장기적인 경제침체를 겪으면서 일본에서 오는 손님이 정말 많이 줄었어요. 엔화가 비싸지기도 하고..."

일본 관광객을 전문적으로 맞아오던 그의 일거리도 덩달아 줄어 들었고, 곧 그는 다른 곳으로 눈길을 돌렸다. "일본인 관광객이 감소한 반면에 증국 관광객은 엄청나게 늘었죠."

오늘도 중국어 교본과 씨름하고 있는 이유다. 새로운 언어를 배운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임을 알고 있기에, 중국어를 공부하겠다고 뛰어드는 기사들은 많지 않았다. 그에게 있어서는 경쟁자 없는 시장인 '블루오션'을 향한 항해인 셈.

"매일 저녁 2시간씩 중국어 공부를 해 온지 벌써 4개월이 지났네요." 낮 시간에는 본업에 종사하다가 저녁이 되면 꼬박꼬박 중국어 학원을 찾는다. 이 후의 시간에도 복습은 필수다.

"처음에는 어려웠는데 이게 익숙해지다보니 참 재미있더라고요. 당초 1년 공부를 목표로 시작했지만, 내친김에 반년 정도 더 공부해서 가이드 자격까지 따볼까 해요."

# 공부하는 목적, '현재'가 아닌 '미래' 때문

그가 영역을 확장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지만, 어느정도 수익이 보장된 탄탄한 기반은 진작 마련돼 있었다.

신동철 씨. <헤드라인제주>

"다른 영업용 택시나 제주시내권에서 일반 손님을 태우는 택시보다는 아무래도 사정은 훨씬 좋죠. 요즘 일본 관광객이 줄어들기는 했어도 사정이 심하게 열악해진 것은 아니에요."

특히 일본 웹사이트 내에 개인 홈페이지를 운영하면서 예약 손님을 받는 등 다양한 마케팅 활동을 벌여오던 터라 손님이 끊길 염려는 없었다. 그러나 그는 안주할 수 없다고 말했다.

"앞으로의 비전을 보고 시작한 공부에요. 일본 시장은 점점 더 축소될테고, 중국 시장은 점점 더 커질텐데 미리 준비해 놓지 않으면 도태될 수밖에 없는거죠."

그렇게, 그의 목적은 '현재'를 살아가기 위함이 아닌 '미래'를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 "중국관광 인프라 턱 없이 부족한데..."

"뻔히 중국인 관광객이 늘어나고 있지만, 제주도가 이에 대한 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어요." 일선 현장의 날카로운 목소리를 전했다.

"이렇게까지 늘어날 것을 예상하지 못했는지 관광지마다 중국인에 대한 시설은 턱없이 부족해요. 도지사는 매일 중국 관광객을 강조하지만 현장의 인프라 구축은 하나도 안돼있어요."

그러면서 최근 제주도의회에서 중국인 전용 식당 관련 예산이 대폭 삭감된 것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중국 관광과 관련한 정보에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특히 운수업에 대한 배려가 너무 부족합니다. 도에서 택시기사들의 외국어 교육을 지원해주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고작 학원비 2달치를 지원해 주는 것에 불과하더라고요." 관계자는 결국 예산타령을 했단다.

"새로 배우는 언어인데 한 두달 교육받는 것으로는 어림도 없어요. 적어도 의지를 보이는 기사에게는 1년 정도 학원비를 지원해줘서 충분한 교육이 될 수 있도록 도와야해요." 그는 머지 않아 제주도에 직접 이같은 의사를 전달하겠다고 말했다.

# '쌩쌩' 신호무시 차량..."어찌나 민망하던지"

침체된 제주지역의 택시시장이 활성화 되기 위해 현장에서는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지 살짝 묻자 그는 곧 명쾌한 해답을 내려줬다.

"기사들이 찾아오는 관광객들에게 더 친절하게 대해 제주를 다시 찾아오게 만드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 아닐까요?"

제주관광의 일부에서 제기되는 '불친절' 문제는 하루이틀이 아니고, 이는 택시기사들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러다보니 관광객들에게 제주택시가 불친절하다는 것은 이미 공공연한 사실이 되었다고 한다.

"내가 아니면 친절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해야 해요. 틀에 박힌 이야기지만 '나 하나만' 하는 생각이 모두의 어려움을 가져오는게 아닌가 생각이 드네요."

