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일장 '산타 아저씨', "돈 많아서 돕는거 아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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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일장 '산타 아저씨', "돈 많아서 돕는거 아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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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3> 오일시장 양말가게 부사장님 이정훈 씨
"기부요? 내복 한벌이면 얼마나 따뜻한데요"

"자~ 양말이 오백원~ 천원~"

아무리 화려한 필력을 지니고 있다한들 결코 문자로는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생생한 라이브로만 느낄 수 있는 맛깔스런 목소리가 귀를 울리는 그곳.

궂은 날씨 때문에 한가한 편이라지만 제주시 오일시장은 몰려든 사람들로 하여금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이정훈 씨. <헤드라인제주>
장터의 중심에 있는 속옷가게에서 유난히 어려보이는 듯한 젊은 청년이 눈에 띈다.

주목 받는 이유가 어려보이기만 해서는 아닌 듯 하다. 작은 체구에도 바삐 손과 발을 움직이며 종횡무진하고 있다.

"저 전혀 안 어려요." 올해나이 벌써 33세라는 이정훈씨. 정신없이 바쁜 그를 붙잡고 이것저것 캐묻기 시작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손님들이 난입하기 시작한다. 오후 2시를 훌쩍 넘긴 시간, 점심을 거르는 것은 다반사다.

"누가 입을거? 아가씨? 얇은거 드려 기모로 드려?" 어머니뻘 정도 될 법한 손님에게 말을 툭툭 놓는다. 하지만 웃고 있는 손님의 모습으로 보아 장담컨데 기분을 상하게 하지는 않는다.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닌데 너무나 자연스러운 말투. "어렸을때 부터 배운게 도둑질이에요~" 오래전부터 시장을 일터로 삼아온 부모님의 영향이 적지 않았다.

5일에 한 번 돌아오는 장이지만 뜨내기들만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성실하고 싹싹한 그는 이미 상당수의 단골을 확보해 놓았다.

"글쎄..."하는 손님들에게 "직접 만져봐야 알아~"라고 너스레를 떨며 설명하고 있는 그에게 더 질문을 던지기에는 너무나 미안했다.

편한 시간에 만나서 차분히 이야기하기로 약속하고 불청객은 빠져나왔다.

# "시장일? 결코 쉬운일만은 아니죠"

이튿날 만난 그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왁자지껄한 시장에서는 영락없는 '장삿꾼'이었지만, 사석에서 만나니 사근사근 말을 이어가는 다소 이중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시장일이요? 전업으로 시작한 것은 2003년도니까...8년정도 지났네요" 대학교에서 요리를 전공한 그는 제과.제빵 기술을 연마하며 베이커리를 운영하는 꿈을 꿨었다.

아직 배우는 단계였지만 거치는 곳 마다 특유의 성실함은 물론 빵 굽는 기술까지 제법 인정받던 그였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잠시 일을 쉬려 하는데,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아서 사건이 터졌죠."

시장에 다니던 아버지가 차에 올라타면서 새끼 손가락이 끼었다. 참 이상한 것은 차량 조수석에 위치한 오른쪽 문을 닫았는데 왼쪽 손가락이 끼었다는 것.

"상상을 해보세요 이게 말이나 되는 상황인지. 문을 닫으면서, 억지로 몸을 틀면서, 손가락을 집어넣지 않는 한 이런일이 생길까요?"

지금도 그때만 생각하면 신기하다는 듯 웃음을 터뜨린다. "어쩔 수 없이 돕기위해 뛰어든 것이 지금까지 오게됐네요. 지나고나서 생각해보니 운명이 아니었나 싶어요."

넉살 좋게 손님을 맞이하는 이정훈 씨. <헤드라인제주>
오일장에는 젊은이들이 많지 않다. 어느덧 30대 중반을 바라보는 그이지만 시장에서는 가장 어린축에 속한다.

"30대는 10명 남짓 있는것 같네요." 시장의 방대한 규모에 비해 얼마나 적은 숫자인지 짐작될 것이다.

"쉽지 않은 일이에요. 매일 장이 있는데 보통 장꾼들은 일주일에 두 번정도 쉬죠." 많은 사람들이 한 주를 싸이클로 살아가지만 이들은 열흘을 싸이클로 생활 패턴을 만든다.

"2일 7일이면 어디 장, 4일 9일이면 어디 장, 이런 식이에요." 그의 쉬는날은 3일과 8일. 물리치료와 사우나를 전전하다보면 휴일 일과는 훌쩍 끝난다.

"체격은 작은데 내 몸집보다 큰 물건을 매일 날라대니 몸이 성하질 못하죠. 오히려 사람을 상대하는 장사는 즐길 수 있는데 짐을 나르는 것은 아직도 쉽지 않아요." 너털웃음을 짓는다.

다른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사람들의 시선. 처음 시장을 나설때는 특히나 그랬다.