그의 진짜 승부수는 '외국어' 구사 능력이 아닌 '친절'이었다.

친절도 친절이지만 운수업계 종사자들의 무딘 '위기의식'에 대해서도 일침을 가했다.

신동철씨의 홈페이지는 짧은 본인 소개와 함께 제주의 명소를 안내하고 있다. <헤드라인제주>

"택시고, 버스고 할 것 없이 많은 운수업 차량들이 시외 운행중에는 빨간불이어도 그냥 내달리고는 합니다." 지역의 차가 신호를 무시하고 달리면 도외에서 방문한 렌트카들도 이들을 따라가곤 한다.

"간혹 외국인 손님들이 묻더라고요. 왜 이곳은 차들이 신호를 지키지 않는지...그 사람들에게 우리나라는 아직 후진국이라고 말 할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요?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그저 난감할 뿐이죠."

급한 사정이 있을 것이라 대변하면서도 씁쓸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고 말했다.

"차라리 도에서 교통 운행량이 적은 곳은 점멸식으로 신호등을 바꿔주던가 하는 조치를 마련해야지, 이대로라면 곤란해요."

# "친절하기만 하면 2500원이 8만원이 됩니다"

친절에 관한 그의 철학은 몸소 체험한 경험에서 비롯됐다.

"한 번은 일본인 관광객 부부가 찾아왔는데, 관광하던 마지막 날 저녁식사에 저를 초대하더라고요. 업무상으로가 아닌 개인적으로 초대하는 거라면서..."

기사님이 대해주신 것을 생각하면 그냥 떠나기가 너무 아쉽다고 말한 부부는 지속적으로 연락을 주고 받아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공교롭게 나이까지 같았던 터라 그날부터 친구가 됐다.

"지금도 그 부부는 1년에 한번씩 놀러오고, 일본에 있는 다른 친구들을 소개해주기도 합니다. 이런 일이 있을때마다 얼마나 뿌듯하고 자부심을 갖게되는지 모를꺼에요." 진심은 통하는 모양이다.

이어 그의 철학을 확고하게 했던 또 하나의 계기를 들려줬다.

"공항에서 시외버스터미널까지 간다는 손님을 태웠는데, 원래 하던데로 '네 감사합니다'하고 맞아줬죠. 그러자 손님이 놀라면서 보통 터미널까지 간다고 하면 택시기사들은 싫어하지 않느냐고 묻는거에요."

어디를 간다해도 손님에게는 늘 '감사합니다'고 말하는 그의 친절에 손님은 곧바로 화답했다.

"터미널에 가서 버스를 타려던 손님이 기사님이 친절해서 좋다며 목적지인 성산포까지 그대로 가겠다고 말하더라고요." 수협 관계자였던 손님은 성산포 일정을 마치고 남원, 서귀포를 경유하는 동안 택시 한대만을 이용했다.

"친절하면 2500원 벌 것을 8만원 벌게 된다니까요!"

늦은 저녁 인터뷰에 응한 신동철씨. <헤드라인제주>

# "내 꿈? 3개국어 능통한 최고의 택시기사!"

그의 꿈은 제주도 최고의 택시기사가 되는 것이다. 안전은 물론이거니와 친절, 비용까지 모든 부분에 있어서 최고가 되고 싶다는 의지를 밝혔다.

"중국어 공부를 끝마치면, 이번에는 영어 공부에 도전해보고 싶어요. 어찌보면 중국어나 일본어보다 흔하게 겪는 언어지만 유창하게 구사하기는 어렵잖아요." 3개국어가 가능한 글로벌 택시기사, 쉽지 않은 길이겠지만 일차적인 그의 목표다.

"아주 전문적인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관광객들이 제주를 찾아왔을때 불편함이 없을 정도로 돕고 싶어요. 다시 찾아올 수 있게끔." 건강을 꾸준히 유지하면서 적어도 78세까지는 택시를 몰겠다는 각오까지 다졌다.

"이렇게 이야기 하는게 스스로에게도 동기부여가 되는 것 같네요. 이정도 각오 아니고서야 제주관광이 어디 살아 나겠어요?"

호탕한 웃음을 지어보이는 그.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는 제주관광 시장의 숨은 주역은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헤드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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