"친구들을 장에서 만났을 때는 그렇게 부끄럽다 느낀 적은 없었어요. 그런데 대학교때 은사님이 시장에 오셨을 때는 차마 못 마주치겠더라고요."

요리를 전공했지만 그 것을 살리지 못한 것이 웬지 실패한 것 같고 낙오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괜한 자존심 때문에 그랬었던 것 같아요. 지금은 제가 하고있는 일에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떳떳하게 다시 만난 은사님은 정말 잘 됐다고 등을 두드려줬다.

창고를 정리하느라 정신이 없다. <헤드라인제주>
# "요즘 젊은 세대는 풍족한 것 같아요"

그는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며 최근 논의되고 있는 '일자리 미스매치' 문제에 대해 풀어놨다.

"옛 어른들은 배고픈 것을 알아서 무슨 일을 하더라도 참아야 하는 것이 당연한데 요즘 젊은세대는 너무 배불리 살아왔던 것 같아요." 핵심을 짚어냈다.

"TV에서 봤는데 서울에 있는 대학을 들어가려면 수능점수가 거의 400점 가까이 돼야 한다더라고요. 그렇게 똑똑한 친구들이 졸업하면 과연 무슨일이 성에 찰까 싶어요."

그의 말처럼 현재 제주사회의 일자리 시장은 일할거리는 넘쳐나더라도 구직자들의 입맛을 충족시켜주는 자리가 한정돼 구인.구직자 서로가 고충을 겪고 있는 실정이다.

"사정이 어려워 아르바이트를 한다면서도 신발 20만원짜리 척척 사 신고, 핸드폰 요금 내느라 용돈이 부족한 것이지...배부른 것은 사실인것 같아요."

그러면서 장터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현실을 껴안고 사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 '산타 옷'을 입은 '단벌신사'

그는 '단벌신사'다. 옷장에 진열된 옷들도 10년이 넘은 것들이 수두룩하다.

"제가 사는 물건중에 값이 나가는 것은 신발밖에 없어요.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보면 금방 헤지는 바람에 좋은 것을 신어야겠더라고요."

그렇다고 흔히들 말하는 '수전노'라는 호칭은 그에게 결코 어울리지 않는다.

"밝히고 싶지는 않은데...여기저기 조금씩 도움을 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살짝 귀띔해 준 그의 기부행위는 상당한 수준이었다.

"도움을 주는 입장에서는 얼마든지 좋을 수 있어요. 하지만 받는 입장에서는 마냥 그렇지 만은 않은 법이에요." 지금도 그는 누구를 도울때면 항상 한 단계를 거쳐서 손길을 뻗는다고 한다.

"받는 사람은 당연히 고마워하겠지만 마음 한켠에서는 부담스러워 하죠. 그렇게 된다면 서로 부담스러워 지는 것은 순간이에요." 확고한 그만의 기부 철학이다.

"특히 제가 취급하는 품목이 사람과 뗄레야 뗄 수 없는 물건이라는것이 너무 좋은거죠." 때때로 그는 버선과 양말, 내의를 가득 싣고 '산타 아저씨'를 자처한다.

"여름보다 겨울이 되면 훨씬 큰 도움을 줄 수 있어요. 보일러 안들어와도 내복 한 벌 입는게 훨씬 따뜻할껄요?"

넉살 좋게 손님을 맞이하는 이정훈 씨. <헤드라인제주>
남다른 그의 기부정신은 어렸을 적 부터 봐온 부모의 덕이 컸다.

도시락을 싸들고 다니던 시절, 부모님은 어린 그에게 항상 돈 천원씩을 더 건네줬다. 주위에 밥을 챙겨오지 못한 친구가 있으면 함께 먹으라는 뜻에서 였다.

"TV에서 유명한 유아교육전문 교수가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육아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 있는데 첫째는 본보기고 둘째는 본보기고 셋째는 본보기라고."

그의 딸 세살배기 가연이는 아빠를 바라보며 어떻게 자랄지 사뭇 궁금하다.

"꿈이요? 물론 있죠! 한 200평짜리 땅을 사서 고층상가를 짓고 집세를 받고 사는거에요!"

뭔가 어울리지 않는 꿈이다 싶었는데,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아는 법이었다.

"금전적으로 하는 봉사보다는 직접 몸으로 뛰어다니는 봉사를 하고 싶어요. 경제적인 이유로 발목 잡히지 않고 마음껏!" 양말과 내의는 꾸준히 수급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평범한 그의 평범하지 않은 삶을 전해들은 후, "돈이 많아서 돕는게 아니에요. 천원이라도 만원이라도 돕는다는 것 자체가 중요한거에요."라는 말이 계속 머리를 감싸고 있다. <헤드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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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미경 2010-12-10 15:09:01 | 112.***.***.236
아는 분입니다. 반갑네요.
오일장은 언제 가도 정겹고 고향같은 곳입니다.